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라 앨리스 Feb 13. 2020

나의 엄마, 나란 엄마

나는 나의 어린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는 편이지만 내 나이 6살,7살쯤 정확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아마도 그날은 늘 그랬듯이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와 밤사이 엄마와 싸웠던 것 같다.

늘 그랬듯이 아빠는 싸우면서 엄마에게 집을 나갔겠다고 한 것 같다.


그 어린 6살,7살의 나는 천진난만하게 다음 날 아침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 왜 집 안나가?



그 어린 6살,7살이던 나는 늘 궁금했나보다. 

왜 나간다고 하면서 안 나가는지를...

그 어린 나는 내심 아빠가 정말 집을 나가기를 바랬나보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처음으로 엄마에게 나의 진심을 전했었다.


제발 아빠와 이혼하라고. 나는 아빠없이 살아도 된다고. 가난하게 살아도 좋으니 하루라도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는 나의 마음을 전했었다.


엄마에게 돌아오는 소리는 다 너희를 위해서 이혼 안하고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특히나 딸인 내가 나중에 커서 시집을 갈 때 결혼식장에서 아빠 손잡고 들어가야하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결혼식장에 혼자 들어가도 괜찮은데..정말 괜찮은데.. 엄마는 다 우리(동생과 나)를 위해서..다 너를 위해서 참고 사는 것이라 했다.


참고 사는게 우리를 위한게 아닌데..나를 위한게 아닌데 왜 우리를 위하는 것이라 하는지, 나를 위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동생과 나를 위한다면, 딸인 나를 위한다면 우리가 원하는거,특히 내가 원하는 것을 해줬어야지...


그렇게 나의 생각의 전달은 묻히고 말았다.


내가 대학을 입학할 때쯤 아빠는 어느날 갑자기 말 한마디없이 정말 집을 나갔었다. 


그렇게 집을 나가고 몇년을 왕래없이,연락없이 지냈다.


나에게 목돈이 들어갈 시기 아빠의 부재로 생계형 알바생, 생계형 대학생이 되었어도 나는 내심 마음이 편했다.


그토록 내가 원하던 하루라도 마음편히 사는 날을 경험했으니까.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내가 장학금받아가며 잘 다니던 대학교를 나의 선택으로 자퇴할 때도 나는 억울하지 않았다.


그토록 내가 원하던 하루라도 마음 편히 사는 날을 경험했으니까.


나에게는 무엇보다 하루라도 마음 편히 사는 나날의 연속이 더 중요했다.


그런데 어느날 엄마는 아빠가 다시 집에 들어올거라고 이야기해줬다.  엄마는 아빠가 우리 눈치보느라 집에 돌아오는 것을 주저한다고 하였다.


나는 다시 나의 진심어린 생각을 전했다.


나는 아빠가 집에 들어오는게 싫다고...


또 다시 나의 생각은 묻혔다.


엄마는 나를 설득했다.  그렇게 설득당하고 아빠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나는 조금씩조금씩 엄마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쌓여갔다.



엄마 왜 나를 지켜주지 않아. 내가 그렇게 싫다는데 내가 용기내어 내가 진짜 원하는거 이야기해줘도 왜 단한번도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지 않아. 내가 오죽하면 매번 같은 말을 했겠어. 왜 단한번도 내가 그렇게밖에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해서 알아주지 않았어.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엄마는 왜 나를 보호해주지 않지. 왜 지켜주지 않지. 나는 누굴 믿고 살아야하지..나는 왜 태어났을까..이럴거면 왜 낳아줬는지.. 그 때부터 더 나의 정체성에 혼란이 왔던 것 같다. 


그런 내가 현재 그 어린 시절 나의 엄마 나이대가 되어보니 과연 나는 내 딸 아이가 원하는 것에 귀기울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내 딸은 어린 나와 달리 아빠를 좋아한다. 


어린 나는 엄마와 둘만 살아도 좋다 생각했지만, 내 딸은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어린 나는 엄마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상충되는 상황에서 늘 엄마의 생각이 우선되었다. 


늘 엄마의 생각이 우선시되는 상황에서 받았던 어린 나의 상처는 딸에게 대물림시키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의 집착이 있다.


그래서 늘 나보다 딸의 생각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렇다보니 엄마인 나의 생각과 감정은 나 스스로도 억압하고 회피하곤 했다.


딸을 생각해서 스스로 억압하고 회피하던 생각과 감정들은 종종 억울해질 때도 있다.


내가 너 때문에 참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한테 이렇게 하는데...


이런 생각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아이에게 불똥이 튈 때도 있다.


내가 엄마가 되고보니 엄마도 좋고,아이도 좋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길들을 생각하게 된다.

엄마도 사람이라 늘 아이만 우선시할 수도 없고, 엄마 맘대로 할 수도 없고..

엄마라는 자리에 앉아보니 엄마라는 역할에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 

엄마 자신만 생각하기엔 너무 이기적인 것 같고, 아이만 생각하기에는 너무 희생적인 것 같다.


엄마도 좋고, 아이도 함께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꼭 누군가가 희생하는 방법이 아닌 함께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육아하면서 가장 듣기 싫었던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