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숨고 싶을 때, 강릉 출간 기념 파티에서
올해 2019의 가장 소중하고 귀한 인연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좋아하는 언니가 출간 기념회 겸 브랜드 런칭파티를 열었다. 나도 꼭 해보고 싶었음에도 여러가지 상황적 여건으로 인해 미루고 다음에 해야지라고 마음 먹었던 것을 언니는 정말 바쁜 와중에도 열고 성공적으로 치뤄냈다. 감탄스럽고 대단하고 부럽고 기분 좋았던 파티의 장면을 미약한 솜씨로나마 글로 표현해서 보여주고 싶다. 본격 헌정글!
작가, 요즘에는 독립출판이 유행이라 작가라는 말을 쓰는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그래도 역시 책을 냈다는 자체가 작가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 역시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얼마나 책을 만드는 것이 힘든지를 알기 때문이다. 책은 써낸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 힘들다고 한 작은 차이를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독립출판이 아니라 처음부터 대형 출판사와 컨택하여 바로 책을 써낸 이는 많지 않을 테지만 만약 그렇다면 경우가 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언니는 나의 입장에서 오롯이 한 명의 작가였고 2019년 큰 일을 달성한 사람이었다. 작가, 박시연의 출간 기념회라는 말이 왜 이렇게 뭉클하게 다가오는지는 아마도 지인만이 알 수 있을 감정이겠지만.
따뜻한 색감의 나뭇결이 곳곳에 묻어나는 카페 정이정은 포근한 느낌이었다. 습하면서도 찬 바람이 두꺼운 옷깃에도 스며들며 몸을 떨게 만들어도, 정이정에 들어오면 몸이 사르르 녹는 것만 같은 분위기. 언니의 친한 후배 몇몇이 모여 할머니께 물려받은 집을 개조해 꾸몄다는 카페는 공간에 대한 설명만으로도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살뜰하게 사람을 챙기고 분위기도 놓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박시연이라는 사람은.
세밀하게 엿본 공간은 크게 마당과 1층, 2층, 그리고 2층 테라스로 이루어졌다. 마당은 추운 겨울이라 사용하지 않고 있었지만 가을에 온다면 알록달록한 알전구 조명을 몇 개만 달아도 화사하게 변할 것 같이, 언제라도 쓸 수 있도록 잘 정돈되어 있었다. 마당에서부터 내부가 훤히 보이는 유리창과 나무색 기둥 안을 엿보면 언니가 손수 포장하고 꾸몄을 책과 굿즈들이 놓여 있는 흰 테이블이 보였다. 옆에 은은하게 자리한 조명은 공간과 어우러져 더 아름답게 빛났다. 잠시 멍 때리다가 입김 호호 불며 돌계단에 두어 걸음 올라 나무 문을 열었다.
또다른 느낌이 시작된다.
나무색, 하면 떠오르는 게 나는 오묘한 갈색이지만 또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텐데, 어쨌든 카페 정이정은 나무색과 실제 잎이 달린 식물들이 적절하게 배치된 곳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멋진 공간에 필요한 삼박자인 풀과 나무와 아이보리를 고루 갖춘 곳이었다. 더해서 알맞게 자리한 고풍스러운 자개장들과 예술작품들은 편안함 속에 고급스러움까지 담아냈다. 2층까지의 설명은 더 필요없을 것이다. 직접 가보고 느끼면 되는 곳이니까.
언니의 작품들은 가지런히 제 자리인 양 놓여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정갈함을 보여주기 위해 언니는 지난한 밤들을 지새워야 했을 것이다. 일찍 와 한산한 중에 느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작품 하나하나에 깃든 수고와 노력과 정성을, 천천하게 둘러보았다.
언니의 첫 번째 '꽁꽁 숨고 싶을 때, 강릉'이 시선을 끌어 나를 붙잡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볼 때의 시야처럼, 희고 고운 벽에 난 하나의 창으로 강릉이 눈에 가득 담긴다. 몸이 강릉에 있지 않아도, 서울에서도, 어디에서도 강릉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게 하는 책의 표지도 언니가 생각한 것이었다. CEO라는 직함을 달아봄직한 사람이 분명했다.
다른 버전의 '꽁꽁 숨고 싶을 때, 강릉'은 좀 더 차분했다. 그러나 마냥 조용한 느낌만 주는 것이 아닌 편안하고 안정감을 갖게 했다. 이런 강릉, 저런 강릉의 모습을 다 보여주고 싶었던 욕심쟁이는 결국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보는 이로 하여금 두 권 다 갖고 싶게 했으니까. 마치 내가 펭수 달력을 상세 페이지도 보지 않고 두 버전 다 결제해버린 것처럼:D
꽁꽁 숨어 있던 사람들이 강릉 여자의 삶을 응원하기 위해 속속들이 모였다. 과장 조금 보태어 마차를 타고 오는 귀족들 같았달까. 멀어서 어떻게 해, 라며 수시로 미안한 웃음을 짓는 주인공의 마음은 어땠을지 몰라도 나는 오히려 동화책 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참 좋았다. 왕자님의 성이나 귀족들의 연회는 항상 먼 곳까지 마차를 달그닥 달그닥 달려야 도착했고, 따뜻하고 다정한 분위기에서 기쁘기만 한 사람들이 함께였기 때문에. 그리고 왜인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낯선 따스함이라, 오래도록 즐거웠다.
허둥지둥 달려온 쉐프가 즉석에서 선보인 만찬과 변태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술에 해박한 지식을 뽐내는 전문가가 추천해 준 와인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고, 주인공은 아름다웠고, 사람들은 행복했다.
꿈 같은 시간은 언제나 항상 현실로 돌아와야 하기 마련이라, 파티는 끝났고 와인은 모두 비워졌다. 서둘러 떠나버린 손님들을 보내면서,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오웬 윌슨이나 신데렐라가 느꼈을 약간은 허망한 기분을 언니도 느꼈을까. 파티가 끝나고 비어버린 와인잔이 마음의 온기까지 가져가 버리지는 않았기를. 그리고 언니의 앞으로의 삶이 더 아름답고 순탄하기를.
'꽁꽁 숨고 싶을 때, 강릉'은 강릉에서 나고 자란 서른 세 살의 프리랜서 언니가 쓴 에세이입니다. 누구나 가끔 훌쩍 멀리 떠나고 싶을 때, 깊고 너른 바다가 포근하게 안아주는 강릉으로 오라고, 그렇게 손짓하는 것만 같은 책이에요.
저도 예전에 친구들과 놀기로 하고 각자 다른 지역에서 출발했다가, 친구들의 차가 막히는 바람에 혼자 3-4시간 가량 강제로 강릉 여행을 하게 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강릉의 향교와 시장에서 느꼈던 따스한 정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조만간 언니의 에세이를 목표 삼아 강릉 여행을 가볼 생각이에요. 좋아하는 사람의 기억의 자취를 따라 한 걸음씩 여행하다보면 삶도 어느새 닮아있지 않을까요. 한없이 시리고 추운 올 겨울, 따뜻한 여행 에세이 같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