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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미 Nov 04. 2020

#2. 저 우울증이래요.

<간호사 살리기>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던 그 병원에서의 마지막 날은 이른 가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데이 근무 출근을 위해

여느 때처럼 초점 잃은 눈으로

버스에 올라타던 내 모습.



청량했던 가을 하늘,

그에 어우러지게 울려 퍼지는 참새 소리마저도

꽤나 서글프게 느껴지던 날.



그 날은 바로 내가 신규 간호사로써의

첫 퇴사 날이었다.


더 정확히는 그토록 가고 싶어 내 발로 간 대학병원에, 내 손으로 직접 사직서를 제출하고 온 날이었다.

출근하는 버스에서부터, 데이 이브닝 인계 시간까지 온통 내 머릿속엔 ‘사직’뿐이었다.




밥이 어떻게 입으로 들어갔는지 모르게

무언가를 밀어 넣고 삼키고만 왔던

짧은 점심시간이 지나갔다.



정규 바이탈(Vital check : 환자의 혈압, 체온, 맥박, 호흡,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것)을 도는 시간부터

점점 심계항진이 왔지만

몇 번이고 호흡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제 다 끝날 거라고. 다 괜찮다고.




어렵사리 데이 근무를 다 마친 후,

간호사실에 남아 수선생님께 면담을 신청했다.

어떻게 이 말을 꺼내야 할까 머리가 터질 것 같았지만, 떨리는 내 양손을 맞잡고 조심스레 운을 뗐다.







“선생님, 정말 너무 죄송합니다만,

 저는 더 이상 못할 것 같습니다.”








내 말을 들은 수선생님은 놀란 토끼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말이야, 그게? 응? 못할 것 같다니?

잘하고 있잖아 선생님. 여태 잘 버텼잖아.”






그 말을 듣고 나는 가방에서 가져온 약봉투를 꺼내

책상 앞에 올려놓았다.





“선생님, 저 어제 정신과 다녀왔어요.”






그리고 고개를 떨군 채로 말했다.







“ 저 우울증이래요.”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책상 위에 놓인 약봉투와 나를 번갈아보던 수선생님은





“그래? 선생님 많이 힘들었겠네. 병원에선 뭐래?”






“ 약물 치료해보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약을 받아왔는데, 겁이 나서 못 먹었어요.”





약봉투에 적힌 내 이름 세 글자.

그 밑에 적힌 ㅇㅇ 정신과 의원.

살면서 잔병치레가 잦았던 나는 어릴 때부터

많은 약을 먹어보고, 다양한 약봉투를 받아봤지만

내게 정신과 약은 생소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약봉투에 적힌 글자만으로도

내겐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더 충격적이었던 건

뒤에 이어진 수선생님의 말이었다.




“선생님, 많이 힘들었다는 거 잘 알아.

사직 면담도 이미 여러 번이나 했었고.

그래도 그때마다 잘해보자고 약속했었잖아, 아냐?

그리고 우울증 걸린 게 큰 일 같지?

대학병원 다니는 간호사들 다 검사해봐.

간호사들 중에 우울증 안 걸린 사람이 어딨어?

대부분 우울증이라고 나와.


그러니까 그냥 지나간다 생각하고 더 버텨봐.

약도 좀 먹고 치료도 좀 받아가면서.

선생님 이런 거 하나 못 버텨서

나중에 더 힘든 일 일어날 땐 어쩌려고 그래?

이제 겨우 사회생활 시작했고 나이도 어리잖아.

선생님도 노력을 좀 더 해야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들은 게 정말 맞는 건가 싶었다.

간호사들은 대부분 우울증에 걸렸을 거라는 말.

직장을 다니면서 우울증을 얻는 게,

그게 정말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건가?



삶을 살아갈 돈을 벌기 위해,

혹은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라서,

또 본인이 잘하는 일이라는

이유들로 선택하는 게 직업 아니던가?


그런 이유들로 선택한 일과 함께 뒤따라오는 게

이런 정신적인 고통이라면,

그건 내가 가진 직업관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돈을 번다 한들,

마음이 썩어 병들어간다는데

대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일하다가 우울증 걸리는 게, 당연한 게 어딨어요..

저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그만두는 게 무책임하다는 것도 아는데, 솔직히 그런 것조차 머릿속에 안 들어올 만큼

괴롭고 죽을 것 같아요.

저도 노력을 안 한 게 아니잖아요.

수선생님도 아시잖아요.


매번 동기들과 비교당하는 것도 속상하고,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물도 못 마시고 일했는데도

느리다고 욕먹는 것조차 너무 억울하고 속상해요.


7개월 동안 거의 매일매일을 울면서

출근하고 퇴근했어요.

집에 와서도 시체처럼 누워 울다가

지쳐 쓰러져 잠든 적도 많고요.

가족들도, 주변 사람들도 그만두라고 했는데

제가 1년 버티고 싶어서 안 들리는 척했어요.


근데요,

제가 너무 불쌍해서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아요.

제발 그만두게 해 주세요. “



한 마디 한 마디, 그동안 참아왔던 말들을 내뱉으며

눈물이 봇물처럼 터져 흘러내렸다.

