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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목석 Sep 13. 2021

완강기 사용설명서가 없어서

내 인생 사용설명서도 없는데


 3층 복도 끝에 완강기가 있는데 소방시설 점검결과 사용설명서가 없다고 지적을 받았다. 나는 그게 거기 있는 줄도 몰랐고 사실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당연히 모른다. 하지만 시설담당자로서 책무를 다하기 위해 사용설명서를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붙여놓았다.


불이 났을 때 이것만 있으면 다치지 않고 땅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인터넷에서 10초면 찾고 10초면 프린트할 수 있는데... 설명서가 없는 완강기는 점점 녹이 슬어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이것을 쓸 날이 평생 없는 것이 가장 행운이겠지만 말이다.


내 인생 사용설명서도 마흔이 되어 짜 보려고 하는 중인데, 40년 동안 정말 되는 대로 막살았구나 반성도 되었다. 이미 녹이 슬어 여기저기 부식되어 버린 몸뚱이지만 그래도 3M 촥 뿌리고 설명서도 잘 보이는데 붙여놓고 내가 얼마나 중요한 인간이었는지 비록 죽을 때까지 단 한번 쓰이지 못하더래도 3층 복도 끝에 달려있는 완강기처럼 묵묵히 내 삶을 지켜나가고 싶다.




 

매일 아침 카톡으로 오는 브런치 메시지.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가 열린다 했다. 혹하는 이벤트. 하지만 나같이 이것저것 이런저런 TMI만 주절거리는 브런치 작가 나부랭이에게는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분명 브런치 작가가 되면 금방 작가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책을 내자는 편집자가 막 달려들 것 같던 말도 안 되는 상상은 그저 꿈같은 이야기일 뿐.


하나의 주제로 일관되게 제대로 된 글을 발행하는 수많은 실력자들 중에서 나는 오늘도 꿋꿋이 브런치가 일기인 마냥 내 이야기를 주절거리고 있다. 그래도 브런치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는 이런 글 못쓰는 쫌생이이기 때문에... 고맙습니다, 카카오 브런치님. 응원합니다, 출판 프로젝트!





점심시간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 나는 꼭 책 소독기를 이용하는데 그 안에서 1분 동안 책장들이 나풀거리면 내가 마치 목욕탕에서 때를 왕창 밀고 머리 말리는 것처럼 시원함을 느낀다.

사실 오래된 책 속에 좀을 예전에 한번 목격한 이유가 더 크다. 처음에는 책 속에 글자가 움직이는 줄 알고 순간 내 눈을 의심하였다나 뭐라나.


너도 나도 조심하자 책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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