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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Oct 02. 2022

가끔은 이웃집 웃음소리로 안심 모드에 든다

칼리 할머닌 호주 스타일 •7

2022. 9. 29. 목. 2시


사랑에 이유가 있을까만은 그래도 이웃 간의 사랑은 그간 살아온 내력에 의해 보다 더 따스하게 유지될 때가 있다.



사랑에 이유를 들이대면 처마 끝 고드름만큼 가운 감정이 앞서겠으나, 따듯한 의 바탕에는 음덩이처럼 냉철함 전제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는 김춘수 님의 꽃에서도 지된다. 군가 나의 이름을 부를 때 비로소 관계의 의미가 만들어진다.



옆집 릭 할아버지는 이사 오신 후 점차적으로 우리 가족에게 관심을 보이셨다. 홍, 하우  유로 시작해서 굳 모닝, 홍, 홍,... 볼 때마다 나의 이름을 불다. 이름을 잘 부르는 건 이 나라 사람들의 특징인데, 릭은 유독, 이름 부름을 더 자주 챙긴다. 나는 습관적으로 그냥 하이, 하는데도 릭은 꼭 하이, 홍, 한다. 느 날부터인가, 도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주는 습관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다. 사실은 쉬운 것 같아도 그게, 하루아침에 입에 착 안 붙는다.



어느 날 할배는 우리 집 수도꼭지로 엄청 딸려 나오 모래를 말끔히 씻어내어 주고, 집 앞 나무의 뿌리가 억세다며 나무를 제거하는 포이즌을 나무둥치에 발라 주고, 뜰안에 자라는 나무의 수형을 다듬는 전기톱을 충전하는 배터리도 거저 주다. 요즘은 인근 팜에서 가져온 바나나를 정기적으로 나눠다.



물론 할배는 우리 집뿐 아니라 다른 이웃들에게도 후하신데, 그건 곁에서 내조하는 칼리 할매의 공도 크다. 칼리 할매의 삶의 방향도 늘 이웃과 공조하는 데 맞춰있으니 릭의 이웃 랑은 몸에 배어 자연스럽다.  주는 릭도 받는 우리 모두 서로가 마음 편하게 도움의 손길을 거니 받거니 한다. 


그렇다. 내 이웃 간의 사랑은 먼저 이름 부른 누군가의 관심으로부터 출발했다.





지난 월요일엔 브리즈번에서 친구 가족이 기차를 타고 우리 집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물론 친구네는 다 한국사람들이다. 난 슈퍼마켓 콜스에서 프리 레인지 free range 닭 세 마리를 사다가  가지런히 다듬었다.  잠자던 곰국 솥을 꺼내와서 마늘, 파, 통후추, 대추를 함께 넣고 앉혔다. 두어 시간 동안 센 불과 약불에다 번갈아가며 국물이 하얗게 우러나도록 정성을 다해 고았다.

친구가 오기 전에 한 마리를 냄비에 고이 았다. 곁에다 소금, 오이무침, 김치, 그리고 갓 지은 하얀 쌀밥을 더하여 칼리 할매네로 가져갔다. 평소에 할매 할배는 베리 굳이라며, 나의 이 백숙 메뉴를 무척 반기신다.  


마침 7호 집 로빈 여사도 와 있었다.



로빈과 칼리네 두 가족이 절친이니 나도 로빈과 친한 사이가 되었다. 며칠 전보다 칼리 할머니의 큰 눈이 쑥 파여 들어가고 핼쑥해 있었다. 입맛이 안 돈다니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난 할머니를 꼬옥 안아 포옹을 하고 나왔다. 너오는 길에  드린 밥을 드시고 밥심으로 힘이 솟기를 빌었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밥이 보약이라 하셨으니 대한민국  효력 발휘기를 내심 기원하건너왔다.

그러나 며칠 후에 릭 할배 가라사대, 칼리가 입맛이 안 돌아서 릭이 혼자 다 드셨다고.




어제, 수요일 일정이 좀 바빴다. 브리즈번에서 온 친구 가족을 배웅하고 블랭킷 버디스에 들려 그간 떠 둔 이불과 모자를 홀 앞의 탁자에 올려고 할매들과 함께 앉아서 뜨개질을 좀 하다가 집에 돌아왔다.


나의 편물 외에 서른 점 남짓한 할매들의 뜨개질이 더 있었다.



매주 들어온 편물을 이렇게 보여주면서 서로 칭찬해주고 박수를 받는다. 30년이 넘은 경력의 할매들 뛰어난 솜씨에 난 입을 다물지 못할 때가 많다.




마침 그날, 수요일우리 타운하우스에 이른 아침부터 가드너 두 사람이 큰 장비를 몰고 와서  큰 나무들을 뽑아내는 작업 중이어서 차를 공동 게이트 바깥에 파킹하고 걸어오고 있었다. 땅바닥은 나무 부스러기가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그때 저 맞은편에서 로빈 여사가 칼리를 유모차 같은 데 태워 밀고 오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바깥에 세워둔 로빈의 차까지 나도 도와서 칼리를 태운 그녀의 차가 병원으로 떠나는 걸 보고 왔다. 리의 건강이 금 걱정되었다.  이때까지 아무런 호전도 없고 입맛도 없다고 하였다. 그래도 울퉁불퉁 한 길을 밀덜컹거리는 와중에도 칼리 할매, 재미있는 듯 방글 웃으셨다. 이럴 때 보면 호주 사람들의 저 긍정활짝  마인,  누구도 못 말린다.



간호사 출신 로빈 여사도 참으로 친절하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힘까지 엄청 센 여사다. 칼리를 태웠던 유모차를 척척 접어서 트렁크에 훌쩍 올려놓고는 화끈하게 웃으며 나한테 바이 바이를 했다. 빈의 남편 론은 다리미질을 좋아하고, 로빈은 나무를 다듬는 바깥일을 좋아하여 그들은 노동의  역할을 서로 바꿔하며  살고 있다.


목요일 날 나의 뜨개반은 학생 칼리가 치료 중이니 건너뛰었다. 금요일에 조직검사 결과가 나온다니 그때까지 잠잠히 기다려봐야겠다.




금요일 날 저녁에 우리 집 펜스 너머의 칼리네 집 베란다가 시끄러웠다. 록햄튼 딸네 가족이 와서 릭이랑 환담을 하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가끔은 하하하 하며 배를 잡고 웃는 소리도 들렸다.  나의 이웃이자 뜨개질 학생, 칼리 할매의 건강 결과가 그리 심각한 병은 아닌가 보다. 참으로 다행이다.


나도 이제 안심 모드로 틀어
나의 일상에 든다.  

  평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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