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아가는 우주의 컨덕터

by 예나네

2019. 8. 16. 금

오늘은 재영이 컨디션이 영 아니다.
코가 꽉 막히는 감기기운이 농하다.



부모가 출근하고도 기분이 다운되니 집안이 갑갑한지 아침 일찍부터 파크 파크, 하면서 할미 손을 출입문으로 자꾸만 끌고 간다. 아침도 안 먹었는데, 오늘은 생각도 없나 보다.

급하게 재영이 물이랑 기저귀, 간식을 챙겨 넣어야 했다. 그래서 오늘은 재영이가 좋아하는 그 파크엘, 오전 오후로 나누어서 두 번 행차했다.

오전에는 가까운 집 앞으로 가서 걷고, 뭇 자전거를 따라다니느라 뛰고, 흔들 다리로 올라가고, 그네를 타다가... 집으로 와서 낮잠을 잠깐 잤다. 몸이 불편하니 꼬랑댕이만치 짧게 자고 일어나서도 또 칭칭거렸다. 재영이 답지 않은 날이다, 오늘은.



기저귀와 물과 오렌지를 다담다담 담아서 오후엔 조금 더 멀고 넓은 제임스 파크로 갔다. 산과 가까운 그곳으로 가는 길엔 산토끼를 만났다. 재영이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자기 머리 위로 손을 얹어 토끼 흉내를 내었다.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나이스 한 날씨여서인지, 주위 초등학교 3학년쯤 되는 학생들이 선생님 세 분과 함께 와서 배구와 럭비공을 갖고 놀고 있었고, 개를 데려와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앞을 지나가며 눈이 마주치자 젊은 남자 선생님이 "뷰티풀 데이 투데이"라듯이, 정말로 따스하고 평화로운 써니 봄날이다.



파크에 온 재영이, 언제 보챘냐는 듯 날씨만큼이나 해맑다.



탁구대로 가서 탁탁, 탁구 치는 시늉을 하고는 바로 재영이한테 참새 방앗간인 흙 땅을 향해 포르르 달린다. 이 땅이 제 안방인 양 털썩 주저앉는다. 햇살이 재영이 온몸을 감싸듯 몰려온다. 흙과 빛과 재영이는 일심동체가 된다.


아기 자신의 속도로 느리게 주변을 바라보고, 맘껏 앉아 머물고, 흙의 살결을 어루만지고, 흙가루를 흩어보고, 하얗게 날려도 본다. 흙바닥에 손가락으로 그림도 그려보고, 툭툭 땅을 두드리더니... 멍하니 앉아 멍 때리며 로맨티시스트 흉내까지 내는 이 꼬맹이가 정녕, 자연을 아우르는 귀여운 우주다.


이렇게 땅바닥에 포옹 주저앉아
한 시간이 넘도록 흙과 놀았다.
바라보는 할미도 그저 맘 편했다.




할미는 재영이가 일어설 때까지 멀리 떨어져 기다리면서, 온갖 스냅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 같아도, 아가는 지속적으로 아가 자신과 땅 사이의 두 우주를 서로 교신하며 놀고 있다.


활동적인 재영인 보헤미안처럼 다시 일어나 공원을 구석구석, 두루두루,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자신의 바디, 자신의 온우주를 휘저으며 새와 나무와 바람과 햇살 담은 우주를 걸어 다녔고, 뛰었고, 비행기를 보며 우우우 팔을 휘휘휘 컨닥터처럼 지휘하며 따라갔고, 바람이 위위위 분다며 할미한테 아가 선생처럼 시범을 보여줬고, 혓바닥이 드러나도록 깔깔깔 대면서 할미가 훠이훠이 밀어주는 두 종류의 그네를 번갈아가며 탔다.




그리고, 그리곤 제 몸의 생리변화를 느꼈는지, 저기 저, 좀 외딴곳에 슬그머니 다가가서 제 볼일을 보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유유자적하게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할미는 요기 폭신폭신한 파란 잔디 위에다, 우리 외손주를 눕혀 기저귀를 갈았다.


하늘을 향해 드러누운 재영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파아란 하늘한테 뭔가, 자기만의 언어와 손짓 발짓을 지속적으로 교신해댔다. 나름 리듬을 타면서 바쁜 몸짓이었다.

저 우람한 나무의 가지 사이에서 자연의 음이 배경음처럼 후후 훗 불어왔다. 재영이 손짓과 말짓과 발짓에 의하여, 가지가 일제히 흔들리고 있었다. 어쩜 햇살까지도, 재영이 말짓 손짓 발짓에 맞춰서 광선의 세기를 조절하여 내리비추며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빛 춤을 추었다.

병아리 털색 닮은 아기 똥기저귀를 가는 동안 할미는, 재영이가 하늘과 사이에 든 우주의 소리와 결을 지휘하는 아기 컨덕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진무구로 허공에 휘저은 아가의 몸시가,
우주의 리듬과 바로 합일되는 게 역력했다.
맞다, 세상 모든 아가는 우주의 컨덕터다.



이전 14화오늘 외손주 땡깡이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