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도시락은 3년 동안 일정하다.
치킨 너겟 6개를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구워, 도마에서 식으면 3등분 후 도시락에 두켜로 담는다. 그 위에 토마토소스를 뿌리고 밥은 옆 칸에 푼다. 이건 어느 날 그녀가 내게 시범을 보여주며 한 주문이다. 이렇게 간단명료한 일인데도 난 가끔 포크나 소스를 빠트리기도 한다. 그때마다 배시시 웃는 그녀가 더 이쁘다.
난 거기에 오렌지색 귤 하나를 보름달만큼이나 둥글게 까서 통째로 넣는다. 눈코 뜰 새 없이 손님 대하는 일에 파묻히는 직업인데, 점심시간이 달랑 30분밖에 안되니 손수 까서 먹으라면 그대로 남겨올 게 뻔하니까 껍질을 내가 까서 넣는 거다.
약국 오픈 시간은 7시인데, 당번이 되면 그녀는 늘 5시에 밥을 먹고 6시에 일찌감치 집을 나선다. 약국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분이다. 그녀는 약국 주인도 아니다. 8명의 약사 중 1인일 뿐이다. 주인이 시킨 것도 아닌데, 말하자면 그래야 맘이 편하단다. 주급 올려달라 안달하는 인간형도 못 된다. 주인이 따로 불러서 주급을 올려준다 하는데, 안 올려줘도 괜찮다고 했다고.
올해 받아온 생일카드에 그녀의 동료가 써 준 저" Dearest" 라는 단어가 난 참 좋다. 난 60평생 받아본 적이 없는데 그녀는 30대에 받았으니 부럽기까지 했다.
난 그럴 땐 얼른 고맙다 하고 반갑게 받아야, 올려주는 주인 기운 빠지지 않는다는, 그녀가 선뜻 이해하기엔 이치에 조금 안 맞는 어설픈 의견을 공깃돌처럼 슬쩍 만들어 던진다. 한결같이 배시시 웃어넘기는 그녀, 귓전으로 미끄러져버릴 게 뻔하지만, (33년을 넘게 내 품으로 길러왔는데 그거 모르면 숙맥.) 엄마니까, 그래도 그 잔소리라는 양념 빠지면 서운하니 꼭 한 꼭지 던진다. 어쩔 수 없이 내가 하수다.
그녀가 다니는 약국은 넓다. 휴지, 화장품, 세재, 심지어 신발까지, 온갖 걸 다 팔고 있으니 웬만한 슈퍼마켓만큼이나. 그만큼 어시스턴트, 판매, 정리 정돈하는 직원도 40명이 넘는다.
어느 날 그 바쁜 와중에 미지의 한 중국인이 찾아와서 주인(오너)을 만나기 위해 밤 9시까지 오래, 기다렸다. 그날은 바로 못하고 며칠 후 날을 잡아 인터뷰를 했단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외국에서 유입되는 유학생이나 약사가 없어 직원이 부족한 형편이었다.
그는 인근 병원에 근무하는 약사였다. 달포 전, 시드니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40분 거리의 이 시골까지 왔다는 그 중국인은, 토요일만 이 약국에서 일하는 투 잡을 잡기 위해 방문한 거였다.
인터뷰 중 오너가 질문했다.
왜 시드니를 떠나 이토록 먼 곳까지 왔는지.
중국 약사가 답했다.
한국 약사들과 일하는 게 너무 싫어서 왔다고 했다. 그의 한국인 동료들이 얄미워서 왔다고! 진급을 위해선 앞다투어 상급자 앞에서 한국약사들이 너무 과하게 알랑거리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 마디로, 한국인 약사들한테서 열받아서 먼 길을 떠나온 거라고.
오너가 보기엔, 아직 그의 열불이 속에서 불타오르고 있더라니.
오너가 당부했다.
여기 한국인 약사 한 명 있으니 조심하라고.
어쩜, 진급에서 밀린 그가 혼자 뿔나서, 괜히, 착실히 근무하고 있을 한국 약사들을 애꿎게 매도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예까지 미치니 괜히 그 차이니즈가 살짝, 밉다.
딸은, 아직 토요일에 일을 안 했으니 그 중국인과 마주치지 않았다. 무연한 듯 하지만 속내 한 켠엔 찜찜할지도,. 외국살이에서 한국은 친정이니까.
딸이 다니는 약국에는 한국과 호주를 비롯하여 필리핀, 러시아, 짐바브에, 베트남, 싱가포르, 남아공에서 온 동료들이 있다. 딸은 호주인 오너를 비롯한 동료들이 다 좋다며, 이 약국에서 7년째 근무하고 있다.
동료들도 우리처럼, 인터뷰 내용을 한바탕 웃음으로 같이 날렸다니 다행이다. 농담 중에 딸은, 자기는 중국인과 말을 안 섞을 거라 우스개 공을 던졌고, 필리핀 후배가 그것을 받아 자기가 한국 사람인 척할 거라며 안녕하세요, 라는 발음을 연습하며 한번 더 웃음보를 터트리기도 했다니, 고맙기까지 하다.
출처 : 캐미스트 웨어하우스 홈페이지
이국 땅으로 이주해 온 우리는, 누구의 이름이 아니라 어느 나라 사람으로 먼저 인식될 때가 많다. 그땐 어쩔 수없이 한국인, 코리언의 대표주자가 된다.
그 중국 약사,
이곳 목가적인 풍경 속
바람을 흠뻑 쐬어, 한국인한테
뿔 난 감정,
훨~~훨 날려 버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