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고 또 다른 세계로

- 밸러리와 리오

by 예나네
그들을 처음 만난 건,
집을 보러 가서였다.


12개의 예쁜 지붕이 든 빌라 입구에는 커먼 게이트웨이가 있었다. 부동산 에이전트하고 약속이 되어 그 게이트 앞에서 에이전트를 기다려야 했다. 그때 현대차 SUV 한 대가 와서 오픈한 게이트가 다 열리기를 기다리려 내 앞에서 멈췄다.


너도 들어가도 돼, 들어와.

진짜야?


나는 에이전트보다 먼저 내가 봐 둔 하우스 앞에 들어왔고, 그들 리오와 밸러리 부부랑 간단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밸러리는 이곳에서 쏘~~ 해피하다며 매력적인 표정에다 하이비스커스 꽃 같은 행복 플라워를 활~짝 피우며 대답했다. 그 이후 딸과 나는 그녀를 한동안 쏘~해피녀로 명명하였었다.


밸러리네 집앞에 활짝 핀 하이비스커스 꽃. 매일 아침 9시 경에 리오는 봉지와 집게를 들고 떨어진 꽃잎 하나하나 주워 담는다.


매주 금요일 날 가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마리네 집에 가서, 내가 그 집을 인스펙션 한 이야기에다 밸러리와 리오 말도 덧붙여서 늘어놓았다. 그땐 이름은 못 외워서 그들의 집 위치와 인상착의만 묘사하여 들려주었다.


그런데, 세상 참 좁고 신기하다.

그들이 이들의 친구라니.
같은 교회, 같은 구역 식구에다, 월요일 새벽마다 망원경을 들고 새를 관찰하러 다니는 '버드 와칭' 멤버라니.

마리네와 그만큼 친밀한 밸러리 부부는 그로부터 100일 안에 우리 집과 정면으로 마주 보는 우리의 친절하고 다정한 삼촌 같은 이웃이 되었다.

백인이며 체격이 좋은 리오 할아버지는 사우스 아프리카, 남아 공화국에서 심리학 교수로 은퇴하고 딸과 사위가 산부인과 의사와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이곳 번다버그까지 이민 온 케이스다. 교양미와 예쁜 얼굴까지 갖춘 밸러리는 영어교사를 하였는데, 인사가 늘 아이 엠 쏘~ 해피로 받아서 나는 그녀를 '해피 바이러스'로 정식 별명을 지어주었다


리오 할아버지가 아내 밸러리를 쏘 해피하게 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는, 치매이던 구순의 장모님을 남아공에서 여기까지 모시고 와 8년 동안 병시중을 하고, 재작년에 하늘나라로 고이 보낼 때도 성심을 다해 장례를 치러 드렸다는 거다. 밸러리는 그런 남편이 너무 고맙다고 어느 날 진심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때 리오는 그저 사람 좋게 허허허 웃어 주었다.




내가 밸러리네 이웃이 되고부터 금요일마다 마리네 집에 가면, 마리는 까망 암탉이 낳은 계란 한 판을 더 얹어주고, 짐은 집 앞 가든에서 딴 커스터드 애플을 한 봉지 더 묶어서 내 차에 실어준다. 나를 통해 그것을 받아 든 리오와 밸러리는 신기하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사실은 그들보다 내가 더 좋은데.


이렇게 마리네는 우리에게 인맥을 트는 로마의 길이기도 했다. 또 리오와 밸러리는 나의 새 이웃이 된 열 한 가정에 우리를 소개해주어서 금방 친밀해질 수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리오네와 절친한 두 가정을 우리 집에 초대해서 코리언 잡채, 불고기, 부침개... 를 뷔페식으로 차려서 대접하였다. 그들은 불고기와 잡채와 생선전이 맛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김치는 맵다며 아무도 못 먹어줘서 접시에 그대로 담긴 김치가 울상이 되어버렸다.

밸러리가 후식으로 커스터드푸딩을 만들어 와서 나누어 먹었다. 8호 집 글로리아는 방울토마토 작은 한 팩을 씻어서 다시 그 손바닥만 한 플라스틱 팩에다 넣어 갖고 왔다. (이처럼 번다버그 사람들의 선물은 소박하다.)

아내가 급성 당뇨로 갑자기 병원에 입원한 6호 집 리치네는 친정 엄마 때문에 걱정거리를 안고 브리즈번에서 방문한 딸과 함께 참석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환자 상태가 악화되어 참석 못한다고 했는데, 오늘 아침에 깨어나서 가족도 알아보고 회복이 빠르다며 좋아했다. 두 부녀는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식탁 위 대화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러는 바람에 입원이라는 우환이 의심될 정도로 분위기가 더 화기애애하고 풍성하기만 했다. 나는 긍정적인 리치와 그의 딸 리나에게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했다. 손 큰 내가 음식을 많이 해서, 잡채와 불고기를 각각 두 팩씩 담아 돌아가는 그들의 손에 들려주었다.



이렇게 나와 딸은,
또 하나의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아브락삭스를 깨고 있었다.




올해는 내가 시드니 큰 딸네 집에 반년을 살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돌아왔다.

리오와 벨러리는 나를 환영한다며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는 포인세티아 화분에 카드를 꽂아서 우리 집 문을 노크했다. 덕분에 우리는 더 따스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 거실에 놓아둔 꽃을 볼 때마다 이웃의 정성이 가슴으로 뜨겁게 전해진다.





물론 나도 그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해왔다.

시드니에는 한국 마켓이 즐비하다 보니 한국산 배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그래 나는 시드니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국 배 두 개를 사 왔다. 하나는 금요일 날 짐과 마리를 만나서 그들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같이 깎아서 먹고, 하나는 앞집 리오 할아버지네를 드렸다.

내가 포장한 배를 리오 손에 들려주면서 이건 한국 배라고, 한국 배와 호주 배가 다르다는 말을 했었는데, 잊었는가. 아님 나의 영어 발음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며칠 지난 어느 날, 리오가 나의 딸에게 이렇게 묻더란다.



너의 엄마가 준 그 과일, 언제 먹을 수 있니? 망고나 아보카도처럼
과육이 좀 물렁물렁 해져야 먹지?


아이고, 나도 살다 보면 풀fool기 어린 이런,
황당하나 기발하고 재미있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살빛도 다른 사람들끼리, 가끔 웃지 못하거나, 함께 푸후훗 웃으면서 이렇게 삶을 이어간다.

그 후 나는 내가 드린 배맛이 어땠는지, 맛있게 잡수셨는지 리오와 벨러리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그저 다음에 또 시드니에 가면 한국산 배, 아주 크고 잘 생기고 속살이 희고 아삭아삭 시원~한 그 코리언 페어를 다시 사다 드려 봐야겠다. 아니 접시에 가지런히 깎아서 드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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