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번지 브리즈번 첫 집에서 좌충우돌한 만큼 더 뭉쳤던 우리 가족
우리 네 식구, 아니 내 마음 깊은 속에서 언제나 함께하던 남편까지, 다섯 식구를 실은 인생의 열차는 우리를 브리즈번의 큰 하우스에다 내려놓았다. 우리 가족은 그 집에서 짧게 두 번을 렌트해서 살았다. 31번지는 브리즈번에서 우리의 첫 집이자 마지막 집이었다.
첫 집에서 한국과 호주 사이의 충격적인 문화적 충돌, 그 두 가지는 이거였다.
아침 8시에 막내와 둘째를 하이스쿨 앞에 내려주고, 오후 3시가 되길 기다렸다가 픽업을 해오는 차 안에서도 우린 많이 웃었다. 대학생이던 큰딸은 버스를 타고 브리즈번 시티로 학교를 다니면서 언제부터인가는 도미노피자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큰딸이 한국생활을 너무 못 잊어해서 엄마와 딸이 서로 병이 날 것만 같았다. 자꾸만 돌아가고 싶다며 5개월 동안을 울고 또 울었다. 그것만 빼면 처음 해보는 해외생활의 수레바퀴도 수월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하는 수없이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3일 후부터 큰딸의 향수병이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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