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을 맞댄 자끼리 마주 보려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야 한다는데 아이는 지금 줄넘기로 지구를 몇 바퀴씩이나 돌리고 있다. 아이는 돌아가는 원주 속으로 양발을 번갈아 들여놓다가 두 발을 모아 뛴다. 줄이 점점 빠르게 돌아가면 아이의 팔과 발도 같은 빠르기와 세기로 돌아가면서 각기 다른 길이의 원주를 그려낸다. 팔에 의해 줄이 돌아가고 줄에 의해 발이 움직이는 이 놀이는 손끝과 발끝의 각도만 삐끗해도 모든 원이 소멸된다. 톱니바퀴처럼 정치하게 맞물려야 둥글게 살아있다.
두 번째 온 아이는 쌩쌩 가위표 돌리기를 한다. 줄을 보이지 않을 만큼 빨리 돌리고 발을 아무리 재빠르게 바꾸는 고난도의 줄넘기일지라도 아이가 그리는 원은 마음을 편안하고 경쾌하게만 한다. 빠르나 조급하지 않게 돌아가는 원의 질감과 선율이 그대로 느껴진다. 셋째 아이가 오자 아이들은 눈빛을 마주하고 숨쉬기까지 맞춰가며 함께 줄을 넘기 시작한다. 한 아이가 만들어 내는 원주 안으로 둘은 교대로 들오고 나가기를 한다. 해님이 무대 조명등처럼 운동장을 동그랗게 비춘다. 그 속으로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 아이들이 떼 지어온다.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돌아서 돌아서 땅을 짚어라 ~ 꼬마야 꼬마야 자알 가거라.
운동장은 아이들의 유토피아가 된다. 운동장 복판에는 아이들 키의 서너 배쯤 되는 줄 하나가 놓여있다. 두 아이가 뛰어가 줄의 양쪽 끄트머리를 하나씩 잡고 동서로 갈라진다. 너무 팽팽하면 돌릴 수 없어 줄이 땅에 닿을 만큼 느슨한 거리에서 마주 선다. 하나 두울 셋. 양쪽 아이의 웃음 띤 눈빛이 마주치자 직선으로 굳어있던 줄이 금세 유연한 원이 된다. 돌아가는 아이의 팔에서 굴렁쇠만 한 동그라미가 그려지고 줄은 놀이기구인 지구본 크기의 원으로 회전한다. 아이들은 차례를 기다렸다가 한 명씩 한 명씩 하늘과 땅을 돌리는 원주 안으로 들어간다.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돌아서 돌아서 땅을 짚어라 ~ 꼬마야 꼬마야 자알 가거라.
원이 순환을 반복한다. 직선이던 팔과 줄이 둥근 원으로 창조되는 줄넘기에 나도 마음의 발을 들여놓고 푹 빠져있다. 아주 오랜만에 맛보는 순수의 미학이다. 아이들과 줄이 서로에게 몰입하여 지구를 돌리는 동심의 BE - 존재로써 아름다움.
원은 원으로 있어라.
번다버그 몬레포 해변에 알을 낳고 다시 바다로 나아가는 어미 거북의 거룩한 본능.
무엇이 환이 될까. 원이 평면이라면 환은 부피의 이미지다. 손가락 두 개로 그려지는 고리環는 단순한 원이 아니라 돈을 지칭한다. 톱니바퀴처럼 세상과 맞물려 세상을 돌리고 자신도 세상 따라 도는 돈. 어른이 돌리는 돈줄에는 숨결이 있고 역사가 있다. 고대의 자급자족 시기에는 돈이 필요 없었지만 잉여 생산물이 생기자 상품교환이 이루어지면서 돈이 나타났다. 처음에 조개껍데기와 소금이었다가 금은 주화를 거쳐 지폐에서 전자화폐로 변천하고 있는 돈줄이 세상 곳곳에서 돌고 있다.
