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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목석 Sep 12. 2021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지갑과 입의 상관관계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각화된 것을 잘 못 보는 경향이 있다.

결론적으로 감정이입이 잘 안된다.

그래서 목석이라 불리었고 필명이 나목석이 되었다.

(그래, 나 목석이다!라는 의미의 소심한 반항이 들어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드라마는 20대 때 노량진 공시 시절 재미있게 보았던 김명민의 <하얀 거탑>

그 후로는 그렇다 할 드라마가 없었고, 그나마 류준열이 나오는 응사? 인가 응칠인가? 응팔인가? 기억이 안나는 이 몹쓸 기억력. 그 정도였다.


가장 최근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가 이선균이 나오는 <나의 아저씨>라고 하면 집에 TV가 없거나 나이가 엄청 많거나 남자이거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TV는 있지만 평소에는 천떼기로 가려져 있고, 나이는 40대 초반에 여자이다.


아무튼 결론은 나의 아저씨를 보며 이것은 로맨스가 아닌 성장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이유 없이 힘들던 10대와 20대에 키다리 아저씨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꿋꿋이 힘든 삶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중에 하나이기에(나에게도 내 맘 속에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아주 나중에...) 이선균의 캐릭터는 그냥 존재 자체로 든든하고도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가만, 무슨 얘기를 하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까지 왔을까 싶은데...


최근에 우리 사무실에 근무하는 근로장학생의 마지막 근무 날이었다. 이틀 전 점심을 사주고 싶어 나름 무리를 해서(사실 무리를 한 것도 아니다. 여자 4명의 점심으로 5만 원을 썼으니 말이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엘 예약했다. 지난번 점심 때는 20대분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40대 아줌마의 마음으로 카페 분위기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도 있었다. 무튼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조금은 과격한(?_실은 솔직한) 20대의 말투도 알게 되었다. 신선하기도 하고 아...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우스운 감정도 들었다. 나이 들어 서럽다기보다는 지금 그들이 겪을 불안과 두려움, 불안정함이 새삼 느껴져 안쓰러울 뿐이었다.


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며, 여학생은 지난번 아르바이트할 때는 이상한 사장님을 만나 고생했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작은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이곳에서 근무하며 아직 좋은 어른들이 다는 걸 알았어요..."


좋은 어른.


그깟 밥 두어 번 사주었다고 이런 소릴 들을만한 자격이 되는가? 그래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다행이란 마음도 들었다. 아직도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그래서 그 학생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그 좋은 어른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이건 너무 멀리 간 건가?ㅎ)


지난번 직장에서 실장님과 회식을 하며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했어."


더욱 열심히 돈을 벌고 싶어졌다.

그렇게 다니기 싫어 아침마다 이불 킥을 하며 소 도살장 끌려가듯 가던 직장도 더욱 오래 다니고 싶다.

그래서, 더더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나보다 훨씬 능력 있고 현명한, 거기다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들에게 맛있는 밥도 많이 사주면서 입은 꼬매고 귀를 열어 그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주련다.


처음 갔던 카페 분위기 밥집. 다시 보니 또 가고 싶네. 월급날 또 한번 가즈아!


워킹맘의 야근 중, 육체 노동 후, 점심시간 독서타임과 산책시간. 이게 다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발버둥 중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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