이 말을 하면서나 스스로도 괴롭고 힘들었으니까.



정말 1년, 그 1년을 버티고 싶었다.

1년만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는 수많은 말들에

위로를 얻고 힘을 내며 1년을 버티려 악착같이 지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고,

내 발로 정신과를 찾아가기까지 많은 생각에 잠겼으나 진단을 받는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걸.




그래,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닌 감기 같은

마음의 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겐 단순한 감기 따위가 아니었다.



언제나 고통은 누구에게나 다양하게 찾아오며,

각각 다른 무게로 사람을 짓누르니까.



누군가에겐 가벼운 감기 같은 우울증이

내겐 더 이상의 대학병원 간호사 생활을

하면 안 된다는 무거운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이었다.



대학병원에서의 신규 간호사 생활 7개월.

짧디 짧은 고작 7개월의 시간이었다.



입사 초반의 걱정되지만 그래도 나는 잘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밝은 얼굴로 출근 준비를 하던 내 모습과,

7개월 후 몸과 마음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우울증 약을 들고 와선 사직을 시켜달라며

울고 부는 내 모습은 너무 초라하리만큼 비교됐다.



1년을 어떻게든 버티고 싶었고

노력하다 보면 실수도 줄어들 거라고,

나도 언젠가 인정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고작 7개월로는 섣부른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고 수십 번이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물 한 모금 마시기 힘들어

바싹 타들어가는 목에

고작 침 삼키는 것밖에 못했던 신규 간호사는,



생리대를 갈 시간조차 없어 바지에

피가 묻은 걸 본 환자와 보호자들이 직접 알려주고,

그에 수치심을 느낄 새도 없이

재빨리 갈아입고 다시 일을 하러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신규 간호사는,



쉬는 날에도, 출근 전에도, 퇴근 후에도 공부를 하고

실수한 것들을 곱씹으며 사고 치지 말아야지

몇 번이나 다짐을 하고 마음을 다스려봤지만

그런 사소한 노력들이 무색하리만큼

신규 간호사인 나는

매일매일을 수십 번이고 무너졌다.



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간호조무사랑 요양보호사랑 네가 다를 게 뭐냐며

자존심을 짓밟는 소리들을 듣고,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데 이건 정말 배운 적조차 없어 모른다고 대답하니 거짓말하지 말라며

어느 새부턴가 양치기 소녀 취급을 받았다.



매번 근무 때마다

나를 쏘아보는 다수의 매서운 눈빛들,

내가 짜증 나고 싫다며

인계 시간에 들려오는 내 얘기들,

내가 다가가면 순식간에 굳어지는 표정들로 가득 차 내 인사만 오롯이 무시당하는 그 냉랭한 곳.



그곳에서 혼자 눈칫밥을 숨 쉬듯 매일 먹고살았던

신규 간호사였던 나는,

더 이상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사는 게 사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꼭 껍데기만 산 채로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 죽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1시간을 울고 불며 사직 면담을 했다.

내일부터 당장 못 나올 것 같다고, 제발 좀 놓아달라고 그렇게나 사정을 했다.


얼마나 무책임한 행동인지도,

얼마나 민폐를 끼치는 행동인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이기적이었던 나는

당장 내가 미쳐 돌아버려

내일 출근길에 달려오는 차로 뛰어들까 봐

그게 더 싫고 무서웠다.




성인이지만 철 없이 어린애처럼 떼쓰는 모습에

결국 수선생님은 백기를 드셨고,

사물함에 있는 짐을 다 싸고

간호부로 올라가서 사직서를 쓰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 길로 면담을 마무리한 후

탈의실로 가 내 짐을 다 챙기고



입사 당시 OT 때 우스갯소리로 넘겼던




“우리가 다시 보는 날은 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랍니다. 아마 두 번째로 볼 때는 퇴사하는 날 보게 될 거예요.”




라는 간호부장님의 말을 떠올리며 간호부로 향했다.









사직서를 작성하고 꾀죄죄하게 얼룩진 명찰과

간호화와 근무복을 반납하며 속으로 다짐했다.



내가 그토록 원해서 들어온 이 대학병원을

내 발로 선택해서 나가는 것이다.

1년을 정말 어떻게든 버티고 싶었지만

현재 내 정신 상태와 몸 상태로는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



사실 버틸 수도, 더 버티고 싶지도 않아서

이 선택을 하는 것이고

후에 내가 내린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다.



만약 후회한다면 그 후회 또한

내가 감당해야 할 나의 몫이며,

혹여 후회하지 않는다면

이 선택을 내린 것에 대해서

정말 잘한 것이라고 느낄 수 있게

더 열심히 잘 살아야 한다.




개구리도 더 높이뛰기 위해서

더 주저앉고 뛸 준비를 한다지.


그동안 많이 애썼고 수고 많았으니,

우선 이제는 좀 몸과 마음을 잘 추스르며

잠시 쉬어보자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건물 밖을 나왔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온 뒤 바라본

바깥 하늘은 여전히 청량했고 예뻤다.






그렇게 첫 직장인 대학병원을

7개월 만에 관두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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