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 복도 끝에 완강기가 있는데 소방시설 점검결과 사용설명서가 없다고 지적을 받았다. 나는 그게 거기 있는 줄도 몰랐고 사실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당연히 모른다. 하지만 시설담당자로서 책무를 다하기 위해 사용설명서를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붙여놓았다.
불이 났을 때 이것만 있으면 다치지 않고 땅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인터넷에서 10초면 찾고 10초면 프린트할 수 있는데... 설명서가 없는 완강기는 점점 녹이 슬어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이것을 쓸 날이 평생 없는 것이 가장 행운이겠지만 말이다.
내 인생 사용설명서도 마흔이 되어 짜 보려고 하는 중인데, 40년 동안 정말 되는 대로 막살았구나 반성도 되었다. 이미 녹이 슬어 여기저기 부식되어 버린 몸뚱이지만 그래도 3M 촥 뿌리고 설명서도 잘 보이는데 붙여놓고 내가 얼마나 중요한 인간이었는지 비록 죽을 때까지 단 한번 쓰이지 못하더래도 3층 복도 끝에 달려있는 완강기처럼 묵묵히 내 삶을 지켜나가고 싶다.
매일 아침 카톡으로 오는 브런치 메시지.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가 열린다 했다. 혹하는 이벤트. 하지만 나같이 이것저것 이런저런 TMI만 주절거리는 브런치 작가 나부랭이에게는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분명 브런치 작가가 되면 금방 작가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 책을 내자는 편집자가 막 달려들 것 같던 말도 안 되는 상상은 그저 꿈같은 이야기일 뿐.
하나의 주제로 일관되게 제대로 된 글을 발행하는 수많은 실력자들 중에서 나는 오늘도 꿋꿋이 브런치가 일기인 마냥 내 이야기를 주절거리고 있다. 그래도 브런치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는 이런 글 못쓰는 쫌생이이기 때문에... 고맙습니다, 카카오 브런치님. 응원합니다, 출판 프로젝트!
점심시간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 나는 꼭 책 소독기를 이용하는데 그 안에서 1분 동안 책장들이 나풀거리면 내가 마치 목욕탕에서 때를 왕창 밀고 머리 말리는 것처럼 시원함을 느낀다.
사실 오래된 책 속에 좀을 예전에 한번 목격한 이유가 더 크다. 처음에는 책 속에 글자가 움직이는 줄 알고 순간 내 눈을 의심하였다나 뭐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