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녀 꿍꿍이 속은 아무도 모른다

배부른 게임 - 4

by 예나네


밥솥에 잡곡을 앉힌다.


며칠 전보다 눈금이 조금 내려갔다. 매번 세 컵 반씩 씻던 잡곡을 세 컵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그건 순전히 나 때문이다. 난 요즘 딸과 살 빼기 내기, 즉 150불을 걸고, 위 배부른 게임에 돌입했다. 그 후 나는 먹는 게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무슨 꿍꿍이인지 딸은 아직도 초연하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상을 차려주면 아 맛있다, 맛있다 하며 부침개, 만두, 김치찌개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녀 입속으로 쏙쏙 들어간다. 그래도 게임한테 양심? 은 있는지 밥을 다 먹고 나면 아, 나도 좀 덜 먹을걸, 헤헤, 한다. 속으로 메롱, 한다.


저녁을 먹고 나는 얼른 체중계에 올라간다. 그리고 조금 실망을 한다. 어, 250그램 올라갔어. 마지막 만두 먹지 말걸, 니가 남겨놔서 먹었잖아. 왜 남겼어, 다 먹지. 내가 그러자, 또 내 탓이야, 하며 배시시 웃는다. 그러더니 이런다. 엄마, 하루아침에 몸무게가 왔다 갔다 하지 않아. 며칠에 한 번씩만 올라가 봐. 체중계 다 닳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딸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 내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가.


오늘 아침에도 김없이 체중계한테 문안을 했다. 저녁에 자다가 생각을 해보니 딸의 말이 틀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변을 보고 나면 7그램이 줄어드는 원리, 그쯤은 꿰고 있어야 게임에 이길 수 있다. 게임의 정적인 딸의 말에 현혹되지 말자, 하고 숫자를 체크해 보았다. 오 마이 갓! 첫 글자가 바뀌었다. 당연히 앞숫자가 내려갔다. 그러면 그렇지. 이제부터 푸드를 입속으로 넣는 것만 절제하면 된다. 반대로 체중계에 나타나는 숫자체크와 걷기 운동은 언리미티드로 실천할 전략을 꼼꼼히 세운다.




오늘은 늦은 출근날이어서 느지막이 방에서 나오다가, 나의 첫자리 숫자가 바뀐 걸 슬쩍 본 딸이 말한다. 오, 우리 엄마 대~단한데. 내가 대답한다. 너도 재 봐. 자주 재봐야 목적이 뚜렷해지지. 여 올라가 봐, 해도 딸은 그저 의연하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난 일하는 날 저녁밥은 폭풍흡입을 해야지, 못 참겠어. 아, 그러고 보니 맞다. 손바닥만 한 도시락 하나 까먹고 온종일 서서 일하려면 얼마나 배가 고플까, 허기가 질까,를 생각하니 배부른 게임이고 뭐고 없던 걸로 하고 딸한테 영양가 있는 푸드로 쿡해주고만 싶다. 짠해서.


그래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짠 전략에 넘어가면 안 된다. 아무리 짠한 모녀사이라도 게임은 게임이니까, 난 나에게 주어진 목적지, 57.99에만 딸보다 먼저 도착하면 되는 게다. 그래, 혼자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프라이팬을 달구어 저온에서 노릇노릇 구워놓은 오동통 만두를 먹을까 말까, 밥알을 잘근잘근 씹고 또 씹으며 생각한다. 그러다 그녀한테 대뜸 이렇게 말한다. 아으나, 요즘 엄마가 밥알을 오래 씹는 버릇이 생겼어. 씹다 보니 밥알이 참 달다. 아, 엄마 나돈데. 나도 요즘 오래 씹어. 그게 건강에도 좋데. 그녀의 말을 받아 대답한다. 어, 너도 게임을 하긴 하고 있었구나. 녀, 빙그레 웃기만 한다.




내일부터 꿍꿍이 그녀가 4일 동안 일을 쉬는 날이다. 일을 할 때는 저녁을 폭풍흡입했지만, 쉬는 날 그녀의 식단에 변화가 올까. 과연 그녀의 알지 못할 잔잔한 꿍꿍이 속에서 뭔 전략이 나올까, 몹시 궁금하다. 알고 보면 나처럼 설레발치는 사람보다 고요한 바다가 더 무서운 법. 그녀는 늘 조용히, 큰 게임에서 이기는 사람이다. 학교성적을 우등생으로 들어올릴 때만 도 그랬다. 그때도 조용했다. 나처럼 이렇게 하루 수십 번씩 체중계한테 인사질?을 하며 요란 떨던 그녀를 한 번도 본 적 없다.


분명, 그녀의 바다엔 내가 알지 못 고유한 전략이 들어있을 거다. 저 잔잔하나 바윗덩어리 같이 꽁꽁 숨겨놓은 꿍꿍이 속내를 누가 알까. 아무도 모른다. 아, 혹시, 지엄마를 가지고 노는 게임을 즐기고 있진 않겠지. 설마 사람 잡는다고, 행여, 나를 앞에 놓고 배시시 대며 원격조정? 게임을 즐기고 있나. 상대선수가 너무 고요하니 생각이 복잡해진다. 별별 생각을 다한다. 그러다 다시 또 나의 페이스로 돌아온다. 난 30년 차가 넘은 고수 엄마니까. 그가 죽을 쑤든 밥을 쑤든 상관 안 한다. 쿨하게 체중계로 돌아가 숫자를 체크하니 첫 글자가 대로 바뀌 있었다. 숫자도 를 닮아 쿨하다.

* 3Kg 중1.6Kg이 줄었다. 61 - 59.40 = 1.60



keyword
이전 03화체중계 숫자엔 양심이 스며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