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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앨리스 Jan 14. 2020

변화하려는 엄마 VS 안주하려는 엄마

얼마 전 지인에게 우스개 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이 푸름이 어머님에게 어떻게 그렇게 성장할 수 있으셨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한다.

            

사업 몇번 망해봐



(얼핏 들었던거라 기억이 가물가물....사업 한번 망하셨나? 몇번 망하셨나? 정확하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법륜스님에게 어떻게 그렇게 성장(?)하셨냐고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한다.



고문한번 당해봐




(볍륜스님 책을 몇권을 읽어봤어도 진짜 고문을 당하셨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난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마냥 웃기보다 이게 정말 진실이다.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인생의 절벽 끝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2가지.    

                            

절벽 밑으로 뛰어내려 죽거나
죽을 힘을 다해 그 상황을 벗어나거나



인생의 절벽 끝에 서본 사람은 안다. 나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것을.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저런 엄마들을 보게 되면서 내 눈에 보이는 엄마들의 부류는 2부류로 나뉜다.


변화하려는자 VS 안주하려는 자




기존의 삶에서 갈증을 느끼고 다른 삶을 꿈꾸는 엄마들이 있고, 기존의 삶에서 별다른 문제를 못느끼고 기존의 삶처럼 안주하며 사는 엄마들이 있다.


난 개인적으로 이 2부류의 엄마들 중 무엇이 더 좋고 나쁘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2부류는 정말 각자의 입장차이, 상황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변화하려는 엄마들의 공통 특징은 생존이 걸린 문제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돈의 압박으로 궁리에 몰린 경험을 했다거나...

누군가는 질병으로 몸이 아파 일상생활을 못하는 경험을 했다거나...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언어폭력 or 신체폭력을 당했다거나...

누군가는 자존감학대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당하는 경험을 했다거나...



우리 인간의 뇌는 3층 구조로  되어있기에  생존과 관련 위협을 받으면 파충류의 뇌가 일단 작동된다.


계단도 1층을 올라가야 2층,3층으로 올라갈 수 있듯이 인간의 뇌도 생명유지의 뇌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표유류의 뇌, 인간의 뇌가 작동되지 않는다.


생존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은 쉽게 말해 뇌가 멈춘다. 지금 나의 감정이 어떠한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이성적으로 생각할 겨늘이 없다.


지금 내가 사느냐...죽느냐의 문제가 당장 급한 것이다.


나도 변화하려는 엄마의 부류다.


나에게도 나의 생존이 걸린 문제를 경험하면서 이대로 찌질하게 살기 싫었다.


내가 이번 생에 태어난 이유는 분명히 있을터이니 나에게 내 삶의 마지막 기회를 내가 쥐어주고 싶었다.


세상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나를 알아주고 싶었다. 


내 삶의 마지막 눈을 감는 날 세상이 ,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고 싶었다.



변화하려는 엄마들의 또다른 공통 특징은 기존의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선언한다.

주구장창 틀어놓은 TV와 결별을 하기 위해 TV를 치우기도..


생전 책은 불면증 치료제로 쓰던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책을 읽고...


늘 화려한 밤생활에 취해 아침에는 지뿌둥한 몸상태로 겨우겨우 일어나던 사람이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생전하지 않던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도 하고...


이렇게 무언가 얻기 위해 무언가를 잃는 대가를 기꺼이 치른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이 말은 정말 인생진리다.


세상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얻을 수는 없다.


나 또한 올빼미족이었는데 새벽형인간으로 바뀌었다.


나 또한 TV없는 삶은 적적해서 상상을 못했는데 TV 보는 날보다 안보는 날이 더 많아지고 있다. 우리집에서 내 손으로 TV켜는 날은 거의 없다. 양가나 가야...식당에나 가야 TV를 본다.


생전 책도 제대로 본 적없는 내가 이제는 늘상 가방에 보던 안보던 책을 넣고 다니다보니 숄더백,클러치백과도 이별한지 오래다. 나에게는 백팩이 닌자거북이마냥 없으면 허전한 물건이 되었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이 나를 가장 성장하게끔 만든다



살면서 나에게 생존의 위험을 안겨주는 사람이 있다면 대개 그들은 변화를 선택한다. 


어딘가에서 이혼은 내가 나를 죽일거 같거나, 내가 그를 죽일 거 같을 때 하는 것이라 들었다.


그만큼 이혼이라는 선택도 자신의 생존의 위험을 느낄 때 하는 선택이어야 한다고 한다.


상황이나 타인으로부터 생존위협을 받아본 엄마들은 자신만의 분명한 변화하려는 이유가 있다. 


그러하기에 다른 엄마들과의 비교없이 마이웨이 돌진할 수 있다.


허나 그닥 상황이나 타인으로부터 생존위협을 받아보지 않은 엄마들은 변화를 선택하더라도 뜨끈미지근하다.


하다말다하며 이게 맞나?안맞나? 늘 타인과 비교하며 우물쭈물하게 된다.


그러하니 변화하려는 자는 안주하려는 자를 보고 뭐라 할 이유도 없고 안주하려는 자도 변화하려는 자에게 뭐라 할 이유도 없다.


안주하려는 엄마들은 변화하려는 엄마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한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
그냥 편하게 살아
꼭 그렇게까지 해야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편하지 않으니 뭐라도 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 내 삶이 이모양 이꼴인가 싶어서 뭐라도 하는 것이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으니까 뭐라도 하는 것이다.


그냥 서로의 삶이 다를 뿐이다.


그냥 서로의 삶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아봤냐 안받아봤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안주하려는 엄마는 그동안 살아온대로 살아도 생명의 위협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그대로 살아도 살만한 것이고, 변화하려는 엄마는 그동안 살아온대로 살다가 생명의 위협을 받으니 그대로 살다가 죽을 것 같은 것이다.


그러니 서로의 삶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말고 각자의 삶이나 열심히 살자.


누군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한 삶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뭐라도 해야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으니.



하은맘의 말도 인생진리다.


나나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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