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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목석 Nov 09. 2023

자연식물식의 실패

실패는 다이어터의 숙명이자 필수관문

2019년 유방암 진단 후 남편이 주방을 맡았다.

남편에게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은 일이 '요리'라고 솔직히 말했다.

차라리 설거지나 빨래는 낫다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뭐 별거 아니라는 듯 자신이 주방을 책임지겠다고 했다.(하지만 몇 개월이 지난 후 그도 주방일이 별거라는 것에 동의했다.)

암 덕분에(?) 여느 다른 워킹맘처럼 회사 근 후 저녁밥을 차리던 생활에서 해방된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퇴근하면 남편의 밥상을 받는 성공한 여자가 되었다.

처음 한두 달은 점심도시락도 싸주셨지만 그건 차마 못할 짓인 것 같아 고사했다.


남편의 요리는 심플했다.

현미밥에 버섯과 두부가 잔뜩 들어간 집된장찌개, 유정란 계란말이가 주였다.

가끔 오래된 묵은지를 재활용한 신김치 볶음이나 시어머니표 양념이 느껴지는 새콤달콤 오이무침도 나왔다.

시간이 여유로울 때는 오븐에 버섯이나 토마토등을 구워서 샐러드와 함께 내어놓았다.

포만감도 들고 알록달록 색감이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빨리 삼킬 수 없으니 오래 천천히 씹어먹었다.

그렇게 두세 달을 먹으니 우리 부부는 둘이 합쳐 10킬로가 빠졌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빠진 것 같다며 안쓰럽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음식 덕분도 있지만 마음고생 때문도 있을 것이다.


그때 이후로 자연식물식에 대한 호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2~3년이 지나니 식단은 다시 암진단 전으로 돌아갔다.

좋아하는 라면을 야근하며 수시로 먹었다.

즉석밥이나 가공식품도 먹는 횟수가 늘었다.

폭음과 폭식은 말해 뭐였다.

커피도 하루 2~3잔은 기본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뿐했던 몸이 다시 붓기 시작했다.

우울감도 심해졌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자연식물식을 기웃거렸다.

밀리의 서재에서 '현미밥채식', '자연식물식', '채소과일식'을 검색했다.

존 맥두걸 박사의 주황색 표지의 책이 눈에 확 띄었다.  



단숨에 그동안 고수해 오던 모든 다이어트 계획을 바꿨다. 지겹게 먹던 삶은 달걀, 두부, 닭가슴살부터 쓰레기통에 처박듯이 던져버렸다. 그 대신 그토록 절제해 가며 참았던 과일, 채소, 녹말음식을 풍성하게 차려 먹었다.

기존의 다이어트 상식과는 달리 나는 매일 배부르게 먹었다. 살찔 걱정 없이 정말 원 없이 먹었다. 그런데도 날이 갈수록 살은 더 쑥쑥 잘만 빠졌다. 매일 1시간씩 지루하게 운동장을 달리던 것도 그만두었다. 하루 10~15분 정도의 짧고 강한 근력운동만 실시했다.

- 존 맥두걸, <맥두걸박사의 자연식물식> 중에서



이 구절을 보고 처음엔 믿지 않았다.

설마 그럴 리가...

저탄고지도 생각 중이었던 나였는데 탄수화물을 실컷 먹어도 된다고?

건강검진에서 매년 당뇨 전 단계가 나오는데 과일을 실컷 먹어도 된다고?

채소에는 기생충이 은근히 많다던데 괜찮을까?

수많은 의심과 의혹을 우선 누르고 따르기로 했다.



가장 쉬운 해독주스부터 시작했다.

살아있는 음식을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아침에 미지근한 물과 함께 먹었다.

우선 맛이 없었다.

아무거나 잘 먹는 남편은 괜찮다고 하는데 입맛이 까다로운 내겐 비위가 상했다.

억지로 목구멍을 벌리며 이내 삼켰다.

2주일 정도 하니 화장실을 자주 갔다.

근데 희한하게 어지러움증이 생겼다.

두통도 살짝 있었다.

명현반응이라지만 찜찜해서 이내 멈췄다.


그러고 나서 다시 원래의 식단으로 돌아갔다.

작심삼일은 아니지만 한 달도 채 못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 다시 생각해 본다.

다른 음식은 계속 동일하게 먹었던 것이다.

커피도, 술도, 라면도 먹었다.

한 끼 정도만 해독주스나 식물식을 한 것.

모든 식단을 바꾸기에는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까지는 살기 싫었다.

인생 먹는 것도 중요한데 힐링푸드인 라면을 끊고 살아간다는 건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생각했다.


최근 핫한 <채소과일식>과 <완전배출>의 저자 조승우 한약사님도 그래서 7:3의 법칙을 해보라고 권유하셨다. 하지만 내가 해보니 그게 더 힘들다. 아는 맛이 무서운 법이며, 1의 나쁜 것은 9의 좋은 것을 금세 잠식시킨다.

최소 20일간은 완전히 식단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최근 남양화 대표님의 플랑다이어트 챌린지에 합류하면서 알았다. 남양화 대표님은 총 3개의 암 진단을 받고 지금은 치유하신 대단한 분이셨다. 덕분에 20일간 제대로 자연식물녹말식을 흠뻑 접했다. 지금은 20일이 지나 혼자서 할 수 있을 정도로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또 유혹에 빠진다면 다시 들어가 함께의 힘을 느껴볼 예정이다.



알코올은 기름진 음식을 더 끌어당겨서 다이어트에 대한 당신의 노력을 깨트려버린다. 술을 마시면서 신선한 채소를 먹는 사람은 드물다. 술이 독하기 때문에 중화시키기 위해서 당신은 저절로 고기를 먹게 된다. 그래서 동양의 승려들이 '술과 고기'를 금하는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금욕주의자라고 해도 술 한 잔 마시는 순간 고기를 찾게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 존 맥두걸, <맥두걸 박사의 자연식물식> 중에서



요즘은 카페에 가서도 커피 대신 허브차를 시킨다.

시도 때도 없이 시켜 먹던 아메리카노와 호주에서의 추억을 되살려 시켰던 카푸치노에게 작별을 고했다.

물론 아주 가끔씩 에스프레소 한잔과 뜨거운 물을 주문할 때도 있다.

허브티 가격이 너무 비쌀 때...;;

하지만 역시나 에스프레서 1~2모금을 마시고 나면 금방 내 몸의 수분이 빠져나감을 느낀다.


알코올은 기름진 음식을 당기게 하고

커피는 달다구리 한 디저트를 당기게 한다.



살아있는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 자연식물식의 실패를 막는 방법이다.




오늘도 죽은 음식을 드셨나요?

그럼 당장 지금부터라도 냉장고 한편에서 천대받고 의혹받고 있는,

효소 가득한 살아있는 과일을 드셔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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