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을 읽다

니체, 정신의 변화

by 예나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창조하는 행위라고 했던 니체 씨.

호주에서 생활은 가끔 당신의 철학을 대하는 것 같습니다. 고국 생활에 익숙했던 사고방식을 깨곤 합니다. 겨울인데 나뭇잎이 파랗게 달려있다든지, 화무십일홍이 무색토록 사시사철 꽃을 달고 있는 버건 윌리아와 예스터데이 투데이 투모로우라는 꽃나무의 모습이 낯설 듯이, 당신의 철학 또한 고정되어있는 내 의식을 전복시키곤 하였습니다. 고국에서 당신의 서책을 읽었고, 호주에 와서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하여 당신에 대한 강의를 접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내 삶을 보듬고 싶어서 e-메일을 보냅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단테와 괴테, 셰익스피어를 넘는 최고의 책이며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고 했던 니체 씨. 당신이 아무리 실존주의자의 선구자라 하지만, 자신의 책에 대해 이토록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용맹을 접하면서 내 인식의 틀거리는 해체되어갔습니다.

기존 사상을 무조건 해체하기보다는 그 속의 모순을 짚어내어 정신의 충격을 준 니체 씨, 목사의 아들로서 신학을 공부했지만 “신은 죽었다”라고 한 당신은 창조의 황제가 아닌가요. 창조하는 자는 스스로를 태워 재가 되지 않으면 거듭날 수 없고, 창조하다가 파멸의 길로 가는 자를 사랑한다고 했던 니체 씨. 그러나 당대에 외면당한 당신의 천재적 감수성은 정신적 고독에 시달리다 44세부터 정신착란을 일으켰다지요.

신의 죽음과 동시에 초인(Ubermensch)을 탄생시켰던 니체 씨.

신에 의지하는 시간을 깨고 인간 중심의 시간을 되찾으려 노력하는 초인, 자기 주도적이고 자유정신을 소유한 인간이 위버멘쉬인가요. 저편의 세계에 삶의 무게를 둔 플라톤적, 그리스도적인 삶을 추방하고 인간의 시간, 리얼리티의 시간을 되찾으려 한 니체 씨.

정말로 신이 죽었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의 너머를 향해 무언가를 이루어나가려 몸부림을 쳐야 할 것입니다. 자유의 쟁취자인 사자 같은 인간이 되려 하겠지요. 처음에는 자신을 낮추고 버리면서, 더없이 무거운 짐을 진 낙타가 되어 사막을 터벅터벅 걷겠지만요.

나는 당신의「세 가지 정신의 변화」에 대해 읽었습니다. 우리 정신은 낙타에서 점차 사자로 변하며 결국에는 순진무구한 어린이가 되면서 인격이 완성된다고 하였지요.

무게를 느끼고 통증을 감수하는 삶은 육체라기보다는 정신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이 정신이라는 가짜 틀을 만들어 놓고 육체를 무시한다고 당신은 말하였는데, 그런데 왜 정신의 가짜 틀이 생겨날까요. 우리의 정신은 갈 곳을 잃었고, 정신은 더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정신적 생채기는 삶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더군요. 고독과 불안, 불만을 겪으면서 결핍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끝내는 정신에 변화가 생성되기 시작합니다.


낙타처럼 무거운 짐을 지던 우리는 야생적인 사자가 되어 사막의 주인이 되려 합니다.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낙타의 순응적인 정신이 “나는 하고자 한다”는 사자의 자유정신으로 변하겠지요. 창조를 위한 자유의 쟁취, 적어도 그것을 사자의 힘은 해낸다고 당신이 단언하였듯이 사자의 힘은 ‘내면’에서 생성된 자유의지이기 때문에 상당한 파워를 지니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나의 시간을 돌아봅니다.

지천명이 지나도록 살아오면서, 낙타처럼 더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걸었던 시간도 있었고,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미망과 자의를 찾으려 갈급해하는 인간이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언명대로라면 나는 아이가 될 차례에 도래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 약하고 이기적인 자아가 어린이로 변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알게 모르게 남의 영혼을 갈취하기도 했던 자아. 양파껍질같이 정체 모를 가면을 쓴 자아. 상처 나고 상처 주었던, 너덜 해진 내 영혼.

그런 자아조차도 벗기고 내려놓으면 어린이로 변할 수 있겠는지요.


“어린아이는 순진무구며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라는 당신의 메시지를 보니 내 무거운 자아를 무조건 내려놓고 싶어 졌습니다.

큰 고통은 비범함을 낳는다고 했던 니체 씨.

호주와 고국은 계절마저도 반대랍니다. 여긴 가을이 오는데 고국엔 봄이 오고 있겠군요. 고국의 가을은 낙엽과 단풍을 앞세워 오지만 여기 가을은 찬바람만을 불러들이더군요. 가을이 되어도 낙엽이 지지 않으니 새싹 돋아나는 고국의 봄과 달리, 호주는 꽃 잔치로 봄을 알리는군요. 여름에 산타가 오는 것도 낯설고 뜨악한 풍경이랍니다.


진리를 사랑하면 진리를 사랑스럽게 창조하라던 니체 씨.

인간은 서책을 읽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리를 깨우치고 정신의 변화를 체험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듯이, 호주에서 생활 또한 내 정신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내가 내 삶을 사랑하기에, 나는 호주의 낯선 생활을 사랑스럽게 창조하기 위하여, 내 삶의 경험을 더 확장시킬 것입니다. 언젠가 고국에 돌아가서, 거듭 달라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당신께 e-메일을 다시 보내는 날이 오길 기대해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