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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Oct 11. 2022

집 • 5

- 호주 두 번째 집, 51번지를 샀다, 6년 후 팔고 31번에 또살았다


호주에서 첫 집을 사는 과정은 멀고도 험난했지만 결국은 온 지 7개월 만에 우리 집이 생겼다. 매주 렌트비 나가는 게 무서워서 전세를 주고 왔던 신도시 아파트를 처분해서 샀다. 그때 전세를 살던 젊은 가정은 이해를 해주고 도움까지 주어서 지금도 젊은 그분들께 감사하다.



호주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대학 2학년이던 큰딸이 필리핀 어학연수 한 6개월 간의 영어를 가지고, 나와 부동산 에이전트, 빌 사이의 통역을 했다. 그때만 해도 짧았던 영어였다. 딸은 통역의 려움을 내색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껏 최선을 다하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순간이었다.



31번지와 같은 스트릿에 위치한 이 집을 아이들은 좋아했다. 2층 거실 창문이 집 속에 집이 있는 것 같다며 재미있는 집이라며 여기서 살자고 했다. 동네도 평판이 좋고 해서 이 으로 결정을 한 거다.



호주에서 집을 매수하려면 매수자와 매도자는 매수 계약서를 작성할 때, 각각 자신들의 변호사를 선임하여야 한다. 그때부터 모든 행정적인 절차는 양쪽의 변호사들이 처리한다. 러니 신임하는 변호사를 선임하여 변호사가 말하는 절차에 따르면 된다. 변호사비는 각 주마다 다르겠지만 대충 1000불에서 1500불(100만 원에서 150만 원) 정도 든다. 난 그때 외국인으로서 주택을 구입했기 때문에 호주 정부에 FIRB( Foreign Investment Review Board) 신청을 해야 했다. 그러니 호주 정부에서 외국인에게는 국인보다 승인을 받아내는 기간만큼 시간할애해준다. 인지세도 더 비싸다. 만약 그 과정을 건너뛰게 되면  벌금과 벌기다린다. 난 의사소통이 편한 한국인 변호사를 선임하여서 일을 추진했다.



이 집에큰딸은 고등학교 때부터 꿈회계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에 직장을 얻어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곳으로 돌아갔다. 2년 후에는 가족들이 그립다며 다시 호주로 돌아와서 대학원을 마치고 오랫동안 꿈꾸던 호주 회계사가 되었다.  지금은 시드니에서 어엿한 시니어 어카운턴트로 일한다.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성실하고 따듯한 한국인 신랑과 두 아들내미의 재롱을 달고 사는  단란한 가정으로 알콩달콩 고 있다.  올 11월엔 홍콩으로 출장을 가는데 지 친정엄마와 여행을 하고 싶단다. 감사하다.



호주에서 하이 스쿨 1학년부터 시작한 둘째 딸은  목표가 유큐 약대입학하는 거였다. 난 둘째가 약대를 들어가게 되면 그날 바로, 집 앞 스트릿에 나가서 덩실덩실 춤을 출 거라고 하니 둘째 딸은 배시시 웃었다. 그놈 민구도 키득키득거렸다. 난 진심이었는데 아이들은 농담으로 들었었나 보다.



그런데 그 꿈이 현실이 되었다.

둘째가 하이스쿨 3학년 때, 11월에 성적이 발표되는 날 새벽에, 엄마인  미안하지만 쿨쿨 잠을 자고 있었다. 둘째가 나를 깨웠다. 엄마, 엄마 op1, 하고 배시시 웃고 있었다.



국으로 치면 1등급을 받았으니 의대까지 갈 수 있는 점수다. 자기 학교에서 탑 5명 중 1명에 들었으니, 난 약속했던 스트릿에 나가 춤은 못 추고 그저 아이를 포옹해주었었다. 속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었었다.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러 벌써 8년 차 약사로 착실히 일하고 있다. 무엇보다 나한테 1등 효녀다. 나와 알콩달콩 재미있게 이곳 시골에살고 있다. 그런데 외국여행, 국내여행도 엄마인 나와만 다니고 있으니 언제 보이 프렌드를 만나 시집을 갈려는, 아무리 엄마라지만 참, 매번 물어보기도 이젠 난감하다.



아이들이 다 자랐으니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의향도 있고, 그간 아무리 왕소금같이 짜게 소비생활을 했다지만, 유학비를 충당하다 보니 머니가 궁하여 51번 집을 6년 만에 팔았다. 그리고 마침 우리가 살던  아주 허벌나게 큰 집, 31번에 렌트가 나왔길래 그 집에 다시 들어가서 2년을 더 살았다.


첫째 딸은 31번 집에서 대학원 경영학과를 마치고, 시드니의 한 회사에 취업이 되어 집을 떠났고, 둘째도 약사로서 인턴쉽을 하러 시드니로 떠났다. 그리고 그 후 31번 집에서  호주에서 그간 써오던 수필과 평론, 책 두 권을 출간하기 위해 새벽까지 마지막 표지작업을 했다. 손톱만 한 새 한 마리를 위로 올릴까 밑에 그냥 둘까에 빠져있던 그날, 나는 말로 다 표현 수없는 깊은 슬픔의 별리(예나네 브런치북 : 잊는 데 늦는 건 없어 참조)를 벼락같이 맞고, 일주일 만에 이삿짐을 대충 꾸려서 두 딸이 있는 시드니로 이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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