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 씻어내고 잘라낸 그 과일들.
일상의 온갖 것들을 핑계로 대며 글을 안 쓴지 굉장히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독을 끊지 않고 바라봐주고 계시는 이백이십여 분들과 마음 한 켠의 불편함으로 오랜만에 저장글들을 톺아보았다. 열려 있는 매거진들에 업로드 하고 싶은 마음에 저장해 둔 제목과 아무렇게나 쓰여진 내용들이 참 많았다. 주로 간호사이자 회사를 나온 진로를 고민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 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지만 편하게 쓸 수 있는 것은 역시 지금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선뜻 클릭하지 못했다.
그리고 고른 것이 '과일을 목어야 집이다'라고 다소 투박하게 한 문장만 써놓았던 이 글. 오타가 중심을 잡은 세 어절로 이루어진 문장이건만 나의 마음을 한껏 요동치게 했다. 독립한지 꼭 10년차가 되는 올해, 사실 10년차라는 생각을 안 해보았지만 글 제목을 뽑으려다 보면 여러 가지 삶의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게 됨이 참 좋은데, 어쨌든 과일이란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큰 무엇이지 않을까.
처음 자취를 시작한 대학교 1학년, 처음이라는 패기가 가져다주는 열정으로 많이도 해먹고 챙겼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음식도, 마음가짐도 바래졌고 중간중간 나를 돌보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어쩌다 본가나 친척집에 며칠 간 머무를 때에야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건강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먹을 것은 별다를 게 없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러한 생각은 모두 과일에서 온 것이었다.
혼자서도 분명 과일을 먹던 시간들이 있었지만 주로 귤, 딸기, 방울토마토, 씨없는 포도와 같은 것들이었다. 간혹 학생회관 생협이나 편의점에서 손질되고 잘린 수박, 파인애플, 오렌지 따위를 먹기도 했지만 일에 찌들어가면서 자극적인 음식만 찾는 동안은 안주 외에는 과일을 먹지 않았다. 나를 돌보기로 마음 먹고 여러가지 결심을 한 후부터 조금 불편하더라도 행복을 안겨줄 수 있는 과일들을 구입하고 먹기 시작했다.
사과, 배, 감, 멜론, 키위 등의 과일은 정말 불편했다. 고르고 고민하다 사야 하고, 씻어내고, 칼을 들어 잘라내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항상 맛이 좋은 것도 아니었으며 잠시라도 눈길을 주지 않으면 금방 썩어서 버려야 했다. 그뿐 아니라 벌레도 자주 꼬이고 음식물 쓰레기도 더 많이 나왔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욱 건강해졌고 편해졌다. 단순히 과일을 먹어서만은 아니었다. 내가 나의 공간에서, 집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많은 것에서 자연스럽게 했다. 여행지의 호텔에서 굳이 칼을 들어 과일을 잘라먹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사다 먹거나 잘려 있는 것을 먹는다. 어린 날의 나를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나는 여행지의 호텔에처럼 작은 방에 그렇게 살았다.
과일을 직접 고르고 씻어내고 자르고 먹고 치우는 일련의 과정은 나를 위한 시간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시간을 들여 나에게 보여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할머니나 엄마, 아빠, 혹은 남자친구가 손수 잘라주는 과일은 더 맛있다. 아마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과일을 통해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깎아내고 다듬어 먹는 과일은 사랑을 담고 있다. 집을 더 집답게 만들어준다.
내일은 맛있는 과일을 또 사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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