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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미 Nov 09. 2020

#3.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간호사 살리기>



“ 잘했어. 그동안 고생 많이 했던 거 다 알아.

너 밥도 잘 못 먹어서 살이 너무 빠졌던데,

맛있는 것 좀 잘 챙겨 먹고 재충전한다 생각하고

푹 쉬어 한동안은.”



병원을 그만두고 난 후 내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내게 똑같은 말들을 했다.

고생했으니 푹 쉬면서 재충전하라고.




“너 퇴사하면 하고 싶었던 게 뭐야?”




“음.. 여행?”




보통 퇴사할 땐 다들 버킷리스트가 있던데.

나는 버킷리스트가 딱히 없었다.

7개월 만에 퇴사한다는 건

원래 내 계획엔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러

이리저리 많이 돌아다녔다.

원래 집에 박혀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발길 닿는 데로 돌아다녀보자 생각했다.


어디를 가볼까 하다가

마침 서울에 안 가본 지 너무 오래됐던 터라

경기도에서 잠깐 일하고 계신 아빠도 뵙고,

서울에 사는 친구 얼굴도 좀 볼 겸해서

서울로 1박 2일에서 2박 3일 정도의

일정을 두고 떠났다.



더 머물고 싶으면 더 머물다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내 몸뚱이 하나와 작은 캐리어 하나를 들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가본 서울은 여전했고,

오랜만에 본 친구도 여전했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수다도 떨고,

맛있는 치킨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불빛으로 예쁘게 장식된 청계천을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이제 뭐하고 싶은데, 너는?

생각해 놓은 건 있어?”





“음.. 아니 딱히 없어.

그냥 이제 뭐하고 살아야 하나 싶고 그래.”






“쉬다가 다시 간호사 할 생각은 전혀 없는 거야?”





사실 간호사를 다시 할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처음엔 스스로 자책도 많이 했고,

나는 정말 간호사와는 맞지 않는 건가 싶었다.

꼼꼼하지 못한 성격 탓에 잦은 실수들을 저지르고,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지 못해

느리다고 욕먹기 일쑤인 나에게

간호사라는 직업은

나와 거리가 먼 직업이라는 걸 자주 느꼈었다.





하지만 가끔.

정말 가끔씩은 ‘나도 간호사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일들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홍쌤, 나 이제 내일이면 퇴원해.

의사가 내일 퇴원해도 된다네?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그런데 우리 착한 홍쌤 이제 못 봐서 어떡하지?

보고 싶어서 어떡해. 나중에 또 입원하면 보려나?”





병실에 가기만 하면

나를 손녀딸처럼 반겨주던

넉살 좋은 환자분의 말 한마디에,





“아녜요, 환자분. 이제 아프시지 마시고

병원에서는 우리 더 이상 보지 마요.

더 입원하시지도 말고, 약 잘 챙겨 드시고

앞으로는 더 건강하게 잘 지내셔야 해요, 아시겠죠?

저도 그동안 고마웠어요. 환자분.”





하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던 일이나,







“선생님, 너무 고생 많으시죠?

이 밤에 주무시지도 못하고.

이거 작은 거지만 하나 드세요.”





“아녜요, 보호자분. 다 제 일인걸요. 괜찮아요!”




“우리 딸 생각이 나서 그래요.

우리 딸도 간호학생이거든.

몇 년 뒤에 이렇게 고생할 거 생각하니

마음이 좀 짠하긴 하네.

그러지 말고 이거 음료수 큰 것도 아닌데

하나만 마셔요. 그래야 힘내서 일하지.”






나이트 근무 때 불 꺼진 병실을 돌며

환자들의 상태를 체크하던 내게 다가와

괜찮다며 손사래 치는 내 손에

보호자분이 작은 비타민 음료수 한 병 건네 쥐어주곤 내 어깨를 토닥여주시던 일,





또 실수한 일로 스테이션에서

정신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났던 어느 날.



‘왜 실수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못할까’ 등등

밀려오는 자괴감이 온몸을 감쌌지만,



무섭도록 쏟아지는 추가처방과

점점 뒤로 밀려져 가는 정규 업무들은

내게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재빨리 상황을 체념하고 손 바쁘게 준비를 한 뒤

병실로 들어갔지만 애써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서글픔과 속상함에 얼굴은 빨개졌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래도 최대한 꾹꾹 눌러 담으며

처방 난 수액을 달아주러 어떤 환자에게 다가갔는데,






“선생님, 울지 마세요. 왜 우시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이 힘드시죠? 여기 물이라도 좀 드세요.”





라며 내게 휴지와 물 한잔을 건네주던 환자.

그 모습을 본 순간,

가뜩이나 바짝 타들어가던 목이 순식간에 메어와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져

커튼 뒤에 숨어 잠시나마 흐느꼈던 일 등등.





그간 내 마음속에 따뜻하게 기억됐던

여러 가지 일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만일 누군가 내게 간호사 일을 하며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행복한 적이 많았다고.



나도 간호사라는 걸 알려준

몇 명의 환자들과 보호자들 덕분에 행복했고,

그 힘든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고

기꺼이 대답할 수 있을 만큼이나.



내겐 모두 소중한 기억들이었으며,

나를 버티게 해 준 따뜻한 위로였다.






친구의 질문에 잠시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었던 나는,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중에 또 간호사하고 있을지도 몰라.”






처음으로 바라봤던 그 날의 청계천 야경은

알록달록한 불빛들로 눈부시게 예뻤다.



그동안 숨 가쁘게 돌려왔던 쳇바퀴를 잠시 멈추고

오랜만의 쉼을 맞는 이 순간, 이 지금이

내겐 너무나 소중하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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