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미니마니모 Dec 10. 2019

젊고 몸이 성한 것과 늙고 병든 것

혼자 생각을 하는 것마저도 고민이 됩니다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막상 문장을 적으면서도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버스를 탄다'라는 명백한 사실이 적고 나니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나는 정말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어쨌든 요새 어찌된 영문인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만 하면 2분 후쯤 버스가 도착한다. 언제까지 이런 행운이 지속될까, 하나의 행운은 또 다른 하나의 불행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일지 모른다며 댓가를 생각하게 되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불행에 익숙해져 불행이 없음에도 불행을 생각하는 안쓰러운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도착한 버스는 '보통'이라고 하지만 꽤 사람이 많았고 자리에 앉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발목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는 것에 감사해하면서, 비록 물리치료 덕일지라도 여하튼 간에 쉬고 있으니 낫기는 낫는구나 싶더라. 지독히도 낫지 않는다는 발목도 이러는데 사람 마음은 오죽할까. 


 버스에서는 유독 생각에 잠기게 된다. 

 물론 서 있을 때보다는 앉아 있을 때가 잘 되는 것은 물론이다. 몇 정거장 지나면 기차역이 있으니 사람들이 많이 내리겠거니 생각했고, 두 정거장 못 가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상념에 빠져들면서 막 다음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다리가 불편해보이는 할아버지까지는 아니고 아빠 뻘쯤 될 것 같은 아저씨가 탔다. 다리를 심하게 저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와 다를 바 없어 보이기는 했다. 아저씨는 못마땅한 얼굴, 아마도 그것이 원래 표정일 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던,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앞 자리를 휘휘 둘러보았다. 나의 추측으로는 아저씨의 불만은 앉을 자리와 타인의 양보의 부재에 따른 것이었다. 저상버스였기에 앞자리라고 표현이 가능한 1층 자리에는 사람이 가득 차 있었고 내 앞의 할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젊은이들이었다. 괜히 1층에서만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시다가 내리는 문 앞에 섰고, 한 정거장 지나서 내렸다.




 별 일은 없었다. 다리가 아팠던 나는 우연히 빈 자리에 앉았을 뿐이고, 이후 누군가 탔다가 바로 내렸다. 그 뿐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시비를 건 것도 해코지한 것도 아니었고 나는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마음에는 작은 생채기가 났다. 

 그 분이 서 있는 동안 내 마음은 계속해서 불편했다. 내 몸은 불편한 발로 인해 안쪽을 향해 있었지만 괜히 멋쩍어, 아마도 누군가 봤다면 괴상했을,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바깥쪽으로 돌렸다. 다리도 불편하고 디스크와 근육 뭉침 증상도 여전해서 서 있음이 힘들지만, 젊다는 이유만으로 불편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느끼도록 교육을 받은 것일까. 고작 한 정거장을 가시려고 버스를 탔음에도,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먼 산을 바라보게 되었고 기분이 상했다. 정말로 기분이 상한 것인지 속상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지만, 무언가로 인해 마음이 불편한 것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의 느낌과 감정은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 내가 만든 것일까. 어찌 되었든 나는 영 마음이 편하지 않아졌다. 잘못하지 않고서도 죄를 지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젊고 몸이 성한 것과 늙고 병든 것. 후자가 압도적으로 우세할 것 같지만, 그렇다면 조금 비틀어보면 어떨까. 젊고 병든 것과 늙고 몸이 성한 것, 또는 젊고 병든 것과 늙고 병든 것. 무엇이 진리이고 옳은 내용인 걸까. 더 많이 비틀어서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자신의 실수로 그렇게 된 것라면 몸을 잘 챙기고 건강한 사람들은 조금 피곤하더라도 항상 손해를 봐야 하는 것일까. 이 논리에 따르면 나는 피곤한 것은 아니었기에 서 있어야 마땅했다. 


 요즘에는 옳고 그름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옳고 그름을 생각하다 보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자꾸만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다. 비틀어보면서 새롭고 좋은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또한 가지고 있다.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그것이 참 어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기고 팬 캠프, 그날 밤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