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거북이, 프리미어의 귀향

by 예나네


초승달이 숨어 뜨고, 수십억 광년 떨어진 별들이 빛나고, 빛이라곤 먼 수평선에 가물가물할 뿐이고, 천지가 온통 검었으나 파도만이 새하얀 새처럼 쓸쓸히 밀려오던 깜깜한 어느 봄밤이었다.

첫 알을 낳기 위해 그녀는 이 해변으로 돌아왔다.



일억 천만 년 전부터 바닷가 모래언덕에서 행해오던 산란産卵, 조상이 물려준 이 신성한 의식을 위해 4800 킬로미터의 바닷길을 헤엄쳐 자신의 태가 묻힌 뭍을 찾아 엉금엉금 기어 나온 거다.


콜 림퍼스 박사는 새끼 거북 십삼만 마리의 등에 태그를 붙여 신행新行 하듯 떠나보냈었는데 배까지 불러온 여식을 스물아홉 해만에 재회했으니 가슴이 벅찼을 터,


그녀에게 ‘최고’라는 애칭을 달아주었다. ‘프리미어’라고.


- 산란 후 바다로 다시 나가는 거북, 그리고 몸 자국


호주 번다버그 몬 레포 해변엔 수많은 프리미어들이 부른 배를 해산하러
해류를 타고 귀향한다.


300 킬로그램이 넘는 거구를 땅바닥에 납작 붙인 채 자신의 속도가 절대적인 양 질기게 기어 오는 모성본능, 그 뒤편으로 선명한 몸 자국이 찍힌다. 이 우직하고 깊은 자국은 어미의 가슴에 새겨진 모성 원형이며, 산란의 때時에 사위가 어두운 밤이 찍은 침묵의 무늬다. 그래 이곳에서 알을 깬 그녀가 알 낳을 때면 자력에 끌리듯 먼 물길을 가로질러 뭍에 나온다.


먼저 그녀는 아코디언 같은 목의 살갗으로 습도를 측정하고 마른 모래언덕에다 단단한 집터를 마련한다. 그리곤 뒷발 바닥으로 모래를 파내며 70 센티미터 정도의 깔때기 모양 알집을 짓는데, 눈물까지 주르륵 흘리며 건축에 몰입하는 그녀를, 빙 둘러선 사람들은 약속한 듯 말을 삼키며 고요히 기다린다.

주변은 깜깜하고 오직 그녀의 그곳에만 빛을 비추고 있다. 이번에 내가 본 그녀는 삼 년 전 처녀 알을 낳고 난바다로 나갔다가 두 번째 나온 어미 거북이다.
희미한 빛 속 그곳에서 터질 것 같은 관능이 느껴짐과 동시에, 탁구공 닮은 하얀 알들이 끈적한 체액에 싸여 툭 툭 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서른세 개의 알을 낳았다.
보름 후쯤 뱃속에 남은 알이 때가 차면
다시 이곳에 돌아와 해산할 거라 한다. 신기했다.



하늘과 바다와 별과 달과 바람과 파도, 그리고 인간이 어둠 속에서 켜는 이 무성無聲의 현絃. 시원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와서 서로에게 긴밀히 닿은 무연無緣의 연緣.




내가 이국에서 백인들 사이에 끼여 거북이 한 마리가 알 낳는 장면을 보듯, 거북이 또한 아득히 먼 아메리카의 어느 해협까지 먹잇감을 찾아 헤매다가 이곳 호주의 몬 레포스 해변으로 돌아왔고, 이 모래톱의 동일한 공간에서의 대자연을 조우하고 있다. 바다의 생명이 뭍에서 탄생하는 이 깊은 밤에, 자연과 자연이 어우러져 엄중한 축복의 현을 켠다.


이곳 모든 자연과 그들과 나는 서로가 어디에서부터 온지는 서로 잘 모르면서도 거북이, 그녀를 사이에 두고 서로가 서로에게 깊숙이 닿아있다. 이것은 서로의 몸속 어딘가에 미리 내장된 운명의 태그가 들어 있었기에 가능한 것 아닌가. 이 모든 것은 ‘모성’이라는 원류에 귀속되는 게 아닌가. 어머니의 그곳으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다른 이름, 노스탤지어.

자궁이라는 고향을 떠나온 우리 모두는 ‘향수’라는 태그에 비끄러매인 존재들로서 지금 한 자리에 있다. 섬약하고 번민하며 그리워하는 감성은 이곳으로부터 출현했다. 땅, 그 가이아.


잠시 상념에 잠겨있다 보니, 그녀는 뒷손을 어머니의 손길로 유연하게 움직여서 모래를 이불처럼 알들에게 덮어주고 있었다.

어쩜 그녀의 실존은 이날을 위해 있었다. 외로운 심해深海에서 질기게 연명을 하고, 어떤 날은 뱀상어에게 등딱지를 물어 뜯겼던 굴욕을 극복해온 그녀가 지금, 자기만의 질서로써 모성의 서사시를 몸으로 쓰고 있다. 그리고는 감정의 동요 없이 느릿느릿 바다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동물 보호사는 그녀가 바닷물에 몸이 닿을 때까지 손전등으로 길을 비춰주었고, 우리는 의전 행렬을 따르듯 엄중하게 배웅했다. 깊고 검은 봄밤, 모래톱에 심어둔 묵언의 교감을 못 잊어서라도 멀고 먼 물길을 건너는 그녀, 프리미어는 또 귀환할 거다.


불멸의 시간 속에서 종의 번식을 아득히 이어갈 것이다.



*본문 이미지는 담당자 Jacqueline Zia의 허락을 얻어서 다운로드했습니다.

From : www.bundabergegin.org


* 2017. 《현대수필》 봄호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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