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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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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슉 May 23. 2020

'고장남'에 대한 위로

손목은 조심하셔야 해요. 그러다 더 아프면 안 돼요.   


손목이 아파서 파스를 사러 약국에 갔더니 나이가 지긋하신 여자 약사님께서 자신의 손목이 아픈 것처럼 걱정을 해주셨다.


“그래. 나도 승현이 낳고 손목, 발목 다 쑤시더라. 아가씨도 손목 조심해. 그놈의 핸드폰을 안 해야 되는데 그게 되나.....”

“그러게요. 나이 드니까 손모가지 발모가지 다 쑤시네요. 몸뚱어리가 고장 나가나 봐요.”

“에휴, 서글프다 서글퍼. 집에 가서 맛있는 거나 먹자.”

“와! 엄마 우리 뭐 먹을까? 오늘 고모랑 밤늦게까지 놀자. 맛있는 밥도 먹고 주스도 마시자! 2차 하자, 2차!”


엄마와 고모는 몸뚱어리 고장 난 것에 대해 서글퍼하는데, 그 옆에서 승현이는 ‘맛있는 것’에 격렬하게 반응했다. 그래, 너는 아직 온몸에 고장 난 것을 모를 테지. 부럽다 부러워! 얄궂게도 5월의 주말 한낮의 날씨는 화하기만 했다.


해맑은 햇살을 뒤로하고, 우울감 가득한 상태로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와 약국에서 사 온 파스 입구를 뜯어서 한 장을 고이 꺼내 손목에 붙였다. 손목의 욱신거리던 부위가 시원하니 찜질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속으로 빨리 나아져라 주문을 외우며 멍하니 손목을 바라보기만 했다. 몇 주 전부터 주말이 되면 손목이 아팠다. 정확히는 엄지와 검지가 손목으로 이어져서 만나는 부분이었다. 오른쪽의 그 부위가 아팠다가 좀 나으면 왼쪽 손목에서 증상이 나타났다. 두 손목이 번갈아가면서 욱신거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꺼번에 아프진 않더라. 이것은 마치 두 손목이 나에게 시위를 하는 것 같았다. ‘네 손모가지 이런 식으로 혹사시키면 파업할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아니 이미 파업에 돌입한 것일지도 모른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하루 종일 컴퓨터 키보드에 마우스, 핸드폰을 달고 사니 그동안 손목이 아프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떨어지기 전 가장 예쁜 벚꽂의 모습

이렇게 고장이라는 것을 하나씩 몸소 체험하고 나니, 고장이 나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의 감정이 주변의 사물에게도 이입되는 듯했다. 시들어가는 꽃잎, 오랜 기간 나의 잠자리를 함께 하느라 흐물흐물해진 인형, 평소에 너무 좋아해서 자주 신었더니 뒤축이 닳아버려 신고 나가기엔 민망해진 신발, 말을 들었다 안 들었다 하는 내 방 TV의 리모컨, 몸통이 깨져버린 캐릭터가 달린 3색 볼펜 등등 주변에 돌아보니 고장 난 것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사실 그것들은 이전부터 내 옆에 있어왔는데, 별로 눈길이 가지 않다가 내 몸이 고장 나고 보니 그제야 눈에 띈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의 고장난 모습이 마치 나의 현재 혹은 멀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고장 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서글픔을 느끼게 되었다. 어려서는 알지 못했던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랄까. ‘어쩌다 그렇게 되었니. 아주 못쓸 정도로 망가진건 아니야. 안심해.’ 이런 말들을 나도 모르게 내뱉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없었던 마음이다. ‘고장 난 부분을 고쳐서 쓰면 되지. 저들도 망가지고 싶어서 저렇게 된 것은 아니겠지’라는 나에 대한 위안의 말들을 내 주변의 고장 난 여러 사물들에게 하고 있었다.   

   

‘고장’과 ‘버린다’를 같은 의미로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지만 내 손목은 버릴 수가 없다.     

 

밥할 때 뚜껑 옆으로 김이 새서 밥이 맛있게 뜸 들지 않는 전기압력밥솥 뚜껑의 고무패킹을 손수 사다가 몇 번이나 갈아 끼우던 엄마와 아빠

배터리를 갈아 끼워도 움직이지 않는 벽시계의 시침과 분침을 이리저리 돌려보던 아빠

냄비 뚜껑의 손잡이 나사가 헐거워져서 덜렁거리는데도 어떻게든 고쳐보겠다고 맞지 않는 드라이버로 나사를 돌려대던 새언니


“고장 난 거 궁상맞게 그렇게 쓰지 말고 그냥 버려~” 이 말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엄마, 아빠, 새언니는 다 하나같이

“왜 버려~ 여기 조금만 손보면 계속 쓸 수 있는데~”라는 말로 화답했다.  

  

각각 다른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같은 반응을 볼 때면 신기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세상의 모든 것이 소중하게 보이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들도 그 고장 난 것에 대해 감정이입을 했던 것 같다.   


이들처럼 고장 난 것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한편으 사람이 성숙해 가는 모습이라생각이 든다.  고장이 나더라도 흘려보내지 않고 한 번 더 돌아보고 보듬어 주는 모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모습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것은 나이 듦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손목, 어깨, 허리는 망가져가지만, 그것들 망가져가는 만큼 나 자신을 더욱 아껴주고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마음 강해진다. 이런 다짐과 더불어 주위의 작은 사물들도 찬찬히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아픔이나 기쁨을 공감해줄 수 있는 나의 마음도 커져간다.

나의 망가진 곳을 보면 낙엽 진 가을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내 손목, 어깨, 허리와 나이 듦의 성숙을 맞바꾸어 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그것 또한 잘 받아들이는 연습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도 예전에 내가 궁상맞다고 타박했던 부모님처럼 작은 것도 소중히 생각하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해야 현재의 내 마음이 조금은 편할 것 같기에 억지로 나 자신을 포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장을 하다 보면 카멜레온 보호색처럼 나도 그 포장지에 맞춰가게 되지 않을까? 난 오늘도 성숙해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내 몸도 마음도, 우리 집 변기도, 승현이 연필깎이도, 새언니가 아끼는 에어프라이어도, 새언니 발목도 모두 고장 없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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