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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매가 검지 같다고요?

- 배부른 게임 - 3

by 예나네


어제 오후에 칼리가 왔다.



옆집 할머니 칼리는 지난주 브리즈번 병원에 가서 일곱 번째 항암치료를 받고 오셨다. 8 순 노인이며 암치료 중인 환자임에도 행히 건강해 보인다. 짜랑짜랑한 목소리 또한 암환자 같지 않다. 늘도 하얀 볼에다 발갛게 볼터치까지 하고 오셨으니, 평소 자신의 미에 관심을 두며 미모를 준히 가꾸는 이유도 한몫한다. 이는 자인가. 칼리를 만나면 그녀가 나보다 스무 살 더 많은, 매라는 느낌이 안 든다. 재밌는 친구 같다.


항암치료 중에 머리칼을 다 밀고 나서 남편 릭할아버지는 그녀의 외모를 프리티 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예쁜 비니모자 여덟 개를 인터넷으로 시켜주었으니, 칼리의 미모지상주의는 알 만하다. 나보고 화장할 때 왜 볼터치를 안 하냐고 꾸만 물어서, 며칠 전 외출할 때 슬쩍 볼터치를 해봤더니 생기가 있어 보였다. 그 후로 나도 약하게 볼터치를 따라 하게 되었으니 주변환경과의 상관관계는 뜨겁다.


오늘은 바나나를 할머니가 갖다주다. 우리 집 바나나가 동날 즈음이면 근 농장에서 갓 수확한 열매를 든 릭할아버지가 문을 노크하곤 했는데, 할머니가 우리 얼굴도 볼 겸 해서 오셨단다. 마침 오늘은 딸도 함께 집에 있었니, 평소에 이뻐하던 그녀를 당신 손녀인 양 반긴다. 도 생글생글 할머니를 반긴다. 진심 마주 보며 웃는 사람들, 그가 누구든 꽃보다 쁘다.


그런 할머니에게 내가 항암 치료 후 안부를 물어보니, 요즘 밥맛이 없다고 다. 상을 차려놓고 식탁에 앉으면 밥맛이 싹 가신단다. 병 중에 있는 사람의 말속에는 누가 언제 들어도 짠함이 묻어난다. 여나 선 음식을 보면 칼리 맛이 돌아올까 싶어서 저녁에 잔치국수를 말아서 전드리고 왔다. 작년 12월에 깎아버린 빨갛던 머리칼이 암투병 중엔 하얗게 돋아나온 걸 보여주며 살짝 인상을 찡그리던 그녀, 평소 나의 음식을 즐겨들던 그녀의 감이 망울 터지듯 톡톡 되살아나면 좋겠다.


그 와중에도 칼리할머니 재치만담은 못 말린다. 브리즈번 병원에 있을 때 릭할아버지는 칼리가 입원한 병실에만 들오면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부터 하셨단다. 나는 그럼에도 릭은 굳 허즈번드라 놀리자, 깍쟁이 칼리 할머니는 한술 더 떠서, 릭할아버지를 팔아먹어야겠단다. 순간 우리 셋은 깔깔깔 웃었다. 젊은이도 중늙은이도 나이가 드실 만큼 드신 분도, 삼대가 다 웃었다.


그리고 그가 얼마냐고 내가 물었다. 칼리는 자기 남편 릭 할아버지가 28 센트라며, 나보고 살 거냐고 묻는다. 그러자 한 유머쟁이 딸이 치고 들어온다. 우리 엄마가 그를 사려면 이번, "배부른 게임"에서 승리해야 될 거라면서, 거금 150불이 걸린 딸과 나의 살 빼기 게임을 자세히 설명해 드렸다. 그러자 귀요미 칼리할머니, 자기 남편을 150불에 올려 받겠단다. 할아버지의 가격이 1분 만에 몇백 배가 넘게 뛰었다. 우린 배를 잡고 또 한 번 깔깔깔 웃었다.


멎은 웃음기 사이로 리는 내 앞에서 자기 검지손가락을 세워 올려 보이면서, 너 매번 볼 때마다 요렇게 생겼는데 살 뺄 게 뭐가 있냐, 고 반문하신다. , 내 몸매가 검지 같다고?, 하며 볼록렌즈 같이 드라진 배를 두드려 내보이며 고개를 짤래짤래 흔들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나라 여인들 엉덩이 둥글넓적한 것만도 내가 따라갈 주를 훌쩍 넘어섰으니, 칼리 안목에 내 바디가 가늘게 생긴, 아니 날씬하고 프리티 한 몸매의? 검지로 비칠 만도 하다.


어쨌든 칼리는 우리 모녀의 "배부른 게임"에서 내 딸, 아으니 편을 들 거란다. 아으니가 예뻐서라나. 이처럼 이 세상 사람들, 국적불문 너 나 할 것 없이 젊은이에게 호감 생기는 거, 못 말리는 고질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리가 나보고 검지같이 생겼다니 얼마나 상큼 발랄 뉴스인가.


손가락, 검지를 네이*에 검색해 보니 매력적인 싱어, 검지가 나온다. 내가 그녀를 닮았나. 순간 머리가 아리까리 해진다. 게 호접지몽이던가. 속 나비가 내가 되었나, 내가 나비가 되었나. 여하튼 오늘은 체중계 숫자가 좀 올라가더라도, 나 대 절망하지 않으리라. 칼리가 지를 들어 올린, 멋진 퍼포먼스로써 언한 내 검지가 그 검지면 어떻고, 이 검지면 어떤가. 이 검지도 그 검지도 나 뜨게 만든다.



내가 검지를 닮았다니, 오늘밤 잠은 다 잤다.




아, 게임엔 팬덤이 생기는가. 딸은 옆집 할머니가 밀어주고, 나는 브런치 작가님들이 응원한다니. 모든 분들께 감사함을 전하며 아침부터 부지런히 숫자를 작아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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