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자신의 밑바닥, 내 안의 괴물을 보게 된다고 한다.
환상의 현실
꿈꾸던 결혼이 결혼하고 보니 환상이었음을 진작 깨달게 되고 매일 같이 있고 싶어 결혼한 배우자는 어느순간 꼴보기 싫어질 때가 있다.
우아한 육아를 꿈꿨는데 막상 애 낳고 키우다보니 우아는 개뿔 매일 '나는 누구? 나는 지금 어디에?'라는 정체성의 혼란이 밀려오고, 마냥 이쁘기만 할 것 같은 내가 배아파 낳은 내 새끼는 어느순간 얄미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결혼과 육아는 현실이라는 말이 나오나보다.
나도 결혼하고 징글징글하게 싸웠다.
결혼생활 년차가 점점 많아질 수록 싸우는 정도나 횟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신혼 때는 정말 전투적으로 싸운거 같다.
지금 다시 그렇게 싸우라하면 못 싸우겠다. 그 때는 젊었고, 뭣도 몰랐고, 그렇게 싸워서 이겨야지만 진정 이기는 싸움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이도 더 들고, 뭣도 알게 되고, 지는게 이긴다는 말이 뭔말인지 알아가기 때문이다.
육아도 마찬가지이다.
딸이 처음 태어났을 때는 제가 배 아파서 낳은 첫 아이이니 얼마나 애정이 가던지.
그래서 뭐든 다해주고싶고, 어느누구보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부푼 꿈들이 넘쳐났었다.
그런데 그 지나친 애정과 지나친 애씀이 내 육아의 독이었음을 이제야 인정한다.
결혼생활이 10년되어가고, 딸이 8살이 되어서야 내가 최근 깨달은 바가 있다.
왜 내가 그토록 신랑과 목청높여 징글징글하게 싸워댔는지, 왜 내가 정신줄을 놓으면 애한테 할말 못한말을 쏟아냈는지 그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딸에게서 나의 '어린 나'를 투사하고 있었고, 신랑에게서 '아빠'를 투사하고 있었다.
투사
-개인의 성향인 태도나 특성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심리적 현상.
-정신분석이론에서는, 이러한 투사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과 같은 감정을 돌림으로써 부정할 수 있는 방어기제라고 본다.
자녀들 중 유독 큰 아이에게 밉고, 화나는 감정이 든다 한다. 아님 큰 아이가 아니여도 어떤 아이들 중 하나가 그럴 수도 있다.
대개 첫째 아이한테 내 새끼라 이쁘긴한데 종종 유독 못마땅하고 밉기도 한 양가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어떤 분은 첫째, 둘째 다 키우기 수월하고 이뻐서 셋째를 낳았는데 그 셋째가 아주 지랄맞았다는 사례도 있다.
나를 힘들게하고, 불편하게 하는 그 아이한테 어떤 잔소리 많이 하시나요?
나는 내가 딸에게 하는 잔소리들이 어느순간 뜨끔해졌다.
'이게 뭔가 이상한데....이게 누군가한테 하고 싶던 말같은데...누가 누구한테 하는 소리인거지?'
결국 알아차렸다.
내가 딸에게 하는 잔소리는 결국 나를 싫어하고 미워했던 어린 내가 나에게 하는 잔소리였음을.
엄마 입에서 애한테 나가는 잔소리는 결국 엄마 자신의 모습이 보기 불편해서 그리 하는거다.
엄마들이 존재자체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아이도 존재자체로 인정하고 사랑하기 힘들다.
애를 사랑으로 키우고 싶다면 엄마 자신이 사랑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딸에게 이런 잔소리 잘한다.
"뭘 할거면 해야할걸 하고 해!"(제가 그래요;; 꼭 해야할걸 미우고 당장 하고싶은걸 하고 있음)
"돌아다니면서 양치질하지마!"(제가 돌아다니면서 양치질해요;)
"미리미리 준비해서 나가!"(보면 꼭 저도 닥쳐서 준비함)
"너 대체 나한테 왜이래?!"(존재자체를 부정하고 살던 나이기에..)
뭐 이정도....
엄마가 애한테 내지르는 잔소리들이 교육이라는, 훈계라는 명목으로 진짜 하는걸까?
자신의 내면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진짜 누구한테 하고 싶은 말들인지.
신랑이랑 이성을 잃고 싸울 때나(저만 그런거 아니죠?-.-;;) 평소 하는 잔소리들 생각해면 그거 누구한테 하고 싶던 말들이었을까?
어떤 아내는 결혼하고 나서 남편을 자신의 엄마로 투사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아빠로 투사하는 아내도 있다.
아마도 배우자한테 투사하는 사람은 내 안에 분노대상이었거나 너무 미웠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빠를 그리 미워했고, 아빠가 그리 못마땅했었고, 아빠가 무서웠다.
그런 아빠에게 맞대응하고 대들면 늘 술먹고 엄마를 잡기에 나는 아빠한테 제대로 큰소리치지 못하고 살았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엄마 지키고 싶어한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도망갈까봐. 엄마가 나 때문에 힘들어할까봐..그런 상황들을 눈치껏 감지하고 눈치껏 행동하게 된다. (특히 첫째들이요)
나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아빠한테 내지르고 싶었던 말들이 내 안에 쌓였나보다.
나는 신랑에게서 아빠의 모습을 자주 본다. 어린 나는 내 아빠가 내 엄마를 술먹고 잡을까봐 못했던 말들을 내가 내 아빠로 투사하며 바라본 신랑에게는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더라.
내가 신랑한테 내지르고 쏟아냈던 말들은 결국 내가 내 아빠한테 그리 하고 싶던 말들이었다.
신랑을 아빠로 투사하며 지내온 나는 어린 시절 아빠에게 느꼈던 감정이 자주 소환된다.
그래서 신랑이랑 같이 있는 시간이 편하지만 않고, 자꾸 신랑의 감정을 살피게 된다.
어린 내가 아빠를 바라봤던 시각, 감정을 고대로 신랑에게도 하고 있더라.
나는 내 아이를 나와 다른 개별적인 존재로 본 것이 아니라 어린 나의 모습으로 바라봤구나.
나는 내 신랑을 나와 다른 개별적인 존재로 본 것이 아니라 그토록 미워했던 아빠의 모습으로 바라봤구나.
그래서 그토록 내 결혼생활이 힘들었고, 그토록 육아가 힘들었구나..
어느날 가족끼리 밥먹다가 혼자 불현듯 깨닫고 밥먹는데 참 마음이 먹먹해졌었다.
이제 알아차렸으니 그 들을 나에게서 분리해야겠지?
분리해야한다. 그들의 삶과 내 삶을 위해서.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과 아이와의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의 원인을 상대에게 찾지 마시길.
그들이 왜 그럴까?가 아니라 왜 내가 불편할까?라고 질문을 바꾸셔야 한다.
질문을 타인이 아닌 나에게 돌렸을 때 알아차리게 된다.
그 모든 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