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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미니마니모 Jan 24. 2020

버스 안, 타인의 기침 소리

내가 예민해진 건, 예민해져버린 건

 내가 예민하다는 것을 예전엔 부정했었다. 보통 예민하다는 말을 듣는 상황이 나에 대해 좋지 않은 뉘앙스로 말을 할 때거나, 어른들이 나무랄 때가 많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예민할 수도 있지 뭐,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이 조금씩 예민함을 받아들이게 바뀌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어쨌든 예민하다는 나를 인정하고 나니 조금은 편해졌지만 마냥 항상 예민한 것만은 아니다. 각각의 상황에서 나의 예민함은 어느 정도의 이유가 있었고, 하나하나 되짚어 보니 경험이 날 예민하게 만든 것이었다.






 아홉시 반, 버스에 탔다. 여느 때와 같이 조용한 아침 버스였고 사람이 조금 많은 편이었지만 빈 자리는 있었다. 어느 누구와도 부딪힐 일 없는 맨 앞자리에 냉큼 앉았다.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 채 가만히 있었다. 요 근래 몸이 좋지 않아 핫팩을 계속해서 배에 대고 있어야 했는데, 아무리 움직이는 버스라도 내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핫팩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어쨌든 혼자 앉는 앞자리를 사수했고 비록 자세는 굳어있더라도 편안해진 마음으로 멍해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처음엔 작게 들렸다. 콜록콜록. 호흡기쪽 부서에서 일해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대중 속 기침 소리를 유심히 듣게 된다. 다시 반복된 콜록콜록. 점차 커지고 잦아지는 걸린 듯한 기침 소리에, 저 사람이 흡연자이건 아니건 폐가 영 좋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단순 감기라고 하기에는 뭔가 거북한 소리가 함께 있어서, 왠지 전염이 되지 않을까 싶은 찝찝한 기침소리. 나는 그 사람의 오른쪽 앞 옆 자리였다.


 


 신종플루는 내가 고등학교 때 처음 등장했고, 나는 그것이 한창 유행이 시작되기도 전에 걸렸었다. 당시의 나는 면역력이 약한 편이 아니었는데, 흔한 감기 한 번 걸린 적 없어 건강을 자신하던 때였다. 안타깝게도 내 바로 뒷자리의 친구가 우리 도시의 신종플루 첫 확진자였고, 계속되는 친구의 기침을 온 몸으로 받아내 플루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때만 해도 기침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인식이 없었고 신종플루 이후에도 크게 나아진 편은 아니었다. 메르스 같이 큰 일이 터지고 나서야 마스크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이후 병이 낫기까지의 고통스러운 과정은 잊을 수 없다. 방에 격리당해 펄펄 끓는 열을 온전히 혼자서만 감당해야 했던 날들은, 며칠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암흑 속이었다. 힘겹게 병이 나았지만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반복되는 감기, 철마다 오는 독감은 모조리 나에게 찾아왔고 견뎌야했다. 지겹게 비타민을 먹고 철마다 홍삼, 한약 팩을 뜯으며 오르지 않는 면역력에 괴로워했다.

 신종플루 이후부터 누가 뭐라지 않아도 마스크를 자주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초미세먼지로 마스크는 나와 한몸이 되었다. 공기청정기와 마스크는 새로운 습관이 된 지 오래고, 손을 잘 안 씻어서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엄마의 말에 건조해진 손과 핸드크림도 또다른 습관이 되었다. 나쁜 습관은 아니지만 습관의 이유들이 참 씁쓸하기는 하다. 무엇이든 일이 생기기 전에는 모르는 걸까.



예측할 수 없는 삶이 즐겁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하다.



 그래, 트라우마라고 부를 수 있겠다. 뒷자리에 탄 기침하는 사람들이 뭐하고 살며 평소 습관이 어떤지 전혀 알지 못하는데, 그들의 기침과 눈에 보이지 않을 분비물들을 나의 머리와 등으로 그대로 맞아내야 하는 것이 무섭다. 기침 에티켓이라는 말이 언젠가부터 쓰이고 있다. 하지만 어떤 신조어든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알고 쓰기 때문에, 오히려 잘 알아야 할 사람들은 모르는 때도 많다.

 가래 섞인 기침을 뱉는 사람들을 피해 자꾸만 버스 뒷자리로 자리를 옮기면서도 내 마음 한 켠엔 불편이 쌓인다. 같은 기침이어도 지인들에게는 거리낌이 조금은 덜하기 때문에, 내가 너무 예민해서 모르는 이들을 배척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나의 지인들은 기침 에티켓을 잘 실천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점점 불편한 게 많아지는 내가 나도 불편한데 이 불편함으로 누군가에게 나도 불편을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도 무럭무럭 자라는 것 같다.



더러워서 피하는 게 아니다.
무서워서 피하는 거다.


 타인의 기침소리는 좋지 않았던 때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어릴 적 아팠던 기억, 아팠던 환자들의 기억들까지. 싫다. 더 이상은 아픈 사람도 아프게 하는 사람도 내가 아픈 것도, 다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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