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퇴사하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마음에 밟히는 아이들
기한이 정해진 퇴사가 딱 76일 남았다. 연말이 다가오는 설렘과 아쉬움과는 다르게 퇴사가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은 항상 신이 났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게 다가온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또 언제 가능할까, 동료들뿐만 아니라 대상자들에게까지 인정받으며 일하는 곳이 또 있을까. 헤어짐이 다가오니 좋은 점들만 눈에 들어와 아쉬움이 남았다. 분명 내가 떠나려고 했던 점은 그대로였으나, 그것은 나에게만 적용되는 점이지 일반적인 퇴사의 이유는 아니기는 했었다.
이 선생님은 저걸 참 잘하시지, 저 선생님은 나랑 참 잘 맞는데, 이렇게나 온유하신 팀장님은 앞으로도 만나볼 수 있을까. 다들 어디서 살다 이제야 만난 걸까 싶을 정도로 선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못해, 나까지 긍정적인 기운을 가득 받아 정화되는 느낌의 회사였다. 회사에 이런 표현이 가능할지 나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선생님들은 연락처가 있고 시간을 맞춰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바로 전 문장을 쓰면서 기시감이 들었다. 이전에도 내가 이런 문장을 썼는데, 하며 생각해보니 병원을 떠날 때 쓴 책에도 주임님을 생각하며 선생님들은 볼 수 있다고 적었다. 물론 그 때의 동료에 대한 마음은 주로 동기들을 향해 있었기에 다른 선생님들은 전혀 만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달랐다.
문제는 사랑하는 아이들.
사랑해버리게 된 아이들이었다.
내가 정식으로 관리하고 있는 아이들만 23명, 그리고 단기적으로 관리하는 아이들이 7명 정도 된다. 현재(21.10월 기준) 총 30명의 아이들과 안부를 묻고 치료과정을 소통하고 장난을 치거나 수다를 떨기도 하며 살고 있다. 아니 일하고 있다. 그래, 일인데 일이어야 하는데 자꾸만 마음이 쓰이는 내가 좋으면서도 싫고 싫으면서도 좋았다.
끝이 정해져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에, 자꾸만 아이들에게 내 이름은 외워야한다며 강요 아닌 강요를 하기도 했었다. 아이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거나 센터 이름을 말하기도 하며 부끄러움을 감추기만 했는데, 매번 혼자 마음이 아팠다. 대부분 가족이 있었지만 정서적인 안정감은 나에게 의지하는 아이들이란 걸 알기에, 더 보지 못해 미안하고 더 연락하지 못해 미안했다.
이런 미안한 감정을 갖게 하는 게 일인지 아닌지 이제는 알 수 없었다. 굳이 따져보자면 일이지만 그 일을 고른 것은 나였다. 간호사로 일할 때의 깨달음인 내가 과몰입하고 진심이 된다는 것, 전문직의 소양에 맞지 않는다며 눈물이 그렁그렁할 때마다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던 특징,은 그저 깨달음으로만 남았다. 나는 마음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그런 일을 찾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보람도 느끼고 행복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예뻤다. 해맑고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문제아라고 찍힌 아이도, 타인이 무섭고 대인관계가 어려운 아이도, 괴로워서 죽고 싶은 마음을 제 몸에 잔뜩 표현하고 있는 아이도 나에게는 참 예뻤다. 예뻐서 미안했다. 장점이 없다며 단점만 술술 늘어놓는 아이도, 한껏 위축되어 어깨가 안으로 굽힌 아이도, 엄마 아빠의 잔소리만 기억하는 아이도 다 예뻤다. 아이들은 스스로가 예쁜 걸 몰랐다. 예쁜 것을 더 알게 해주지 못해 미안했다.
예뻐서 밉기도 했다. 헤질대로 헤지게 두었거나 몰라주었던 그 환경이, 혹은 자신의 힘듦을 너무 잘 숨기도록 만든 세상도, 힘이 없는 나도, 더 도울 방법이 없는 정책이나 구조도, 그냥 모든 것들이.
그래도 내게 온 아이들은 살아있었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와주어서 너무나 고마웠다. 내가 도울 수 밖에 없고 도와야 하는 사람인 것이 다행스러웠다.
나와 긴 시간을 함께 볼 수 있는 아이들에게는 있는 힘껏 사랑을 줄 수 있었다. 온 마음을 다했다. 카카오톡은 정말이지 훌륭한 서비스였다. 바빠서 오지 못하는 아이들과 더 가깝고 언제든 편하게 연락할 수 있었다. 굳어진 한쪽 어깨에 전화를 받치고 부모와는 전화를 하고, 한쪽 화면에는 시스템을 다른 화면에는 카카오톡을 켜두고 답장을 기다렸다. 한 때 심리상담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 혹여 나도 모르는 새 마음을 다치게 할까 전전긍긍했는데, 이제는 아이들과 친근하게 수다떨 수 있어 오히려 상담치료사가 아니라는 것이 기뻤다. 실제로 아이들과의 수다는 재미있기도 했고 배우는 것도 많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오직 하나였다. 소통하는 사랑.
한없이 일방향적인 사랑이 아닌, 대화할 수 있으면서 사랑을 주는 어른.
그러나 난 결국 도망가는 사람일 뿐이다. 더 나은 방법을 더 큰 시스템이나 구조 안에서 찾거나 혹은 만들겠다는 아주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에게서 멀어지는 것일테지. 아직도 잘한 선택인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생각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일로서 만나 헤어짐이 기약된 것은 나를 불행하게 한다. 오전 11시, 오후 1시, 오후 6시에도 아이들은 온다. 여기에 오면 마음이 편해진다며, 학교를 빠지고서도 온다. 센터에 오는 것일 것이라고 애써 생각하며 자꾸만 들썩이는 마음을 잠재우려 해도, 나를 보러 오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감은 항상 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끝이 있기에 더 열심인 내가 이기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아이들과 보호자들은 오늘도 감사인사를 보내주신다. 선생님 같은 사람은 처음이에요, 더 자주 오고 싶어요 등등. 하지만 이기적인 나는 오늘도 혼자 헤어짐을 준비하며 울컥하기도 덤덤해하기도 한다.
담당자 변경은 11월 정도에 말하면 된다고 보통은 그렇다고 어차피 사례관리자는 변경된다고 한다. 업계에 대한 이해도 경력도 부족한 나는 그 말을 따르지만, 맞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아직도 없다. 11월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11월이 오면 어서 함께 헤어짐을 준비하고 싶다. 사랑하게 된 것은 문제가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