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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미 Nov 04. 2020

#1. 나 간호사 죽어도 안 해, 엄마

<간호사 살리기>





“ 간호사 할 생각은 없니?”





정확히는 6년 전, 재수학원에서 치르게 된

내 9월 모의고사 성적표를 본

엄마가 건넨 첫마디였다.



때는 2013년 내 나이 17살, 미국 유학을 꿈꾸며

국제학교로 알려진 대안학교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진학해 4년간 유학을 준비했지만,

집안의 사정으로 미국을 갈 수 없는 형편이 되자

나는 그토록 원하던 유학을 포기했다.




내 형편에 맞게 갈 수 있는 건

국내 대학뿐이었던 내가, 17살 끝무렵의 나이에

들어갈 수 있는 고등학교는 없었다.  

시기를 놓친 탓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선

2년을 꿇어야 했고,

실업계 고등학교를 가려면 1년을 꿇어야 했다.


나는 그 두 가지 선택 중 어느 것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고 찾아 선택한 재수학원 생활.

남들보다 차라리 빠르게 뛰겠다는 생각으로

1년을 빨리 국내 대학을 진학하기로 했다.



18살이 되던 다음 해 2014년 1월부터 11월까지

스무 살이 넘는 언니 오빠들과 함께 재수학원에서

생활을 하며 공부했고,

점점 다가오는 수능을 대비하며 치른 9월 모의고사는 봐줄 만한 성적은 아니었으나

전에 비해서는 차츰차츰 성적이 오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한다면 11월의 수능에선

지금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았다.


희망에 잔뜩 부푼 나는 좋아하는 영어를

활용하기 위해 대학의 어느 과를 가면 좋을지

혼자 기분 좋은 고민에 빠져있을 무렵이었다.


그런 나에게 간호사라니?

봉사하는 것조차 귀찮아서 안 하는 내가,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열심히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하는 간호사라니.

얼토당토않은 소리라는 생각을 했다.






“ 엄마, 나 간호사 죽어도 안 해. 그걸 왜 해?

얼마나 고생할지 눈에 훤한데.

난 절대 안 할 거야, 간호사. ”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고, 엄마는 당황하셨다.

왜 간호사는 죽어도 안 하겠다는 건지 묻는 엄마에게 나는 봉사정신이 없는데

간호사는 희생적이다,

간호사는 고생을 너무 많이 한다,

간호사는 흔히 알고 있는 3D 직업이다,

이리저리 말 많은 여초과는 싫다 등의 이유를 대며

아무튼 간호사는 절대 안 할 거라고 못을 땅땅 박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3개월 뒤인 12월,

수능을 마친 뒤 밀려오는 짧은 해방감과

수능 성적으로부터 오는 좌절감을 함께 맛 본 나는,

어느 날 엄마에게 달려가 말했다.







“ 엄마, 나 그냥 간호사 할게. 간호학과 갈래. ”






예상치도 못했다는 듯 엄마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 간호사를 하겠다고? 네가?

너 얼마 전까진 죽어도 안 한다며? ”




엄마 말이 맞다. 죽어도 나는 간호사 안 할 거라며

엄마한테 자신 있게 얘기했던 게

불과 3개월 전이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앞으로 내가 먹고살 길이 급급했다.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수능을

보기 좋게 다 망쳐버려 어디든 가야만 했고,

여전히 어려운 집안의 가정형편으로는

내 이상만을 믿고 지원해줄 수 없었다.



이에 내가 넣을 수 있는 선택지들 중에서

가장 현실성 있고, 가장 빠르고 성공적인 취업이

보장되는 곳을 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도달했고,  

내 모든 감정적인 부분들을 다 배제한 뒤에

현재 지금의 내가 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이성적인 결론이

바로 간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 나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냥 간호사 해야겠어.

나 빨리 시작한 만큼 빨리 취업해서 돈 벌 거야. ”





어쩌면 내 의도는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직업관 중 제일 명확하고 우선시되는 개념이기도 했다.

직업을 가지는 이유 중에선 생계유지,

즉 돈을 벌려는 게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니까.



그런 내 선택을 전적으로 존중한다는

엄마의 응원을 등에 업고, 컴퓨터를 켜

4군데의 전문대 간호학과에 정시 지원을 넣었고,

그중 3군데를 붙어 집과 제일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달려왔던 나의 삶이,

이렇게 남들보다 1년 빨리 대학을 들어가

간호사의 길로 흘러가게 될 줄은 예상도 못했지만

어찌 됐건 취업만 빠르게 확실히 보장된다면

더 나무랄 게 없을 것 같았다.  



다들 힘들 거다 하지만

내가 안 힘들면 그만이려니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 선택을 5년 뒤인 2019년,

첫 직장이었던 대학병원을 들어간 이후부터

끝내 사직서를 제출하기까지, 수십 번이고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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