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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앨리스 Jan 13. 2020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치유해야하는 이유

나는 성장하는 내내 외롭고,두려웠다.

나의 부모가 있지만 왠지 모르게 심리적인 벽이 있고 어색했다.

나는 내 부모 앞에서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기 두려워하고 늘 가면을 쓰고 살았다.  

집에 전화기가 놓여있던 시절 학창시절 집으로 친구들이 전화하면 전화통화가 끝난 나에게 내 부모님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어떻게된게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랑 엄마아빠랑 대화할 때 목소리가 달라?






나도 궁금했다.


왜 나는 두얼굴로 지내는지.


나도 모르겠는 나의 모습을 나의 부모님은 서운해하고 이해할 수 없어했다.


그런 반응에 난 더 가면을 쓰고 산듯 하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이 과연 무엇인지 혼란스럽고 두모습 다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사랑해주고 싶었다.


허나 나는 그렇게 해줄 수가 없었다.


온전한 사랑은 내가 해야겠다는 의지만으로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척'이 어느정도 가능하지만 내 가족에게는 무의식 세계가 작동하면서 '척'이 되지 않음을 뒤늦게 알았다.

내 안에 없는 것은 내 아이에게 줄 수 없었다.


내 안에 사랑이 없기에 내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없었다.


내 안에는 분노, 수치심, 슬픔, 두려움,죄책감이 한가득이었다.


내 아이는 나의 이런 억압된 무의식의 감정들을 의식세계로 끌어올려주기위해,  수시로 나를 미치게 하곤 했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내내 그런 내가 궁금했다.


왜 내 아이가 나를 미치게 하는지, 왜 나는 미칠거 같은지.


그런 부분들의 이유를 찾으려 애쓰다보니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존재를 알게되었다.


처음에는 생소한 무의식 세계 이야기라 부인했다.


부인하고 방법론적인 이야기만 찾기도 했다.


아이가 지랄발광할 때마다 내가 어떠한 말을 해야하는지 그걸 찾아 적용하려 했다.


그래서 감정코칭 책을 읽고 공감법을 배우고  엄마의 말공부를 적어가며 외우기까지 해봤다.


허나 되지 않았다.  


책에서 배운대로 지랄발광하는 아이에게 ~~구나구나 하며 구나쟁이로 대해도 내아이는 진정되지 않았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의 감정이 그대로 있기에 지랄발광하는 아이에게 입으로는 공감해주지만 진정으로 사랑하고 공감해주는 것은 무리였다.


아이도 안다.  엄마가 진정으로 공감해주는 것인지 어거지로 하는 것인지.


육아는 머리로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이해될 때 비로소 편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육아를 머리로 배우려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기 위해 방법을 바꿨다.


나는 그러고보면 센서티브한 사람이라 그런가 나의 상처지점을 분명히 알고 자각하고 있었다.


육아를 하면서 나의 상처지점을 수시로 거드리는  딸 덕분에 상처의 고통을 의도치않게 대면해야했다.


그리고 나의 내적불행을 내 아이에게 대물림하지 않기위해 나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스스로라도 치유하기로 선택했다.


치유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어두운 나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에너지소모도 많고 버겁다.


한 계단을 오르면 끝없는 것 같은 다음 계단들이 줄지어 보인다.


그래서 수시로 포기하고 싶었고 그런 나의 모습에 좌절도 많이 했다.


미운오리새끼로만 알고 살던 내가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치유하는 과정 중 내가 백조였음을 알아간다.


그동안 나는 나의 입체적인 면들 중 한쪽면만 보고살았을 뿐 나에게도 그동안 밝혀지지않은 다양한 면들이 많음을 알아간다.


내 안에도 원더풀 아이의 잠재력이 있었음을 내 아이 7살이 끝나는즈음 알아간다.

내 안의 원더풀 아이 존재를 서서히 알아가는걸보니 나의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서서히 치유되어가는구나를 느낀다.


스스로라도 하길 잘했다.


독학으로라도 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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