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롱이처럼 여러 차례휘어진 길을 지니고 있어서일까.연약하고 유연한 여성성을 지닌다. 짙고 깊은 청색물빛으로부터 나온파도의 음색이이처럼 속삭이듯 다정할 수 있을까. 사는 동네에 바닷길을 걷는 트랙이 여럿 있다 보니 입맛대로 음식을 맛보듯, 걷고 싶은 해변을 찾아가 걷는다. 그중 바가라와 버넷헤드비치는 걷기 트랙이 곧게 뻗어 남성성의 느낌이나, 오늘 걷다가 멈춰본 엘리엇 헤드비치파도소리는모성을 지닌다. 차르륵차르륵,감겨드는 소리다감하다.
그대라는 바다, 엄마의 바다.
박정현이 그대를 노래하고, 김정수가엄마를 깨어낸 바다엔 그대와 엄마, 즉 사람 속에 바다가 있다. 너도 바다이고 나도 바다다.사람의 바다에도 성질머리가 있듯 바다의 바다 또한 감성이 있다. 속 시원하게 탁 트인 바가라바다. 안온하게 감싸 안아주는 몬레 포 바다. 그리고 낮은 파도와 맑은 흐름으로 내 유년을 연상하게 하는 엘리엇 헤드 바다, 오늘 난 이곳에 있다.올 때마다 물 빠짐이 드넓어맑아진 이 갯가에서, 유년으로 돌아가 맨발로 물방울을 튀기며 마냥 물장난하기 좋은 곳이다. 오늘 오후 바다는 물 빠짐이 유난히 넓다. 다섯 살짜리 외손주와 함께 솔저크랩이 모래사장을 몽글몽글 수놓은 물 빠진 바다를 걸어서 여기물가에 닿았다.
모래와 진흙의 중간즈음 질감인새하얀 흙을, 맨발로 디디면 푹푹 발이 빠진다. 마른모래뻘 속으로 깊이 든 발을 빼내며 어렵사리 걸어가서, 물이 맑게 고인남겨진 바닷물가에 닿는다. 놀기 잘하는 외손주는 할머니, 저어기 가면 피시 많아? 잡을 수 있어? 하며 아가의 부푼 꿈으로 폭폭 빠진 조막만 한 발을 쏙쏙 당겨 올리며 곧잘 따라온다. 맑은 물은 무릎까지 차올라 우리가 들어가니반짝거림을 머금으며우리를 반겨 담는다. 외따로 남겨진 바다 또한외로움을 타는가.
물속에선 하루살이 떼 만 하거나, 아기 손가락 크기의 송사리 떼가헤엄치며내 유년을 소환한다.고향 개울의 꾸구리모양을 한대양의 피시들도, 생존을 위해 재바른 건동서고금 동일하다. 우리가 따라가면 모래 속으로헤딩하듯 대가리를 쏙 집어넣거나 저만치 달아나버린다. 나는 외손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꿈을 이루려, 사력을 다하여 피시 떼를 좇아 다녔다. 그래,꾸구리와 송사리를 간신히 한 마리씩 잡았다.
"할머니, 새드 해서 놓아주었어. 헤헤헤."
한 시간 정도 할미와 둘이서 물고기들을 잡으러 다니던 재영이의 이말에, 난 잠깐 멈칫했다.아가가 풀어준 물고기가 아까워서.그리고 바로 마음을 가지런히 가다듬어야 했다. 그려, 잘 혔어, 하자 바다는 마치 우리가맑은 개울물 피시인 양,우리를더 허심탄회하게담는다. 나도 몸과 맘을 풀어 아이와 같이, 그저 물고기들과 숨바꼭질을 한다. 할머니, 여기 여기 피시 엄청 많아, 하는 물결 사이로 우리들의 시간이 흐른다. 세미하게 자잘하거나, 아기손가락만 하거나, 어른의 귓불만 한 고기떼들, 그리고 우리를 한 통속으로 담지한 물속으로 노을이 지고 만다.
오늘도 엄마의 바다, 딸들의 바다, 아가들의 바다는 하루를 분주하면서도 명랑하게 잘 보냈다. 할미의 바다는, 피시가 불쌍해서 피시를 바다로 다시 돌려준 아가의 바다를 닮자, 고 잠시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