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31. 수.
재영아, 넌 왜 거기서 똥을 누니?
572일 차 외손주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없다. 외손주가 하는 말은 아직 단어 수준이기 때문이다. 가령 엄마, 아빠, 할미, 바퀴, 기타... 그러고 보니 자기가 필요로 하거나 선호하는 단어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난 외손주의 대답을 안 들어도, 이러는 외손주를 이해할 수 있다.
딸네 집에서 머물며 외손주 육아를 돕는 나도 요즘 화장실을 딸네서 가까운 쇼핑센터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딸네 집이라 해도, 나 자신의 내밀한 속내가 화장실 볼일이 불편한 거다. 가만히 보면 사위도 장모인 내 방에서 좀 떨어진 화장실을 이용한다. 이로 볼 때 화장실 볼일을 호젓한 장소로 선택하는 건, 인간의 본성인 듯.
어른뿐 아니라 아가도 용변을 볼 때 마음이 털실뭉치처럼 폭신해야 포시시한 똥이 잘 빠져나온다는 걸 안 건, 외손주를 통해서다. 천방지축 부끄러움도 모르는 아가가 똥을 눌 때마다 호젓한 그곳으로 가느라, 고개를 숙이고 살금살금 식탁 의자 사이를 통과할 때마다 나는 참으로 신기하다. 조금 으슥한 그곳에서 볼일을 본다는 게 할미 눈엔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래, 너무 귀엽고 이쁜 꽁무니를 보는 할미 혼자서도 포시시 웃을 때가 많다.
그럼 우리 아가의 호젓한 장소는 어딜까?
아가의 엄마나 아빠가 상상도 못 했던 장소.
아가 스스로 깊은 숙고 끝에 간택됐을 장소.
아가의 비밀 같은 것이 자연스레 똥꼬 밖으로 빠지직 나올 장소. 그런데 아가는 그 내밀한 장소를 혼자 어찌 물색했을까. 이 할미는 아가의 똥에 대해 궁금한 게 이리 많을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가끔은 분꽃 씨앗같이 까맣고, 때로는 민들레꽃색 같은 샛노랑 꽃망울이 망울망울 피어 나오는 장소.
어른은 아가의 이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그저 잠잠히 기다린다.
행여라도 나오던 아기 똥이 다시 아기 몸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큰일이잖은가.
그곳은 바로 책상 밑이다.
이 집에 어른의 화장실이 두 개이듯, 외손주가 볼일을 보고 양 볼살에다 빠사시 한 웃음기를 함뿍함뿍 달고서 고개를 조금 숙인 채, 선 듯 기듯이 빠져나오는 곳도 두 군데다.
하나는 자기 아빠 책상 밑이고,
하나는 할미 방 책상 밑이다.
두 군데 중 앞의 장소가 대세다.
앞의 장소를 통과할 때 장애물이 있을 때면 말없이 뒤의 장소가 선택된다.
어, 재영이 똥 쌌다.
양이 엄청 많고 냄새가 무지 찐해.
하하호호.
재영이 아빠가 말하고, 재영이 엄마가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며 하던 일에 박차를 가한다. 자기들도 아들내미가 똥 싸는 게 이쁘다는 음색이다. 초저녁 잠이 많은 외할미는 잠결에 이 집 부부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일찌감치 잠이 든다.
우리 재영이 너무 귀여워.
똥 싸는 것도 이뻐.
꿈결에 이 할미도 한 마디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