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계 숫자엔 양심이 스며있다
- 배부른 게임 -2
솔직해지자.
요즘 늘 그랬듯 어제저녁에도 6000보를 못 채웠다. 5200보에서 멈췄다. 낮에 너무 더워서인지 내 몸이 천근만근 피곤하고 졸려서다. 핑계치곤 그럴싸한가.
어쨌든 지난주만 해도 뒤뜰 콘크리트바닥이 뜨겁게 달아있어 밖에서 못 걸었었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거실에서 걷기를 했다. 며칠 전부터는 드디어 서늘해진 뒤뜰에서 맨발로 걷는다. 내게 살 빼기 좋은 계절이 왔다.
개나리 꽃잎 바싹 말려 두 손으로 쓱쓱 부벼 하늘로 후후 흩뿌려놓은 듯, 노랗게 뜬 하늘 속 별궁 아래서 걷는 건, 시골살이 내 행복 중 하나다. 반짝이는 별들의 소근소근거림이 들려온다. 풀벌레 울음소리 나뭇잎 사각이는 바람은 덤이다.
새로운 습관이라면 걷기가 끝나기 무섭게 체중계에 문안하는 거다. 오렌지색 숫자로 나타나는 단 몇 그램의 무게에 의해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아, 마지막 김말이 안 먹었어야 했는데, 내가 한숨을 섞어 후회하자, 퇴근 후 저녁밥을 맘껏 섭취한 딸이 한 마디 했다.
엄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헤헤.
응, 재미있어서 그래. 돈 워리. 후후.
이렇게 우린 어쩔 수없이 진심 어린 애정을 서로 주고받는다. 평소 딸의 말이 따듯하여 내가 더 자주 감동받는 편이다. 별말은 아닌데 그녀가 전하는 마음에 울컥할 때가 있다.
몇 년 전 깊은 슬픔 속을 헤맬 때도 딸이 곁에서 말없이 살핀 덕에, 어미가 별 탈 없이 정상으로 살아가는 데 한몫하고 있다. 감사하다.
그래도 게임은 게임이다.
우리의 게임은 공정할 수밖에 없다. 폭신한 딸의 성정으론 불공정한 게임이란 없는 걸 난 안다. 그 와중에도 우린 이기는 게임을 원한다. 누구나 그렇듯, 우리 모녀간에도 게임 앞에선 예외가 없다.
오늘 아침엔 61(어제저녁; 61.25)로 줄었다. 딸이 휴무라서 해변을 두어 시간 걷고 오니 60.35로 줄었다. 오전 11시 47분이었다. 아직 오늘 게임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나의 오늘 저녁목표는 60.90이면 족하다.
난 이렇게 체중계를 오르락내리락하느라 분주한데 딸은 무연한 듯 있다. 분명히 그녀만의 전략이 속내에 있을 텐데, 속을 내비치지 않으니 열길 물속도 아닌 한길 사람 속을 어찌 아는가. 한술 더 뜬 그녀, 오늘 점심에 안 하던 짓?을 했다.
KFC 닭고기, 감자칩, 콜라, 햄버거를 가득 안고와서 식탁에 부려놓는다. 오랜만에 먹어본 이 외식, 아 그래도 다이어트 중이라 눈치를 살피며 먹게 된다. 평소 같으면 다 먹어치웠을 감자칩이랑 닭날개튀김이랑 샐러드를 남기고 체중계에 올라가 본다.
오늘 1시 26분 60.70.이다. 오늘 목표완수! 여기서 더 이상 올라가지 말아야 한다. 히스토리를 확인해 보니 작년 8월 20일까지만 해도 59.70이었다. 시나브로 1이 훌쩍 넘어가 있었던 거다. 작년 6월 2일보다는 1.75kg이 더 쪄 있었다. 그래도, 마음의 방향을 체중계로 향해있다 보니 숫자는 조금씩 빠진다.
체중계 숫자엔 양심이 스며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