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야만 꽃의 모양새가 완성된 것이라 여기고, 하루의 햇살은 정오의 시간을 넘겨야만 햇빛이라는 자격을 얻는 거라 생각했다. 새의 울음도 청아할 때 숲향을 올올히 전하는 거라 단정하고 살았다.
수년이 지난 지금에야 나의 그런 생각에 대한 연원을 알게 되었다. 가까운 지인이 내게 외유내강이나 완벽주의형이라 했는데 그 말을 곱씹어보다니, 나는 완벽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진실을 깨달았다.
꽃이나 새나 해는 나 자신이 아니라 타자이다. 나자신이 먼저 행하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서 완벽을 추구했다. 그렇다. 나는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자에게 엄격했다. 그것을 특히 나의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적용하여왔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의 침실과 부엌과 책상머리에서, 아이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부모의 기지를 발휘했는가,라고 물어올 때 나는 yes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특히 큰딸 생각을 해보면 목에 뭔가 뜨끔한 게 걸린다.
큰아이는 소위 큰 과수원집이라 불리는 집 맏딸로 태어나 할머니, 다섯 명의 큰아버지, 큰엄마, 고모, 고모부의 사랑을 먹고, 매일 작업하러 오는 일군들 관심 속에서 자라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고사리 손으로 3살, 6살 터울의 동생들을 극진히 보살폈으며, 아이답지 않게 엄마의 일을 묵묵히 도왔다.
엄마인 나는 이때까지 그런 아이에게 고맙다는 인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남의 자식도 그렇게 자라는 줄 알았다. 햇살이, 새가, 꽃이 피어나는 것을 거저 얻는 거라 치부한 것처럼, 큰딸에게도 그랬다. 그뿐 아니다. 아직 인격이 완성되지 않아 더 신선한 아이에게서, 내가 필요한 언어를 원했다.
내 나이 스물일곱에 낳은 아이가 스물일곱이 되어 학교를 졸업하였고 취직자리를 구하느라 오늘도 레주메 resume를 쓴다.
구인 사이트에 들어가 백번을 써서 보냈는데 대답은 메아리로 돌아왔다. 아니 그들은 쏘리 sorry, 패일 fail로써 딸이 들어갈 공간 부재에 대하여 명료한 대답을 냉철하게 보내주었다. 아직 연둣빛 나이인데 백번씩이나 바삭 마른 가지를 가슴에 얹어야만 했던, 그 마음의 갈비뼈 사이로 얼마나 시린 바람이 들어갔을까.
그 당시 엄마인 나는 그 속을 알지 못했다.
엄마는 함께 울어주지도 공감해주지도 못했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은 취업해서 잘 다니고 있는데 웬 유별이람, 하며 속으로 딸 흉을 본 적도, 솔직히 있다. 그뿐 아니라 남들 앞에서 성실한 척하지 말고 내면을 차분히 성찰해보라는, 올드한 언어를 진부한 수필처럼 풀어놓는 엄마였다.
딸은 제 엄마라는 타자로부터 얼마나 여러 번,
철문같이 닫힌 느낌을 받았을까.
날개를 가지고도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을까.
그러고 보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프로는 유치원생에게만 적용할 건 아니다. 10살 미만에 형성된 인격이 중요하다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는 멀고도 가까워서 아이와 부모가 살아가는 한, 평생 마음의 거울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 상큼한 사과 향을 담을 시기에 시큼한 식초를 맛보아야 했던 자식의 속내를 비출 거울을 갖추지 않으면, 아무리 엄마라도 깨치지 못한다.
이 미망의 시대를 알지 못하면, 그녀들의 심층을 파고드는 비명을 듣지 못한다. 다이어트를 하고 화장을 한 외모에서, 구멍 뚫린 속옷 같은 그녀들의 허전한 속내를 추측하지 못한다. 주홍빛 포엔 시에나꽃의 열망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가 자라는 시간만큼 부모의 그릇은 더 넓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하다.
흐르면 흐르는 대로, 흘러가야 한다.
강물이 흐르면서 강바닥의 모래알을 쓰다듬어 말갛게 씻어주고, 바람결이 흐르면서 연둣빛 새싹을 틔우듯, 부모의 언어는 그렇게 흘러야 한다. 그래서 어머니이고 아버지이다.
자녀와의 대화는 마음의 결과 결 사이로 바람결처럼 흐르게 하여야 한다. 바람과 햇살이 지난 자리에 꽃망울이 맺히고, 물결이 스쳐간 곳에 물고기가 알을 낳듯이 그렇게 맺혀야 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랑이 맺히도록, 속 깊이 감춰 둔 진실어린 속내를 내놓고 서로 교감하여야 한다.
해마다 봄이 오려할 때마다 꽃샘바람이 분다.
그 시간을 견디다 보면, 꽃은 피게되어 있다.
어느 해인가. 내가 과수원 안주인이던 시절에 꽃샘바람이 무서리를 동반하고 꽃봉오리를 강타하여 배나무는, 배꽃을 피우기에 얼마나 힘겨웠는지 모른다. 농부이던 남편은 서릿발에 시들어가는 꽃봉오리 앞에서 평소 믿지 않은 신께 기도했고, 밤새 왕겨를 덮어주면서, 배꽃봉오리와 함께 산고를 겪어야 했다.
그 결과 그해 배꽃향기는 난분분 흩날리며 과수원을 더욱 달달하게 감쌌다. 열매는 우량아처럼 아주 튼실했고 더 귀중했다. 잘 익은 과일을 한 입 베어 물때마다 배가된 단물이 입 안 가득 번졌었다.
지나고 보니 꽃을 피우려 애면글면하던 때가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시간이었다.
그래 취업 때문에 애면글면하던 큰딸은 어느덧 어엿한 직장인으로 변했다. 작년에는 지가 사랑하고 지를 아껴주는 신랑을 만나 시집을 가서 고소한 참깨 내음을 온 사방에 풍기고 있다. 달포 전엔 귀여운 아기도 순산했다.
오늘도 나는 아직은 피지 않았으나, 언젠가는 피어날 또 다른 꽃봉오리 앞에서 꽃을 기다리는 농부가 되어본다. 아직 피지 않은 희망이 그 속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명절 잘 쇠셨는지요.
첫 외손자 재영이가 새해 복 인사 드립니다.
"새해에도 글과 복 많이많이 지으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