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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목석 Dec 13. 2023

100일 글쓰기를 하고 마늘을 얻다

곰이 사람이 되어가는 시간

“넌 성격이 둥글둥글해서 참 좋아.”


나이 드신 분들이 좋아하는 예의 바른 아랫사람이자, 상사가 원하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예스맨 부하, 홀로 되신 친정엄마가 전적으로 의지하는 맏딸 같은 막내딸이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모난 정이 돌 맞는다'는 말처럼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엄마에게 자주 맞았다. 소유욕도 강한 데다 질투도 많아 친구가 입은 노란색 투피스에 꽂혀 떼를 써대니 친구 엄마가 질려하며 결국 옷을 건네준 적도 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옷이든 학용품이든 사줄 때까지 달달 볶아 엄마는 '초침병'이라고 불렀다.(1초에 한 번씩 '언제 사줘? 진짜 사줄 거지?'를 물었단다)   

      

고학년이 되어갈수록 아빠의 잦은 음주와 빈곤한 집안 살림 때문에 부부싸움이 잦았다. 하교 후 집에 오면 엄마가 내뿜는 우울한 분위기와 아빠의 체념 섞인 한탄, 오빠의 시크함을 넘어선 냉정함에 숨이 막혔다. 나라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며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했다. 자꾸만 척을 했다.

밝은 척, 기쁜 척, 행복한 척, 안 아픈 척.

가면은 끝없이 두꺼워졌고, 진짜 내 얼굴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살얼음판처럼 얇은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2월의 호숫가 빙판처럼 겨우 유지되다 내가 타 지역에 있는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자마자 깨져버렸다. 아니 산산조각 났다.

아빠가 보증을 선 고모가 빚을 갚지 않아 20년 만에 어렵사리 장만한 1500만 원짜리 낡은 아파트는 경매에 붙여졌다. 아빠는 그 후로 집을 나가셨고 국립대학에 다니던 오빠도 친구네 자취방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엄마는 20년 전 살았던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낡고 추운 단칸방으로 혼자 들어갔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지만 모른 척하고 싶었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내 몸뚱이 하나 돌보기도 버거운 신입생이었다. 첫 학기 등록금을 집에서 대준 이후로는 오롯이 학비와 생활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집에서 하던 척을 다시 시작했다. 안 힘든 척, 쌕쌕 웃으며 사장님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내 마음은 숨겼다. 술 마실 때만 유일하게 속마음이 열렸다. 그러니 주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서도 과연 마음이란 게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한 채로 살았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삶은 정말 착한 사람들에게는 덜 힘들 수 있다. 그러나 나처럼 착한 척하는 사람들은 병이 난다. 가슴에 혹이 생기고, 공황증상을 겪으며 안 되겠다 싶었다.

그동안 몰랐던 마음이라는 것을 찾기로 했다. 40년간 몰라줬던 마음이 가엽고 또 궁금했다.   


처음에는 100일 글쓰기를 하자는 멤버들의 제안에 뜨뜻미지근했다. 뭔가 꾸준히 하는 것도 잘 못하거니와 쓸게 없는데 뭘 쓰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의무적인 초등학생 일기 쓰기 숙제 같아 거부감이 들었다.

한 달 동안은 정말 아무거나 썼다. 오늘은 글이 정말 안 써지다는 투정부터, 쓰기 싫다는 반항까지 멋대로 써재꼈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기대는 애저녁에 버렸다. 한 달이 지나자 슬슬 마음을 쓰는 것이 재미있었다. 내 마음이 이랬구나, 하며 서투른 말이 아닌 글로 찬찬히 풀어내니 안 보이던 속내가 보였다.   


우울했던 대학교 3학년 때 학생상담센터에서 6개월의 심리상담 시간 동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폐암으로 돌아가신 친정아빠의 장례식장에서도 사람들이 볼까 봐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내가 글쓰기를 하며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엄마를 죽도록 미워해서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패륜아적인 생각을 글로 썼고 그 글을 다시 읽은 새벽이었다. 누군가에게 말해버리면 지옥에 갈 것 같아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들던 그 마음이 사실 엄마를 너무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서였다는 걸 알아챘다. 그저 생각만 했다면 죽을 때까지 마음에 짐이 되었을 거다.

    

그 글을 쓴 후로 엄마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딸에게 참으로 혹독하고 이기적이었던 그녀는 강인하고 자식 사랑이 대단한 모성애를 가진 엄마로 바뀌었다. 글쓰기를 통해 엄마가 바뀐 게 아니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그 후 더 적극적으로 글쓰기를 통해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속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들은 남편 욕이나 시부모님 험담을 하며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구나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사실 그전에는 왜 저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할까 못마땅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마치 성인군자인양 고고한 척한 것이다. 실은 나 또한 사람인지라 미움과 섭섭함이 자라나고 있었는데 말이다.        


글쓰기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기 위한 도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글 속에서 조차 미사여구를 사용하며 젠체하는 용도로 척을 했다. 100일 글쓰기라는 어쩌면 평범한 듯 비범한 프로젝트가 무뚝뚝한 곰을 진짜 사람으로 만들었다. 물론 과거라는 쓰디쓴 마늘을 씹어먹으며, 입도 위도 아린 시간이었다. 그러나 마늘은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꽤나 좋은 것이라는 걸.

앞으로도 남편 때문에 힘들고, 상사 때문에 짜증 나고, 자식 때문에 속상할 때도 글쓰기를 하며 찐득한 흑마늘만큼 강력한 쓰기의 효능을 느끼려고 한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나탈리 골드버그가 말한 것처럼

‘우리의 목표는 첫 생각에 불을 활활 붙여주는 것,

사회적 체면 또는 내면의 검열관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에너지의 심장부에 도달하는 것,

피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진짜 마음이 보고 느끼는 것을 쓰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쓰기를 통해 웅녀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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