물질이면서 물질이 아닌 돈줄을 돌리며 삶의 줄넘기를 하는 공간 Money-zone. 사이버 시대가 되면서 돈이 머무는 공간은 보이지 않게 그 영역을 넓혀간다. 노하우와 아이템이라는 비 물적 자산으로 있고 사이버머니라는 이미지로 존재한다. 현대로 오면서 점점 빠르고 광범하게 돌고 있는 돈줄은 이제 신의 집사처럼 행세한다. 모든 어른에게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에게 그렇다는 거다. 돈이 행차하면 악마의 시중도 들고 돈이 있으면 처녀의 마음도 산다. 대통령도 만들고 남자를 여자로도 바꾼다. 돈은 군주 중의 군주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돈줄과 어른들 사이에는 팽팽한 기류가 조성된다. 돈줄에 의해 인간미가 옥죄게 되더라도 돈줄은 만인의 만인을 위한 만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줄넘기 품목이다. 돈줄은 뫼비우스 띠처럼 끝없이 뻗어있고 어른들은 그 끝까지 좇아가 돈줄을 잡고 돈줄을 돌리며 돈줄을 넘으려 애쓰는 곤고한 시지프스가 되어간다.
햇빛 밝은 동그란 운동장보다 컴컴한 장소에서 생명력이 강한 돈줄인지라 지갑 속이나 과일박스 속에서도 세력을 줄이지 않는다. 온 세상을 돌다 보니 더러워질 수밖에 없어 암암리에 세탁된다. 은행에서 세탁을 하지만 본질까지 더러워진 돈은 세탁할수록 더욱 추해지고 어른을 점점 조급하고 초조하게 한다. 뭇 인생을 삼켜버리기도 한다. 인생은 박살 내더라도 돈줄은 자신의 수리적인 질서와 규칙에 따라 세상을 돌리고 사람을 돌리고 자신도 돌린다. 깜깜 세상에 제 아무리 구겨두어도 짚불처럼 되살아나는 돈줄은 어른을 지배하는 전지전능의 환이면서 돈줄을 쥔 자도 모르는 사이에 독환毒丸으로 변하기도 한다. 삶의 토양과 존재의 바탕을 잃게 되더라도 돈줄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지독스러운 환. 독환. 돈이 돌리는 고리에 갇혀 돈의 노예가 되어가도 새것이 아름답다는 광고 문구에 눈을 돌리게 하는 물욕의 환.
갇힐 줄 뻔히 알면서 돈 고리에 발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 속에는 선뜻 발을 빼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내 모습도 보인다. 돈줄이 인생 제1의 목표인 양 고달픈 줄넘기를 끝없이 하도록 어른들을 붙들어 맨 족쇄의 HAVE - 소유욕에 눈먼 만국 공용어.
원은 환이 되지 말거라.
번다버그 엘리엇 해드비치의 석양과 달의 조우.
∥작가노트∥
- NG 모음이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더하듯 작가노트가 더 수필 같은 때가 있어, 유독 이 작품만 사족을 단다.
우리 삶이 시작도 끝도 없는 동그라미같이 생각될 때가 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어른은 아이의 순수를 다시 동경하는 숙명적인 순환의 삶.
동그란 세상을 원과 환으로 형상화해 보았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분류하면 아이와 어른, 남과 여, 상류층과 하류층, 백인과 흑인이라는 다양한 모습이 있는데 그중에서 아이와 어른으로 대분류 했다. 이분법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 둘은 영원히 평행선이 되는 건 아니다. 구성원끼리 언젠가 만나는, 만날 수밖에 없는 대상들이다.
아이는 평면적인 원의 이미지로, 어른은 입체적인 환의 이미지로 그렸다.
아이 편도, 어른 편도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글을 써 내려갔다.
원 vs 환이라는, 수필 제목으로서는 다소 이질적인 제목을 붙여보았고, 원(어린이)과 환(어른)이라는 독립된 두 가지 양상을 인생판으로 병치시켰다. 글 전체에서 반점(,)을 사용하지 않고 온점(.) 하나만 표기해 보았다. 세상의 모습이 동그랗다(○)는 것과 제목인 원과 환도 동그랗다는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한 표현방법이라 할 수 있다. 문단(단락)도 원과 환 둘 다 공평하게 네 단락으로 나누었다. 마지막 문장 처리도 같은 형식이지만 대조의 내용으로 끝맺음을 하였다.
