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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미니마니모 Nov 02. 2020

병원 분위기가 좋을 수도 있구나

좋았던 기억은 글로 남겨야 해

  간호사로 처음 일한 병원은 사람 때문에 많이도 힘들었다. 그래서 병원(직장)에서 분위기가 좋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문장조차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에는 운좋게 분위기 좋은 병동에서 일한다는 친구들이 하던 말도 한 몫했다.


다들 정말 잘해주시고 분위기 좋은 편이지. 
그래도 간호사 집단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건 있긴 해.



  따라서 두 번째로 입사하게 된 병원에도 기대는 전혀 없었다. 면접 때 이전 병원의 퇴사 이유를 묻길래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관계가 힘들었다는 나에게, 우리 같이 작은 중소기업에서는 그렇게 해서 직원이 퇴사하게 할 수 없다면서 안심을 시켰다. 물론 나는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니 실제로 편안했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편안함을 느끼다니, 며칠 간 편안하다는 감정이 얼마나 낯설었는지 모른다. 직장은 직장이다보니 위계 관계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뿐이었다.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웃으며 일할 수 있었다. 혹여 불편이 생긴다 해도 대화를 통해 해결이 가능했다. 누그러질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해당 과의 차이점이 큰 파이를 차지했던 것 같다. 정신과에서 나는 신규였지만 간호사로서는 경력직으로 취급되었다. 짧은 2년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름 능숙하게 필요한 간호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문제는 사람과 일이 연관되어 발생하는 것이기에, 사람들에서의 차이도 있었다. 급여가 적어서인지 과 특성인지 개인의 영역인지 알 수 없지만 병원에 매여사는 직원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욱 감정을 덜어내고 서로를 대할 수 있었다. 일은 내가 커버 가능한 선이었고 헉헉거리며 일하긴 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말 좋았다. 너무 짧은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거의 다 좋았던 많은 분들을 글로나마 기억 속에 남겨보려고 한다. 




  간호파트의 장이었던 팀장님은 나이로서도 연차로서도 무시 못할 분이었다. 은근히 예우를 바라시는 것을 티내곤 하셨는데 오히려 그게 더 인간적인 느낌을 줬다. 사실 굳이 엄청난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지금껏 살며 탑재한 기본적인 예의에서 더 요구하는 바가 있는 건 아니었다. 본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셨고 질문을 좋아하시기도 했다. 이야기의 중심은 주로 상대에게 있었고 많은 것을 궁금해하는 분이었다. 이전 병원 퇴사 후 어쭙잖은 경험들을 한 나를 신기해하고 재밌어 하시기도 했다. 물론 상사이다 보니 완전한 동료라는 느낌보다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오히려 정신과적인 경험이 부족하지만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는, 풍부한 경험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한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고도 감사한 분이었다. 


  함께 일했던 선생님들 중에는 조무사 선생님도 있었는데, 이분을 만나면서 내 안의 벽이 부서지는 경험을 했다. 흔치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 편견을 갖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나를 인지하게 함과 동시에, 바로 그 생각을 깨부숴버리는 사람들. 나도 어쩌면 수없이 많은 편견에 찌들어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덕분에 또 다른 한 세상이 열렸다고 감사를 표하고도 싶었다. 이조차도 고립된 생각일 수 있어 말하지 않았지만. 

  일처리 능력이 얼마나 좋으신지 말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였다. 어지간한 연차의 간호사만큼 액팅을 잘하셨고 무엇보다 (나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감염 관리를 잘 하셨다. 간호조무사와 일해본 적 없는 나에게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알게 모르게 내가 살아온 여러 곳에서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보도록 배웠구나 싶었다. 엄연히 의료인으로서의 자격이 존재하고 중요하기에 많은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면허를 취득하고 교육기간을 거쳐 간호사가 되는 것이지만, 몇몇 간호사보다 환자를 생각하고 위하고 노력하는 조무사 선생님을 보면서 기분이 참 묘했다. 그때의 감정에 대해 자세히 써보고 싶지만 충돌하는 감정들을 편히 풀어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의사인 과장님과도 관계가 좋았다. 매일 언제 말씀드릴지 고민하다가 결국 마지막날에야 퇴사한다는 사실을 알리게 되었는데, 갑자기 두손을 맞잡으시더니 한참을 이야기하셨다. '처음 오시자마자 잘 일해주셔서 좋았는데 이렇게 빨리 헤어지게 될 줄 몰랐다'며 말씀하시는 것에 나도 울컥해서 짧은 시간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그러다가도 추후 어디에 갈 계획인지 묻고 답하다가, 로컬 병원의 현실과 사각지대에 놓인 정신과 치료진의 실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면서, 아쉽다고 몇 번을 말씀하셨다. 

