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들이 지나간 자리,
다 그림이다.
열려진 방문 뒤에 숨어있던 두 자루의 색연필에서 경찰차가 그려지고, 할미 차 뒷좌석에 찍힌 꼬맹이들 흔적들에서 까르륵 대던 웃음이 그려진다. 바다에서 갖고 놀던 작은 바스켓 속 모래알갱이에서, 응축된 파도소리 딸려 나온다. 선샤인코스트, 마루치도어 공항에서 딸과 외손주들이 탄 비행기가 시드니를 향해 이륙하는 걸 보고 우린 브리즈번으로 내려갔다. 이틀을 거기서 묵으며 아이들이 못내 그립다. 찐 사랑이 이런 걸까. 애들을 떼어놓자마자 바로 그리움이 절실해졌다. 외할미 가슴에 온통 아가들로 차올랐다. 지난 4월에도 그랬으니, 그래 이번엔 사진과 동영상을 더 많이 찍어두기로 했다. 아가들과 사흘 안에 페이스톡을 할 텐데도, 그것과는 색감이 다른 추억을 찰칵찰칵 편집해 두었다.
이번엔 한 주를,
함께 있었다.
첫날밤은 선샤인코스트에서 보냈다. 숙소에서 까르륵 대던 아가들 동선이 이뻐서 나의 폰 카메라가 바빴다. 이튿날 간 오스트레일리아 주 Australia zoo에서 본 악어쇼와 버드쇼를 시작으로 기린, 호랑이, 치타... 를 배경으로 서있는 아가들 사진을 찍었다. 집으로 돌아와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은 큰딸이 화상 인터뷰를 본다 하여, 아가들이 우리 차지가 되었다. 다섯 살 재영이와 네 살 재윤이는 이모와 외할미를 쫄랑쫄랑 재잘재잘 재미나게 따라왔다. 몬레 포 터틀센터에 가서 거북이 알과 화석과 관련 동영상들을 취향대로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두어 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곁에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와 맨질 하게 닳은 자갈을 콜렉트 하느라 아가들은 분주했고, 난 오늘도 사진을 열심히 모았다.
다음 날도 난 사진과 동영상
콜렉터가 되었다.
뜰에서 아가들을 위해 남겨둔 열무를 함께 뽑았고, 그 자리에 들깨씨앗을 같이 심었다. 아가 둘은 앞다투어, 그래서 순번을 정하여 잔디와 꽃들에게 물을 담뿍담뿍 뿌려주었으니, 가든에서도 상일꾼이었다. 또 다른 하루는 보타닉가든을 한 바퀴 돌아주는 트레인을 다 같이 타고 놀았고, 바다에 가서 피시를 따라다녔다. 바닷가 놀이터를 섭렵하며 외갓집 동네를, 꼬맹이 둘이가 쫑알쫑알거리며 제 터인 양 동네방네 휘젓고 다녔다. 다행히 마지막날까지 안전하게(전날저녁 모기한테 물린 것 빼고), 유종의 미를 남겼다.
마지막으로 우리 타운하우스 안 수영장에 갔다. 물을 좋아하는 아가들이라 각각 1, 2년씩 수영을 배우고 있으니, 잠수도 제법 하고 헤엄도 곧잘 치는 게, 삼모자를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나는 배가 불렀다. 재윤인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수영장 바닥에 떨어진 가상 물고기를 잡는 데 성과 열을 쏟아붓고 있었다. 꼬맹이가 그러다 몸살이라도 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외할미가 꼬맹이를 꼬드겨서 물에서 얼른 건져내었다. 그리고 수건에 폭 싸서 집으로 안고 와 버렸다.
옆집 할머니네도,
세 번을 방문했었다.
할머니와 아이들은 처음부터 알고 지낸 듯 바로 친해졌다. 동생보다 20개월이 빠른 재영인 조금 철이 들어 쑥스러운 감이 있었다. 할머니와 악수를 할 때부터 재윤인 제 엄마아빠 이름까지 들이대고, 뒤뜰에 가서 이것저것 식물을 물어보기도 하였으니, 칼리할머니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을 헤 벌리고 아가들한테 폭 빠져버리셨다. 율동천재라 유치원에서 매번 행사 때마다 센터에 세우는 재윤이에게, 내가 "해피 파더스데이" 율동을 제안해 보았다. 그러자 오늘 말고 다음에 한단다. 그다음 날에는 또, 칼리할머니집 말고 우리 집에 와야 율동을 보여준다니, 요 꼬맹이의 앙증맞은 밀당에 우린 박수를 치며 깔깔대었다. 고놈 꽤나 비쌌다.
아쉬운 라스트 데이, 수영복을 입은 채 칼리 할머니와 릭할아버지께 세이 굿바이를 하는 시간이었다. 이번엔 칼리할머니가 재윤이에게 정중히? 제안을 하셨다. 재윤, 해피 파더스데이 댄스를 좀 보여줄 수 있을까?, 하고. 재윤인 우리 집에 같이 가자고 하며 할머니할아버지, 두 수강생을 모집하여 우리 집 마당에서 율동을 하기 시작했다. 불현듯 일어난 이벤트에, 난 나의 둘째 딸한테 동영상을 부탁하였고 댄스의 끄트머리나마, 추억하나 더 건질 수 있었다. 아가들이 외갓집을 떠나고 나서, 나와 딸과 칼리할머니는, 이 동영상을 가장 애정한다.
할머니도 아가들이 어른거린다며,
눈물까지 훔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