호주 뉴카슬 광대한 태평양과 그 상공을 나는 행글라이더. 원 vs 환이라는 제목은 공평한 게임과도 같다.
형식상으로 최대한 공평하게 출발하였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어린이는 BE - 존재로써 아름다움, 어른은 HAVE - 소유욕에 눈먼 만국 공용어라는 ‘대조의 의미’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작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현재 돌아가고 있는 삶의 모습이 그러하다. 자신(작가)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의 순수 세계를 동경하였고, 어른의 시지프스 같이 고달픈 순환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줄넘기 놀이를 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줄넘기가 아이들을 상징할 수 있는 놀이라고 생각했다. 줄넘기는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놀이가 아니라 서로 호흡과 장단을 맞추어 즐기면서 체력도 단련할 수 있는 놀이다. 아이들과 줄이 만들어 놓은 질서 속으로 아이들이 발을 들여놓고 그 질서를 정치하게 지키면, 원은 쉬지 않고 돌아가게 된다.
그러면서도 줄넘기는 단순한 놀이만은 아니다. 손끝과 발끝이 조금만 삐끗하여도 줄을 밟게 되어 놀이가 멈춰질 수밖에 없는 그 놀이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의 이치이기도 하다. 밝은 운동장에서 행해지는 아이들 줄넘기는 줄과 팔, 아이들 간의 호흡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돌아가는데, 아이들은 줄넘기의 완벽한 질서에 순응한다. 어떠한 요행도 부정도 만들지 않는다. 만들 생각도 안 한다. 그런 순진무구한 세계가 바로 아이들 세상이라 여겨진다.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돌아서 돌아서 땅을 짚어라 ~ 꼬마야 꼬마야 자알 가거라. 장단을 맞춰 부르는 아이들의 이 노래가 운동장을 울려, 맑고 공평하게 돌아가는 아이들 세상에 빠져들게 하였다.
뉴카슬 전쟁기념관 앞뜰. 제1차 세계대전 전사자의 혼을 기리기 위해 양귀비꽃을 뜨개질하여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정성을 전시. 1914년을 15년으로 잘못 표기하였는데 그냥 둠.ㅎ
그러나 어른들을 상징하는 돈줄은 세상 곳곳을 도는데 우선 돌아가는 장소부터 다르다. 햇빛 밝은 운동장에서 돌지 못하고 어두운 지갑 속이나 심지어는 과일상자 같은 곳에서 암암리에 돌아가는 돈줄이 속속 드러난다. 맨 처음 돈은 조개껍데기와 소금이라는 순수한 자연물로 출발하였지만 시간과 인간에 의해 돈에 이물질이 끼어든다.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거나 은행에서 세탁하는 돈줄은 아무리 세탁하여도 순수로 돌아가지 못함은 물론, 점점 추해져 가기까지 한다. 어른의 마음을 옥죄고 인간미를 박탈하면서까지, 돈줄은 항상 뫼비우스 띠처럼 끝없이 뻗어있고 어른들은 그것을 좇아가 돈줄을 잡고 돈줄을 돌리며 돈줄을 넘으려 애쓰는 곤고한 시지프스가 되어있다.
이 글에서 줄넘기는 아이들의 상징이고 돈은 어른의 표상 물이다.
줄넘기는 원을 그리고, 돈은 환이 된다. 독 환이고 물욕의 환이다.
원의 마지막 문장 “원은 원으로 있어라”와 환의 마지막 문장, “원은 환이 되지 말거라”는 자신(작가)의 염원일 뿐이다. 왜냐하면 둘의 관계는 마주칠 수밖에 없는 당위성과 불가피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자라면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된 그 어린이는 유년의 추억 어린 순수를 동경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 그것이 맞물려 세상을 돌고 세상을 돌린다.
아가들의 댄스 타임. 서서 관람하는 외손주 재영이.
* 이 글은 두번째 책 《물빛》 에 수록 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