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라는 질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국민 중 3명에 1명이 암진단을 받고 있단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중에 1명이 친정아빠였고, 또 다른 무리 중에 1명이 나였다. 재수가 없어서 걸린 것이라고 하기에는 몸관리를 제대로 안 했다. 폭식에 폭음을 일삼았다. 스트레스 해소한답시고 밥을 먹고도 라면과 빵, 맥주를 입에 쑤셔 넣었다.(쑤셔넣다라는 말이 적확하다)
결국 39살 여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무표정한 의사 선생님은 무덤덤한 환자의 반응에 더 놀랐다.
"생각보다 많이 놀라지 않으시네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수도 있다. 내가 먹은 것이 내가 된다는 말이 있다. 1일 1라면을 넘어 2라면까지도 즐겨하던 나였다. 야식은 나의 힘이라며 매일밤 축제를 벌였다. 살은 찐 건지 부은 건지 모를 정도로 체중계 눈금이 60을 가뿐히 넘었다. 헬스장을 다녔지만 체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과식을 일삼고 밥 먹듯 야근하는 생활에 먹는 음식들도 정크푸드 그대로였다.
암은 사고처럼 하루아침에 갑자기 찾아오는 줄 알았다. 전조증상이 있었다. 정확히 10년 전 3.5cm가량의 유방 섬유선종으로 제거수술을 받았다. 당시 가슴에 수술 붕대를 감고 폐암으로 투병하다 돌아가신 친정아빠의 장례식장을 지켰다. 그러고 보면 암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다. 정상세포가 암세포가 되는 데는 짧게는 5년에서 최소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정상 세포가 계속 쌓이는 독소들의 영향으로 미쳐버린 결과물이 암세포라고.
최근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조승우 님의 <채소식물식>에서 암은 죽은 음식을 먹고 계속 자라난다고 강조하였다. 림프 시스템의 에너지원인 살아있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암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다고 했다. 가열하고 가공하는 순간 살아있는 효소는 파괴된다. 그동안 죽은 음식들만 주야장천 먹었으니 몸이 죽어가는 건 당연하다.
암진단을 받자마자 서울에 암전문 병원 2곳을 방문했다. 엄청난 규모와 정신없음에 감정적으로 짓눌렸다. 결국 일반적인 병원치료는 포기했다. 의사는 포기하지 않았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정밀검사 결과 다행히 전이는 없었고 진행성이 아닌 제자리성암이라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동안 잘못된 식습관과 생활방식으로 얻은 암세포를 내 손으로 보내버리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또다시 찾아올 것 같았다.
그렇게 지난 시간이 벌써 꽉 찬 4년이다. 암이 완전관해가 되어 '나 다 나았어요!' 하면 좋겠지만 그건 요행이다. 지난 4년간은 가슴속 멍울이 생긴 이유를 돌아보며 마음 치유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식생활로 몸 치유를 해보기로 했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말도 맞지만 스트레스 0%로 살아갈 수 없으니 음식이나 운동으로 스트레스 지수를 낮춰보기로 말이다. 스트레스는 없애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고 환원하는 것이니까.
암 환자가 된 후 자연스럽게 우울증도 왔다. 생사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문제가 생겼다. 책을 읽을수록 고뇌가 깊어지듯이 나를 알아갈수록 사람들을 대하기 어려웠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병원 치료를 당당하게 거부했다면 우울증에 걸렸을 때는 제 발로 찾아갔다. 혼자 있을 때 드는 나쁜 생각이 무서웠다. 암에 걸려 죽는 것보다 우울증에 걸려 죽는 것이 더 심각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공황증상이 왔을 때는 안 되겠다 싶어 병원약도 며칠간 먹었다. 계속 잠이 오고 지각몽을 꾸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참을 만했다. 복합 우울증 진단을 받은 지 2년이 지난 지금은 그래도 한두 달에 한 번만 병원에 가도 될 정도가 되었다.
몸과 마음에 쌓인 독소. 내가 먹고 마시고 행동하며 만들어낸 독소들을 청소해 주기로 했다. 채소과일식은 그렇게 우울한 암환자의 일상에 조용히 찾아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