  사실 조금 빡빡하게 일하시는 감이 있어서 불평하는 선생님들도 있기는 했지만, 나는 적어도 해야 할 일에 있어서 예민하게 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실제 그만큼의 일은 해야 전문직으로 불릴 수 있는 게 맞지 않을까. 환자에 대한 관심 또한 의사와 달라지는 순간부터 정말 아랫사람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정신과의 경우 한 명이서 다수의 환자를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계가 누락되면 완전히 그 정보는 증발하게 되는 것이니까. 인계가 누락된 정보가 의사의 귀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나는 조금이라도 긴장하게 해주는 과장님이 좋았고 생각 외로 나와의 공감포인트도 많아서 꽤 좋아한 분이었다. 첫 병원에서도 그랬듯 마음을 100% 다 내보이지는 못했던 것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선생님은 어디서든 잘할 거라며 말씀하시던 과장님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의사와도 이렇게 친해질 수가 있구나, 신기했다. 


  원무과에도 친해진 분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업무가 원무과와 연관되어 마주쳐야 했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점이 많았다. 원무과의 일처리까지 내가 파악하고 있어야 수월하게 일들을 넘길 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바쁜 와중에 수없이 많은 전화통화를 해야 하기도 했다. 내 일이 얼추 익숙해지고 나니 그들의 어려움이 보였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내가 평온해야 타인의 어려움이 보이는 것 같다. 아무리 정신과 환자라고 생각하고 참으려 해도 도를 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인지라, 그들의 화를 신체적으로도 받아내야 하는 원무과 직원들이 고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그중 특히 환자들의 돈을 만져야 하는 업무를 하는 선생님에게로 쏟아지는 화살은 대단했다. 선생님의 업무 중에는 환자들의 간식과 생필품들을 사다주는 것도 있었는데, 정신과 폐쇄병동이기에 추가적으로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언뜻 들으면 쉬운 일이 아닐까 싶은데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가장 어렵고도 힘든 업무였다. 규정상 안 되는 것임에도 요구하고 왜 안 사왔냐며 큰소리치는 환자나, 제대로 돈을 지불하고 사왔음에도 본인이 계산을 잘못하여 항의하는 환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질환만 있으면 정도가 극심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복합적인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입원하는 폐쇄병동이니,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있는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모두의 투정과 화를 받아내면서 억울해하기도 화내기도 투덜대기도 하는 모습을 보며 친해진 선생님. 어쩌다 퇴사하며 선물까지 주고받았는데, 내게는 감사하게도 전생에 좋은 연들도 많이 있었나 보다. 아니면 그냥 오지라퍼인가 싶기도 하고. 


  물론 모두와 잘 지낸 것만도 아니기는 했다. 원장님이라는 갑에 대해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고, 일과 사람과 말에 대한 이해가 심각하게 부족해 몇 달 동안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한 직원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달라진다. 갑과의 관계는 내가 설정할 수 없는 일이라 결국 퇴사하게 되었지만, 일이 숙달되지 않았던 직원으로부터는 배운 점이 있었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도태되면 결국 불행해진다는 것.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하니까 나는 항상 떠났다. 모두에게 사정이 있으니 항상 떠나는 게 쉬운 것은 아니지만, 회사에 맞출 수 없는 직원은 떠나는 것이 서로에게 맞다. 가능하면 웃을 수 있을 때. 


어디서나 모두와 좋게 지낼 수는 없겠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분위기가 좋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귀한 경험을 준 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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