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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앨리스 Sep 29. 2020

당신의 누울자리, 안전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나의 누울자리, 안전한 대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누울자리보고 발 뻗는다.



많이 들어본 말이죠? 사람은 본능적으로 나의 누울자리에만 발을 뻗을 수 있어요.

돌다리를 건널 때에도 우린 두들겨보고,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어서야지만 나의 한 발을 뻗을 수 있잖아요.

발을 뻗는다는 것은 그만큼 나에게 안전한 곳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나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거죠.


우린 인간관계에서도 나의 누울자리, 안전한 사람에게만 나의 존재를 드러내며 살고 있어요.



나의 누울자리, 안전한 사람을 쉽게 구별하는 방법


내가 쥐잡듯이(?)잡는 사람


내 내면이 뒤엉켰을 때,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에 배알이 꼬여있을 때 우린 대개 나보다 만만한 사람(?)을 그리 쥐잡듯이 잡아요.

우린 호랑이나, 코끼리를 잡을 생각은 생각조차 하지 않아요. 애초에 잡히지 않고, 오히려 내가 먹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드니까요.

쥐는 나보다 힘도 약하고, 잡을 작정을 하면 잡혀주기도 하니까 그리 잡아요.



나의 눈물을 보일 수 있는 사람


우린 보통 울면 안돼, 우는 건 나약한거야, 우는 모습은 보이면 안돼라는 메시지를 많이 받고 자랐어요.

그렇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쉽게 흘리지 못해요.

눈물에 대해 부정적인 메시지를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나의 눈물을 누군가에게 내보인다는 것은 왠지 나의 나약함, 밑바닥을 드러내는 것 같아 사실 굉장히 수치스러운 순간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눈물이 올라올 때 눈물샘을 막기 급급하고, 안 운 척 하지 않고,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나의 눈물에 수치심을 주지 않는 사람, 나의 눈물을 자연스레 흘려보낼 수 있도록 그저 조금은 편히 지켜봐줄 수 있는 사람이요.


나의 생각, 욕구,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사람


나의 생각, 욕구, 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나의 생각, 욕구, 감정은 어떠한 필터링없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날 것의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을 말해요.

내 안에 있는 간디의 모습도, 히틀러의 모습도, 천사의 모습도, 악마의 모습도 과감히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당신은 누구에게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고 있나요?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낸다는것은 어떠한 방어기제, 척없이 날 것의 나를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아주 지랄맞고, 밑바닥같은 모습, 어찌보면 애같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죠.

제 주변을 둘러보면 어떤 사람은 친정엄마에게, 어떤 사람은 배우자에게 많이 그리 한다고 하더라구요.

인간관계에서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가 나에게 안전하기에 그리 할 수 있는거에요. 그만큼 상대가 받아주니까 할 수 있기도 하구요.

내가 아무리 애같이 징징대고, 지랄하고, 밑바닥같은 지질한 모습을 보여도, 나를 버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만 그리 할 수 있어요.

그만큼 우린 인간관계 안에서 생존본능으로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 때 나의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거죠.

저는 그동안 살면서 제가 쥐잡듯이 잡은 사람, 제 눈물을 보일 수 있는 사람, 저의 생각,욕구,감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였을까...생각해보니..저에게는 친정엄마도, 남편은 아니더라구요.

저는 살면서 그 누구도 쉽게 믿지 못하고 살았어요. 내 부모조차도요.

부모를 믿지 못하는 그 마음은 인간관계에서도 어느 누구를 쉽게 믿지 못하고, 쉽게 저를 드러내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세상 어느 누구하나 저에게는 누울자리, 안전한 사람이 없었기에 저 스스로 안으로 삵히면서 저를 옭아메고 살았더라구요.

지금 되돌아생각해보면 왜그리 어렸을 때 배앓이를 했었는지, 지독한 변비에 시달렸었는지, 원인모를 만성피로함에 찌들어살았는지, 늘 왜 입술은 어떠한 립밥을 발라도 메말라 갈라 터져있었는지, 늘 어깨결림으로 고생을 했었는지, 잦은 두통에 시달렸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더라구요.

