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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미니마니모 Dec 08. 2019

정기고 팬 캠프, 그날 밤의 기억

성덕의 꿈을 이룬 시간이랄까

 그저 꿈만 같던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가수를 눈앞에서 보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와 함께 사소한 대화를 나누고 술잔을 기울이기까지 한 순간들은 아마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니 잊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글로 남겨 본다.






 시작은 그의 한 마디 말로 시작되었다. 인스타그램의 라이브 방송에서 팬들과 함께 하는 MT를 가고 싶다는 발언에 팬들의 마음은 심하게 요동쳤다. 



에이, 설마 그러기는 어려울 텐데. 그래도 혹시? 


 아마 모두의 생각은 조금씩 달랐겠지만 방향은 같았을 터였다. 가고 싶다. 미치도록 가고 싶다. 소수의 인원에 내가 포함되었으면 좋겠다. 대체 언제일까, 내가 갈 수 있는 날일까 등 온갖 생각 속에 파묻혔다. 물론 그 후 별다른 이야기가 없으면서 생각 또한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와디즈라는 사이트에서 펀딩을 오픈한다고 했다. 그리고 리워드에 포함된 제주도 팬 캠프. 팬 캠프라니, 이름부터가 세련되고 즐거워보였다. 치앙마이에 있어서 유심을 바꾼 탓에 동생과 친한 친구를 괴롭혀가면서 알람 설정을 했고, 결국은 펀딩에 성공했다. 성공 당시의 기분은 간단 명료했다. 기뻤다. 내가 이러려고 퇴사를 했구나. 이러려고 그동안 쇼미더머니를 비롯한 방청에 실패했던 것이구나.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고마워했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팬 채팅방부터, 혼자 온 사람이 많았던 그를 짝사랑하는 소녀들은, 쌩판 남으로 만났지만 그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동단결할 필요가 충분했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밥을 먹고 즐거워했지만 조금은 부족했다. 플레이스 캠프 제주의 장소는 좋았지만 우리가 바랐던 것은 더 가깝고 친근한 시간이었다. 아쉬워하던 우리에게 그는 예정된 시간이 지났음에도 함께하고 싶은 뜻을 내비치며 어떻게 할 지를 물었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지 다시 오지 않는다. 나는 외쳤다.



잔디밭에 모여 앉아서 맥주 마시면 어떨까요?


 기꺼이 받아들여진 나의 의견은 금세 한강변의 대학생 무리를 떠올릴만한, 약간은 찌그러졌으나 꽤 둥그렇다고 할 수 있을만한 원을 만들어냈다. 먼 자리에 앉을 뻔하게 되어 발을 동동 구른 것도 잠시 그의 옆자리가 비었다.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잽싸게 이동해서 옆에 앉았고 이내 행복해졌다. 하염없이 행복했다. 기뻐서 허벅지를 팡팡 치며 10분 간격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다음은 정말 꿈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벌써 어렴풋한 그날 밤의 기억이다. 정말 현실이었던 게 믿기지가 않아서 표현마저도 아련해져버렸다. 










 비님이 오신다고 하더니, 밤하늘은 별 하나 뜨지 않고 짙푸른 구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캠프의 하늘은 샛노란 전구 수십 개가 아름답게 비춰줘 밝게 빛나고 있었고, 잔디밭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인 청춘들이 한잔 두잔 젊음을 기울이고 있었다.


 분명 불빛이 가득했는데 이상하게 내게는 세상이 어두웠다. 옆에 앉은 그의 손짓, 표정, 입모양 하나하나에 너무 집중해서였을까. 고작 하루 지난 기억이지만 맞은편에 앉았던 사람들의 얼굴은 희미하기만 하다. 선명하게 남은 건 내 가수의 옆얼굴, 미소 짓던 입매, 편안한 어투의 목소리, 귀를 기울여주던 표정들. 다시 생각해도 가슴 벅차오르는 순간들이었다. 행복에 겨워서 어찌할 줄 모른 채 방방 허벅지만 두드리면서도, 내일이 오고 모레가 왔을 때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남자치고는 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길고 예쁜 손가락과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피부까지. 소주가 쓰다고 투정부리는 것마저 사랑스러웠던 사람. 욕심 조금 부려서, 그날의 나를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바로 옆에서 두 시간 가량을 함께 있었으니까. 이정도까지는 바라도 괜찮지 않을까. 


 부디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뵈어요: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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