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유리창에 도마뱀 한 마리 붙었다.
꼬리를 몸 쪽으로 꼬부린 근육질 몸매에서 긴장감이 돈다.
잔디씨앗 같은 까만 눈은 분명, 불 흐르듯 반짝일 거다.
나방은 도마뱀으로부터 팔 하나 정도 거리에서 간헐적으로 날개를 친다.
명중할 대상 쪽으로 몸체를 겨눈 도마뱀, 심호흡 한번 한다. 허여멀건 배때기의 숨이 살짝 가쁜 걸 보니 포획물의 영양가가 꽤 있는 모양이다.
혼자 조용히 지켜보던 나는 옆방 딸아이를 잽싸게 불러들였다.
“나방은 아직 모르는 것 같지.” 하는 찰나, 두 날개만 남기고 도마뱀의 혓바닥이 나방의 몸을 스륵 말아가 버렸다. 불현듯 천적의 주둥이에 붙어 천적의 날개 형상이 된 나방은, 천적의 주둥이 속에 든 제 몸체를 빼내 보려고 혼신을 다한다.
도마뱀의 주둥이에서 두 생명체의 생존 의지는 팽팽하다.
한쪽은 살아보려고 파닥거리고 한쪽은 배때기를 채워보려고 기 쓰는 중이다. 도마뱀은 잠잠해질 때를 기다리는지 나방을 꼭 물고만 있다.
가만히 보니 도마뱀의 비늘과 나방의 날개는 둘 다 삼베 무늬를 완연히 닮아있다. 색이 곱지 못하고 날기가 어눌하여 나비의 아웃사이더로 밀려난 나방. 뱀의 머리이나 네 발이 달려있어 흙내를 깊숙이 느끼지 못하고, 독毒이 없어 뱀의 아웃사이더가 된 도마뱀. 이 둘의 운명 또한 유사하다. 어쩌면 이들은 태곳적에 사촌남매 거나 자매 거나, 친한 친구이거나, 시누와 올케 사이였는지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씹고 씹히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나는 지금, 호주에서 간혹 보는 안타까운 현실을 떠 올리고 있다.
멋모르고 있다가 잡혀와 나풀대는 나방의 날개와 제 이빨 사이에 꼭 물고 놓지 못하는 도마뱀의 형상에서, 가슴 아픈 서사들이 오버랩된다.
한 가정이 유학이나 이민을 올 때, 한국에 머무는 지인들은 가끔 자신의 아이를 같이 보낸다. 내 친구는 중학생인 조카를 데리고 와서 함께 살았고, 친구의 친구… 도 지인의 자녀를 부모 대신 돌보아 왔다. 그것은 누구보다 서로 속내를 잘 알고 친밀한 관계일 때 가능하다. 그러니 처음에는 내 자식이 네 자식으로, 감동의 물결이 장렬한 시로 새 출발한다. 하지만 창밖의 풍경도 결코 정지화면이 될 수 없는데, 인간의 감정이 처음 그대로 간직될 수만은 없다.
나의 자식도 자랄수록 점점 타인이 되어 가는데,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지만 타인의 자식이 나의 자식이 될 수는 없다. 중간에 아이를 놓고 점점 대립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문화가 다르고 언어에 서툰 타국에 살면서 타인의 자녀까지 달래 가며 매끼를 살아가기가 그리 호락한 일이 아니다. 솔직히 나는 머리 굵어가는 내 속으로 난 자식 건사하기도 만만찮았다. 내 자식이 특별히 말썽 부리는 아이들은 아니지만, 어떤 날은 아이들과 나의 관계조차도 바닥 없는 우물 속처럼 본질에서 벗어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바닥을 다시 세워야 했으니.
온라인 시대라 하지만 빙산의 일각인 보이는 의식만을 가지고, 멀고 먼 거리에서 여과 없이 일차원적 사안을 서로 나누다 보니 삶이 얽힐 수도 있다. 가없는 자녀사랑과 교육열 또한 두 가정 사이를 대립된 관계로 전환시킨다. 시간이 지나면서 둘의 정신적 산소통은 나방 날개의 습도처럼 점점 허약해지고 메말라 간다. 대립각은 도마뱀의 꼬부라진 꼬리처럼 더욱 곤두세워지는 관계로 발전하여, 씹고 씹히는 언행을 한다.
이를 지켜보는 우리에게 9분이 지루할 정도로, 시간은 침잠 속으로 흐른다. 아주 가끔, 포획물의 방향을 바꾸는 것 외엔 도마뱀의 주둥이 속이 달 속처럼 고요로 이어지지만, 사실 도마뱀과 나방은 지난한 고통 중에 있다. 꽉 문 도마뱀의 이빨. 그 사이에서 신음할 나방의 속 비명. 도마뱀이라고 마음이 편할 리는 없다.
내 가슴으로 이 둘의 고충이 조용히 전이된다.
결국 나방의 날개가 축 늘어지면서 도마뱀의 배때기가 점점 차 오르기 시작한다. 도마뱀의 배때기는 발름거리면서, 나방의 몸 전체를 무참히 묻어버리고 있다. 끝까지 파닥이는 몸짓으로 생명을 이어가려 하다가, 세상과 별리를 고하던 나방의 날개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나도 모르게 휴,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고 이것을 도마뱀의 악행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그저 나방과 도마뱀의 숙명적 악연이다. 먹힌 나방도 가엾지만 유리창에 매달려 먹이를 포획해야 했던 도마뱀도 생존에 치중했다.
창에 달라붙어 투명하게 속이 어리는 도마뱀의 배때기가 아직도 발름발름 거린다. 한 생명체의 소화기관 안에서 완전히 죽지 못한 또 다른 생명체. 하나로 조합되지 못한 채 각각 제 의지대로 살아보려고 꿈틀거리는 것 같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소화되지 못하고 뱃속에서 산 채로 있는 것 같아 내 오장이 꼼틀거린다.
둘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나무를 살리기 위한 부토의 뼈가 삭아야 하듯, 둘 중 어느 하나가 포기하든지 희생하든지 승화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걸릴 테고, 하나가 뼈저리게 아파야만 할 텐데….
한 생명체에 의해서 준비할 겨를도 없이 최후의 날을 맞이했던 맥 못 추던 또 하나의 생명체. 나방의 누런 누각 같은 몸은 도마뱀의 몸속에서 점점 소멸되어가고, 도마뱀은 그것으로 인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