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지만 슬펐던 한 영화가 떠오른다
내 나이 (만)스물여덟, 어제는 무려 다섯번 째 첫 출근날이었다. 내가 세면서도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숫자들. 그렇다. 나는 프로이직러였던 것이다ㅎㅎ!
어쩔 수 없이 짧은 경력들일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다 짧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 곳에서는 2년을 꼬박 채워 일하기도 했다. 100% 자의는 아니었지만 미련했기에 견딘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끈기있다고 되려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후의 짧은 경력들도 2년의 시간 덕분에 무마될 수 있었고 무사히 또 이렇게 재취업을 했다. 취직난이라고 여기저기 소리없는 아우성들이 떠도는 세상이지만 사실 일자리 자체는 많다. 일의 질적인 면에 대해서 논하다 보면 끝이 없겠지만. 취직이라는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일자리 문제라는 것은 어쩌면 얼마나 욕심을 버릴 수 있고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다섯번 째 직장이라고 하면 갈수록 연봉을 올리는 것이 맞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내가 원하는 분야에서 일하고자 했고 그 외에는 업무 환경만을 바라보았다. 원하는 분야가 박봉을 품에 안고 가야하는 분야이기 때문이었다. 경력을 쌓으면 이곳 또한 적지 않게 벌어낼 수 있겠지만 경력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시간이라는 귀한 비용이 필요하다. 첫 직장의 연봉과 비교했을 때 지금은 상상도 못할 최저연봉이지만, 나는 만족한다. 정말 너무나도 만족스럽다.
근무환경과 시간과 사람들, 일까지 모든 게 흥미롭고 호감이 가며 상향 평준화되어 있는 느낌이다. 근무환경과 근무시간이야 많은 이들이 어느 정도 현실과 상상을 조합하여 떠올릴 수 있지만 사람이라는 것은 역시나 개인의 영역이다. 나에게 상향평준화된 사람들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인성,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안쓰러이 여길 줄 알며 순수하게 예뻐하고 좋아할 줄 아는 인성이다. 거기에 더해서 지식이나 지위, 인격적으로 훌륭하여 배울 점이 많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무엇이든 기본이 중요한 법이다.
고작 이틀 간 많은 것을 파악하지도 못했을 것이며 전혀 다르게 인지했을 수도 있지만, 16시간이라는 꽉 채운 시간이 모두 좋았다고 느끼는 게 가능했던 것은 아무래도 리더의 역할이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전의 나였다면 전혀 몰랐겠지만 그래도 나이를 조금은 먹었는지 이해하게 된 부분이다. 보통의 직장에서 직원들의 시간 프레임은 상사에 의해 짜여지게 되는데, 이틀 간 직장 안에서 직원들의 시간 프레임은 매우 완벽했다. 업무 시간과 중식 시간을 짚어 주는 것은 물론이며 회의 중에도 보고받을 내용이 있으면 어느 때 오라는 등의 보고 타이밍, 마지막으로 정각의 퇴근 시간에 퇴근하라는 말씀까지.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됐다고 하는데 효율을 위해 체계를 바꾸고 직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사람이다. 그녀 덕분에 이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수많은 호감의 이유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왜인지 그녀의 멋짐은 멈춰있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두렵다. 이렇게 좋아하고 기대했다가 또 다시 실망할까봐. 그러나 나라는 사람이 이런 것을 어쩌랴. 이렇게 또 좋아하며 기뻐하고 한껏 신나하는 감정 또한 내가 사랑하는 것이라서. 포기할 수가 없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실망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열심히 푹 빠져들고 좋아하고 사랑해야지. 일도, 사랑도, 삶도. 그 어떤 것도 예외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2년을 꼬박 채워 일했던 곳에서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는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