제 안에서 스스로 곪아터지고 있는 것이었어요.

그런 증세들이 어느 순간 기적같이 사라졌더라구요. 어느 한 사람을 만난 뒤로요.

바로 딸이요



딸을 육아하면서 지독한 변비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고, 체력이 좋아졌고, 입술은 언젠가부터 립밤을 바르지 않아도 제 살아생전 늘 촉촉하게 유지됐고, 어깨결림? 두통은 정말 과거보다 가뭄에 콩나듯이 증세를 보이고 있더라구요.

이 모든 제 삶의 기적같은 변화는 딸을 육아하면서 왔어요.

왜냐하면 제 삶의 누울자리, 안전한 사람은 딸이었거든요.


제가 지난 시간동안 전업주부로써, 딸을 제 손으로 키우고, 딸 옆에 있어줄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모성애가 넘치는 엄마도, 육아가 너무 적성에 찰떡같이 맞아서도, 아이가 너무 이뻐죽겠어서가 아니었어요.

육아가 저에게는 그 어떠한 일보다 힘들고,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면하게 되는 제 내면아이의 상처들로 인해 미칠 것 같이 너무 고통스럽기도 하고, 경제적인 문제로 돈을 벌려 나가야하는 압박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딸 옆에 붙어있었던 이유는 제가 죽을 거 같으니 제가 애한테 대롱대롱 매달렸을 뿐이에요.

결국 제가 딸에게 의지했던 것이죠. 이 사람만이 죽어가는 저를 살려줄 것 같아서..

딸이 제 삶의 유일한 누울자리, 안전한 사람이었기에 제가 정신줄 놓으면 쥐잡듯이 잡기도 많이 잡았고, 아이 앞에서 오열하는 모습을 많이 드러내기도 했고, 어느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았던 제 날 것의 감정들을 많이 토해내며 딱봐도 미친년 널뛰기를 참 많이 했어요.

다 큰 어른이, 그 어린 것에게요. ㅜㅜ

제 삶 안에서 딸이 유일하게 제가 감정의 미친년 널뛰기를 하더라도, 저를 공격하거나 버릴거라는 두려움을 주지 않았고, 제가 울 때 유일하게 뚝하라고 윽박지르지 않았고, 때때로 조용히 휴지를 건네주기도 했거든요.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어쩌다 푸름이교육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그 안에서 배려깊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쥐어짜가며 배려깊은 사랑이란 것을 주는 시늉이라도 해오면서, 난도질당하고 너덜너덜해진 제 내면의 아픔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뒤늦은 사춘기를 겪으며 성장통을 겪어야 했어요.


그 아픔들에 새살이 돋기까지 저에게는 시간이 좀 필요했어요.

그 아픈자리에 2차 피해로 또다시 고춧가루가 뿌려지지 않도록 안전한 상황에서 새살이 돋아나기까지의 기다릴 시간이요.

그렇다보니 육아하는 시간동안 저는 그리 유일하게 저의 안전한 누울자리인 딸 옆에만 붙어있는게 누가뭐래도 저에게는 생존이었구나를 요즘 참 많이 느껴요.

어느 누가봐도 다 큰 어른인 엄마가, 작고 여린 애한테 대롱대롱 매달린 추한 모습일지라도 저에게는 그게 유일한 생존이었어요.

누군가에게 누울자리, 안전한 사람은 결국 그 사람을 살리고 있는 사람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혹시 주변에 내가 쥐잡듯이 잡아도 잡혀주는 사람, 나의 오열하는 눈물도 보일 수 있는 사람, 나의 날 것의 감정까지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당신의 누울자리, 안전한 사람일 가능성이 커요.

그 사람으로 인해 당신이 치유되어가고 있을거에요.


그 사람으로 인해 당신의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알게 모르게 성장해나가고 있을거에요.

그 사람으로 인해 이번 생에 죽어갈뻔한 영혼이 다시 살아나고 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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