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주의 장난감

by 예나네


여기 '이스터 홀리데이'는 추석 같다.



계절도 가을이고, 가게마다 손님들이 만월처럼 차오른다. 성 금요일부터 그다음 주 월요일까지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기 때문에 한 데 모여서 함께 먹고, 더불어 마시고, 같이 이야기하는 걸 즐기는 사람들은 이 날을 위해 대목 장을 본다. 함께 홀리데이를 보낼 지인들을 떠올리며 갖가지 식료품과 레저용품과 선물을 산다.


그때 큰딸은 재영이와 둘이 먼 친정에 왔다.




15개월 2주가 된 외손주 재영이가 첫 외갓집에 왔다. 시드니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슝~ 날아서 왔다. 비행기 안에서 행여나 보챌까 염려했는데, 한 시간 40분 동안 지 엄마 품에 안겨서 쌔근쌔근 잠자며 왔단다. 오구, 외할미의 착한 외손주.

맞이방에서 외할미가 재영아, 하고 손을 흔들자 재영이가 외할미를 보고 씨익 웃는다. 할미는 볼이 잘 익은 사과처럼 개진 우리 재영이를 덥석 받아 안았다.


할미 팔에 안긴 재영이, 우우우 버버버...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을 말랑한 떡국 손으로 가리키며 할미한테 오구구 잘도 설명해준다. 어버버어저버... 외할미는 재영이가 척 해도 착으로 착착 알아듣는다.

응, 그치 재영아~. 저긴 카페, 저어긴 렌터카센터. 어, 저기 저 비행기를 우리 재영이가 타고 왔어요. 할미의 외손주가 어버버... 만 하면 할미가 착 받아서 착착 해석해낸다.



두어 달 전부터 재영이를 기다려왔다.



먼저 재영이가 앉을 카시트를 마련했다.

전 날 특별히 깔끔 세차를 하고 또 한, 재영이 이모의 차에다 카시트를 장착하고 우리 재영이가 탔다.

한 시간 40분 동안 번다버그로 오는데도 점~잖게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는 베이비 로맨티시스트.

할미 옆에 앉아서 한 번이라도 울기는커녕 보채지도 않는다. 재영이도 시골의 맑은 공기가 상큼하고 좋으리라.



처음 온 외할미 집을 오자말자 제 집처럼 이 방 저 방 휘젓고 다닌다. 천장마다 선풍기가 있다며 팔을 한 바퀴 돌려서 돌아가는 시늉을 해 보인다. 세 대의 선풍기를 틀어주자 번갈아 돌아다니면서 팔을 돌려 선풍기를 작동시키느라 아기 사장님이 된 재영이, 나름 더 바쁘다.

할미는 재영이를 데리고 꽃밭을 보여주러 나갔다. 새소리도 들려주었다. 꽃을 보고 쪼물쪼물 손바닥을 반갑게 펼치며 기뻐하는 재영이. 공중의 새를 보고 팔을 들어 올려 다다다다 거리며 뒤뚱뒤뚱 따라간다.



재영이가 꽃이고 꽃이 재영이었다.




재영이가 오면 데리고 나가 장난감을 사주려 했는데, 외할미 집 주변의 모든 것이 재영이 장난감이 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재영이가 가장 재미있게 가지고 논 장난감은 플라스틱 빈 물병이었다. 가방에서 와르르 쏟아진 물병들이 거실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자,


재영이는 깔깔깔깔 웃어졌혔다.





밤에는 하늘의 별을 갖고 놀았다.


할미가 집안에 전등을 다 껐다. 지상이 순식간에 깜깜해졌다. 우리 모두는 바깥으로 나갔다. 할미가 재영이를 안고 마당에 나갔다. 재영아, 저어기 ~별 보여? 하고 외할미가 물었다.


어 거거거 퍼퍼... 하며 재영이 조막만 한 손바닥이 돌아가며 반짝반짝 별을 만든다. 오구오구, 별보다 우리 외손주가 만든 별이 할미는 더 이뻤다.

재영아, 별 어디 있을까요, 하면 총총총 은하수가 그림처럼 아름답게 박힌 하늘의 별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킨다.


재영아, 저 큰 별은 외할아버지 별, 그 곁에 좀 더 작은 별은 외삼촌 별이란다, 하고 나는 재영이를


미운 두 별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외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외삼촌, 안녕하세요. 외할미가 재영이를 안고 인사를 시키니, 우리 대견한 재영이가 고개를 끄떡끄떡 하며, 하늘의

두 별님에게 절을 하였다.


몇 발자국 조금 비껴가니, 지붕 한쪽에서 거의 둥글게 꽉 찬 달빛이, 우리 네 식구를 은은하게 감싸 안으며 빙그레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외손주, 달님을 가리키며 달님에게도 꾸벅 인사를 한다.


그리고 재영이가 갈 때까지, 밤이 되어도 더 이상 별들은 나오지 않았다. 밤마다 비구름 뒤에 숨어서 주룩주룩 빗방울만 우리 지붕을 똑똑 또로롱 노크하듯 내려보냈다.



다행히 낮에는 날이 좋았다.

재영이는 신나게 바다를 가지고 놀았다.

갈매기도 갖고 놀았다.





자연 장난감을 흠뻑 가지고 놀았다.



사흘 동안, 꽃과 새와 별과 플라스틱 물병과 바다와 모래와 갈매기를 가지고 우리 외손주, 잘도 어울려 놀았다.

그리곤 또다시 비행기를 타고, 아빠와 할머니가 손꼽아 기다리는 시드니로 슝~ 날아갔다.

이튿날 재영에미가 문자를 보내왔다.


"엄마, 오늘 시어머님이랑 바다에 갔는데 재영이가 한 번 놀아봐서 그런지, 옴청 잘 놀더라."

히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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