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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미 Dec 07. 2020

#4. 아빠의 당부

<간호사 살리기>

친구와 헤어진 뒤 나는 버스터미널에서 아빠를 만나

아빠가 계신 곳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아빠가 퇴근하시기만을 기다렸다.



멀리서 찾아온 딸을 위해 퇴근하자마자

나를 데리러 온 아빠는 어딜 가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석촌호수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 나를 태우고 아빠는 차를 몰고 잠실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석촌호수를 아빠와 함께 걸으며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한참 나눴던 것 같다.



조금 걷다 보니 배가 고파져

호수 주변에 있는 카페 겸 밥집으로 들어갔다.

메뉴를 정하고 주문을 한 뒤,

진동벨을 사이에 놓고 아빠와 마주 보고 앉았다.



오랜만에 마주 본 아빠의 모습은

왠지 전보다 더 야위어 보였고,

시간이 그 사이 또 흘렀다는 걸 알려주듯

아빠의 얼굴 이곳저곳에

더 깊어진 잔주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 그래서 우리 공주는 이제 뭐가 제일 하고 싶니?

계획 세워둔 건 있고?”








음식을 기다리던 아빠의 첫 질문이었다.







“.. 아뇨. 없어요. 그냥 쉬고 싶어요 지금처럼.”






괜스레 아빠를 쳐다보는 게 죄송해서

식탁 위에 올려진 진동벨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작년 이맘때쯤, 누구보다 취업 소식에

기뻐하셨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특히나 내가 사는 지역에선

꽤 알아주는 대학병원이었기에,

부모님은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큰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정말 기뻤었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커서, 부모님께 그렇게나마

자랑스러운 자식이 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런데 잘 다니던 그 좋은 직장을

갑자기 때려치우고 아빠를 만나러

서울로 올라온 딸의 모습이라니.




아빠도 많이 속상하셨을 텐데

내 예상보다 아빠는 훨씬 덤덤하셨고

나를 추궁하지도, 혼내지도 않으셨다.



그런 아빠의 모습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고

그래서 더 죄송한 마음이 들었었다.





“ 그래. 우리 딸이 그런 선택을 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해.

네가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진

많은 고민을 했을 거라 생각한다, 아빠는.”




“...”



“ 공주야.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너의 결정으로 인해 따라오는 결과는

전부 네가 책임져야 되는 거다. 잘 알고 있지?



앞으로 네가 삶을 살아갈 때도,

더 많은 결정들을 내려야 할 때가 반드시 올 거야.



그때마다 항상 잘 기억하고

그 결과를 네가 책임지면 되는 거다.



아빠가 대신 책임져줄 수가 없는 너의 인생이니까.

아빠는 그런 너의 결정을 늘 존중한단다.



그리고 공주야,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아빠는 항상 우리 공주님 편인 거 알지?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

네 말대로 당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푹 쉬어봐.



앞으로 네 인생에서

이렇게 또 쉴 날이 없을 수도 있어.


아빠는 지금 네가 좀 부럽기 시작한다?

이제 겨우 시작이고,

너는 충분히 기회가 많고 젊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것도 다 경험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마음껏 쉬고 즐겨도 보고

그렇게 자유롭게 지내봐.

그러다 보면 네가 또 하고 싶은 게 생겨날 거고,  

새로운 목표가 생길 거라 믿는다.  넌 내 딸이니까.

그곳에서 7개월간 버티느라 수고 많았다 우리 딸.”





사랑하는 딸을 향한 진심 어린 아빠의 당부였다.




아빠의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에 들어와 나를 따뜻하게 녹이고 있었다.





사실 누구보다 가장 속상했을 부모님이지만,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내 마음을 이해해주신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지.




순간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괜히 아빠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꾹 참고 또 참았다.







좋은 직장을 내 발로 뛰쳐나왔지만,

나는 더 잘 살 거고 더 행복하게 살 거야.

그러기 위해 때려치운 거니까 그래야만 해.




그래서 내가 내린 그때 그 선택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거고 또 그렇게 내가 만들 거야.

아빠 말대로 아직 나는 젊고,

주어진 기회와 시간들이 많으니까. ‘




금방이라도 차오를 것 같은 눈물을 삼키며

속으로 혼자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리고 아빠와 함께 주문한 음식을 먹으며

다시 재잘재잘 수다를 떨다

아빠와 헤어진 뒤 남은 일정들을

오롯이 혼자 서울에서 보냈다.




마침 핼러윈 시즌이라

롯데월드에서 퍼레이드를 한다기에,

계획에 없던 놀이동산을 혼자 가서

핼러윈 퍼레이드도 구경하고 놀이기구도 타고

가로수길에 있는 유명한 베이커리의 빵도 사 먹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다이어리도 썼다.



그렇게 무계획으로 즉흥적으로 떠난

3박 4일간의 서울여행을 정리하고

아빠를 한번 더 만난 뒤

다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부산으로 내려가서 잉여로운 생활을 보내는 동안,

나는 내가 내게 주어진 이 황금 같은 시간들을

무엇을 하며 보내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그래서 누구나 그렇듯이,

오랜만의 휴일을 맞이한 사람처럼

집에서 하루 종일 뒹굴고 낮잠 자고,

먹고 싶었던 것도 왕창 먹고,

보고 싶었던 영화와 밀린 드라마도 보며 생활했다.



한 달 동안은 그렇게 달콤한 시간에 젖어들어

하루하루를 목표 없이 물 흐르듯 흘려보냈다.



그러나 이런 삶이 1-2주간은 즐겁고 행복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쉬는 것도 흥미가 없어져갔고

다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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