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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앨리스 Feb 17. 2020

애증의 '술' 이야기

나는 술이라하면 징글징글했었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내 삶의 불행의 원인은 '술'이라 생각했었다. 

술을 좋아하던 아빠. 

술만 마시면 꼭 누구랑 싸웠던 아빠.

술만 마시면 꼭 문제를 일으키던 아빠.

술만 마시면 꼭 나와 동생과 엄마를 잡던 아빠.

그런 내 아빠의 기억들로 나에게 '술'은 트라우마였다.

그래서 술냄새가 그렇게 싫었다.

그래서 술마시는 사람들이 그렇게 싫었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가서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내가 술을 마시면 사람들이 아빠 딸이라 잘 먹는다는 소리가 할까봐 두려웠다.

내가 술을 마시면 아빠처럼 주정을 할까봐 내심 두려웠다.

내가 술을 마시면 그동안 억압되었던 감정들이 유전터듯이 나와 술만 마시면 찌질하게 울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술마시는 사람들 술잔에 술 따라주는 것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 술은 안 좋은 것, 마시지 말아야할 것이었다.

그러던 나는 신랑을 만나고 술을 먹기 시작했다. 

소주 한잔도 제대로 먹을 줄 모르던 나에게 자기가 나를 소주 1병 정도는 거뜬히 먹게 해주겠다고 하였었다.

그렇게 나는 신랑을 통해 처음으로 내가 술을 먹어도 안전하구나...다 술을  먹는다고 주정하는 것은 아니구나..를 알아가면서 신랑에게 술을 배웠다. 

다행히도 신랑은 내아빠와는 너무 다르게 술이 떡이 되게 마시지도 않고 알아서 조절해서 먹고, 단 한번도 주정한 적없이 늘 조용히 잠을 자준다. 

신은 사람에게 고통을 줄 때 감당할 정도까지만 준다더니 신은 나를 살리기 위해 이런 배우자와 살 기회를 주셨나보다.

나는 어쩌면 신랑이 내아빠와 같이 나에게 술로 트라우마를 또 주었다면 진작에 도망갔을 것 같다.

나는 신랑에게 처음 배운 술이 소맥이라 나는 소맥을 시작으로 다양한 주종들을 경험하며 지금은 소주 1병은 거뜬히 마시고 다양한 주종의 거부감없이 아주 '잘'마시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은 술을 잘마시는 나를 신랑은 사람들에게 자랑(?)한다.  특히나 친정집에 가서도 자랑(?)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유독 친정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이 어렵다. 주시면 1~2잔 정도는 예의상 먹어주고 애를 봐야한다는 핑계로 술잔을 피한다.

그런 나를 보면 아빠는 섭섭함을 내비치쳤다.


            

너는 사람가려가며 술마시냐?



그렇다. 나는 사람가려가면서 술을 마신다.


아직까지는 특히 아빠와 술을 마시는 것이 너무 어렵다. 


아직까지는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술을 먹고 우리를 힘들게했던 아빠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내 안의 틀을 덜 부셨고, 내 안의 상처들이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나보다. 



내가 뭣도 모를 나이에 번갯불에 콩볶듯이 했던 결혼도 지긋지긋하게 술먹고 힘들게했던 아빠의 도피가 컸다. 


뭣도 모르고 단순하게 도피해서 했던 결혼이 순탄치만 않을 때마다 아빠를 원망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모든 것이 누가 떠밀어서 했던 선택도 아니었고 나의 선택이었고, 그 모든 문제들이 다 내 문제였음을. 그래서 누구를 원망한들 다 소용없는 일이었음을.


아는 지인 중 초등학생 5학년 때 식도암으로 투병하시던 아빠와 이별하신 분이 있으시다.


그 분의 많은 언니들은 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한다. 술만 마시면 식구들이 죄다 니 아빠가 식도암에 걸려 돌아가셨는데 술마신다고 뭐라 하나보다.


그런데 그분은 그 많은 형제들 중 유일하게 술을 마신다. 


그 분과 많은 대화를 해보지는 않아서 어떠한 이유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술을 마시는 딸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내 생각으로는 아빠와 자신을 분리해서 보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아빠와 나를 분리하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술을 미워하고 피했던 나보다 술에 대한 두려움을 깨고 술을 마시는 그분의 내면이 더 건강한 것은 아닐까?


그런 그 분을 보며 아빠와 나를 분리하지 못한채 평생 불필요한 짐을 얹고 산 내가 보였다.


나는 아빠와 다른 독립된 존재인데 말이다.


다 술먹는다고 떡이 되지 않는데 말이다.


다 술먹는다고 주정하지 않는데 말이다.


술매너가 꽝인 사람보다 술매너가 좋은 사람도 많은데 말이다.


그렇게 싫어하고 원망하던 술이 언젠가부터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술을 마시고 알딸딸한 그 기분이 좋다.


술을 마시며 듣는 음악이 좋다.


술을 마시면서 보는 책도 좋다.


술을 마시면서 조금은 정신줄놓고(방어기제풀고) 이야기나누는 것도 좋다.


어색할 수 있는 순간 술잔을 경쾌하게 짠하면서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음도 좋다.

이렇게 나는 조금씩 전과는 다른 내가 되어간다.


이렇게 나는 조금씩 내 부모와 나는 완전히 다른 독립된 존재임을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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