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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앨리스 Jan 13. 2020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

푸름이 어머님이 5살 무렵 남동생이 태어났는데 태어난지 한달만에 죽어 동생이 왜 죽었는지 엄마에게 물었을 때 푸름이 어머님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하도 소리 질러서 경기해서 죽었어!"라고.

이 말이 푸름이 어머님의 가슴에 박혀 사는 내내 살인자라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결혼하고 나서는 푸름이 아버님에게 "잘못했다고 그래봐"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어느날 푸름이 어머님께서 강연을 하다가 쓰러지시고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4여년동안 두려움과 우울증에 빠졌을 때 푸름이 아버님께서 푸름이 어머님께 무엇이 그렇게 두렵냐고, 내가 어떤 말을 해주면 좋겠냐고 하니 "잘못했다"는 말을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때 푸름이 아버님께서는 푸름이 엄마가 어렸을 때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나를 통해서 들으려고 하는구나를 깨달으시고 진심을 다해 푸름이 어머님께서 듣고 싶은 말을 해주었다고 하신다.

      


사랑하는 예쁜 내 딸아!


이 세상에 잘 왔단다. 네 잘못이 아니야!


이 말을 듣고 푸름이 어머님은 하염없이 울고 그 뒤로 나흘동안 푸름엄마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울음을 그친 후 푸름이 어머님께서는 더이상 공황장애에 시달리지 않게 되셨다고 하신다.


이날 이후로 푸름이 부모님께서는 분노와 슬픔의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면,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가 있다면 짐승이 울부짖듯 마음껏 오열하고 통곡할 수 있게 하라고 하신다.


나도 몇년 전 상담을 받을 때 생전 처음 짐승이 울부짖듯 오열하고 통곡하며 울었던 일이 있었다.


나는 원래 울어도 소리내어 울지 못한다. 나는 원래 울어도 실컷 울지 못하고 참는게 몇십년 습관이 된 사람이다.


그런데 그날은 안전한 공간에서 안전한 심리상담사 분 앞에서 정말 짐승이 울부짓든 오열하고 통곡하고 우는 경험을 했다.


그날이 아직까지는 처음이자 가장 최근 일이 되었다.


사람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들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통곡하며 울게 된다고 한다.


내가 상담을 하던 시기에 내가 엄마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상담사분께서 나에게 넌지시 이런 말을 한 적 있었어요.


엄마를 많이 사랑하셨군요.



나는 엄마를 사랑하는지 몰랐다. 나는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했던 행동들이 결국 엄마를 사랑해서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통곡하고 울었다.


나는 나를 낳아주고 기껏 건강하게 키워준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나쁜 년이라고 죄책감에 쌓여 살았는데 내가 엄마를 향한 진짜 마음을 외면한채 나쁜 년으로 포장하고 살았음을 뒤늦게 알고 내가 너무 짠했다.


그리고 또 하나.


상담을 하다보면 현재 나의 육아이야기도 나누게 되는데 상담사분이 나에게 다음에는 같은 상황에 이렇게 아이한테 말하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지우야. 별일 아니야.
엄마 믿어. 괜찮아. 니 잘못 아니야.


나한테 해주는 이야기도 아니었고, 그냥 다음 기회에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라 하는데 나는 이 말에 느닷없이 통곡하고 울고 말았다.


내가 아이한테 해주기 전에 내가 30여년을 그토록 듣고 싶어했던 말이다.


나의 엄마에게.. 말이다.


나의 엄마는 평생 나한테 이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안 좋은 일이 나 때문에 그런지 알고 최대한 엄마, 아빠 눈에 벗어나지 않는 행동을 하려했고, 최대한 엄마, 아빠 기쁘게 해주려고 어느 누구하나 공부하라는 소리 안해도 기어코 성적 올려 향상된 성적표 가져갔었다.


담임선생님은 매번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나를 교단에 앞세워 성적을 늘 오른다고 칭찬해주었지만 나의 부모는 성적이 올라도 칭찬의 소리없고. 내려가도 별 말 없었다.


그래서 알았다. 나는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하고 좋은 성적을 받아도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할 수  없음을.


나만 참고 나만 잘하면 엄마 아빠 싸울 일도 없을 것 같아 내 감정 늘 억누르고 싫어도 좋은 척, 하기 싫은 일도 어거지로 하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무시하고 외면하고 억압하던 감정들이 뒤늦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튕겨나올 줄 몰랐다.


나는 어린시절 그토록 내 편과 같은 믿을 사람이 절실히 필요했나보다.

하늘이 무너져도 나를 지켜줄 믿을 만한 내편...

하늘이 무너져도 나를 버리지 않을 것 같다는 안전한 내 사람..

사리분별 못하는 어린 나에게 객관적으로 이것은 니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그토록 절실히 필요했나보다.


그런 존재가 필요했는지 상담사분이 내 앞에서 그렇게 말해주는게 꼭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았다.


내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그토록 듣고 싶었지만 어디가서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라고 말도 꺼내지 못했던 그 말이 결국 그 말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진짜 감정, 생각들을 참 많이도 외면하고 사는거 같다.


진짜 감정, 생각들을 의식으로 드러내고 표현하면 거절받을까봐 미움받을까봐 상처받을까봐 두려워 애써 애꿎은 다른 감정들로 포장을 한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진짜 감정, 생각들 외면하고 살지 말아야 한다.


외면하고 무시하고 억압한 생각, 감정들은 언젠가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되어있다.


내가 지극히도 주관적으로 느끼는 생각. 감정들이 옳고 그른게 없다.


나의 생각. 감정들인데 이걸 가지고 옳고 그른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더 나쁜거 아닌가? 그걸 가지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오지랖 아닌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은 꼭 당사자가 아니여도 어디서라도 들으면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달래줄 수 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달래줘야지만 과거가 아닌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난 의도치않게 심리상담사분께 들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명확히 알고 있다면 주변에 안전한 대상에게 적어서라도 말해달라 하면 좋을 것 같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명확히 알지 못한다면 좀 더 자신의 내면을 들어다보면 좋을 것 같다.


자신의 내면을 들어다보는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이 보여도  결국 별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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