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목석 Dec 27. 2023

글쓰기 모임을 지양합니다

만나기는 싫지만 친해지고 싶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과 소통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하다. 아니 피곤하다. 머리 아프니 그냥 집에 있는 것을 택한다. 혼자 있으면 어떤 자극도 없을 뿐 아니라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무조건 밖에 나가서 밥을 드세요.”


복합우울증 진단으로 휴직 중이라 한 달에 한 번씩 진료를 받는다.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은 언제나 이 말을 앵무새처럼 마지막에 쏟아놓는다. 수많은 연구결과도 있는 우울증에 효과적인 운동을 하라는 이야기보다 더 많이 하신다. 속으로는 ‘밥 한번 사주실 거도 아니면서... 요즘 밥값이 얼마나 비싼지 아세요?!’라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을 참는다.

휴직을 하니 월급이 반토막 났다. 반이라도 나오는 게 어디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직장인들의 족쇄 같은 대출은 휴직을 했거나 말거나 꼬박꼬박 고정지출로 잡힌다. 어쩔 수 없이 마이너스 대출로 메우는 인생 중이다. 그런데 집밥이 아닌 외식을 하라니 세상물정 모르는 처방전 아닌가 싶었다. 


몇 달이 지나 휴직인지 칩거생활인지 모를 시간이 지나면서 병을 나으려고 휴직했는데 오히려 더 다운되는 마음을 발견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보내고 남편은 민박집 청소를 하러 가고 남은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주부생활이었다. 당연히 점심에는 집에 있는 것들로 대충 때워먹었다. 거르기도 일쑤였고 먹어봤자 김칫국이나 된장국이 전부였다. 라면을 안 먹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점점 외출을 안 하고 사람들도 안 만나게 되었다. 집밥을 먹는데도 틈틈이 군것질을 해대니 살은 폭폭 찌고 안색도 어두워졌다. 머릿결은 푸석해지고 눈에 총기도 사라지는 부인의 모습을 보니 몇 달 전 심하게 우울증을 앓던 때가 떠올랐는지 남편이 무조건 나가라고 몰아세웠다. 싫다고, 돈 아깝다고, 만날 사람도 없다고 대답했다.


사실 글쓰기 모임에서 한번 탈퇴를 했었다. 회사를 다니며 야근을 병행하며 한 달에 열 개의 모임을 나가던 당시 모든 걸 한 번에 다 끊어버렸다. 경제독서모임, 영어회화모임, 미라클모닝모임, 부동산공부 모임 등 하나하나 가입하다 한계가 온 것이다. 그렇게 글쓰기 모임에서 잠수 예고글을 올리고 잠수를 탔다. 당시 어떤 유명한 재테크 강사님이 추천해 주신 사이토 다카시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읽고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못 보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거나 배제하고 싶어 하는 상태를 말한다. 반대로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낸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에 침잠하여 자아를 확립한 후에 다른 사람들과 유연한 관계를 맺고 감정을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p190) - 사이토 다카시, 혼자 있는 시간의 힘(위즈덤하우스, 2015)

 

우선 혼자 있어봐야 할 것 같았다. 한 달간 제대로 일명 ‘단독자’의 생활을 했다. 정확하게 32일을 버티고 글쓰기 멤버 중 한 명인 시온님께 전화를 했다. “우리 우선 만납시다!”

두 시간 동안 만나 한 달 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하고 나니 살 것 같았다. 평소 과묵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기 싫은 사람이었다.

주목받고 싶지는 않지만 세상에서 내쳐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하이라이트까지는 아니더래도 인정은 받고 싶었다. 그래서 이거저것 열심히 배우고 오지랖 넓게 사람들을 도와주려 했다.


책이 영화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책을 좋아하는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남편을 은근히 깔봤다. 하지만 가끔 우연히 보게 되는 영화는 삶을 흔들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있다. 책 한 권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집중해서 2시간을 오롯이 몰입하게 된다. 

최근 스웨덴 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영화화한 톰행크스 주연의 “오토라는 남자”를 저녁시간에 보았다.

 

“소냐를 만나기 전 내 삶은 흑백이었어. 소냐는 컬러였지.”

“힘든 날을 이겨내도록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는 게 행복한 거죠! 다 머저리 들이라도...”


사람에 대한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받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과거의 엄마와의 갈등은 엄마 같은 어른들을 만나며 조금씩 풀렸다. 마음에 맞지 않는 동료와 상사들과의 감정은 마음에 맞는 나잇대가 다른 글쓰기 멤버들을 통해 깨달았다. 흑백이던 삶은 누군가를 만남으로 컬러가 되어갔다.


글쓰기만 하는 모임은 지양하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는 글쓰기 모임은 지향한다.

기업면접에서 가장 회피하는 mbti 유형인 infp(인프피)인 분들 특히 적극 환대한다.

다른 사람들이 ‘머저리’라 욕해도 우리는 결국 ‘레전더리_legendary‘로 남을 테니.


모이면 또 신나는 인프피 여자들


작가의 이전글 100일 글쓰기를 하고 마늘을 얻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