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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Oct 13. 2023

세상을 맑게 하는 사람


그분이 생각난다.



뜨개질을 하다가 그분이 떠올라 을 옮겨와서 그분을 적는다. 세상에 온정을 듬뿍 남긴 마더 테레사거나, 황무지에 꽃을 곱게 피운 유명한 정원사가 아니어도 세상을 맑게 하는 사람이 다. 어쩜 우린 소리 없이 살피는 그런 분으로 인하여 삶을 스하게, 무탈하게 살아다.


그분은 지난주에 우리 집 지붕청소를 했다. 한 달 전 내가 전화를 걸어서 예약한 아저씨다. 소를 알려주니 아는 장소라며 다시 올 필요 없이 450불이란다. 우린 서로 쿨하게 약속을 잡았다. 당일 아침 8시 반부터 세 시간 만에 끝이 났다. 지붕에 솔라패널을 닦았으며, 검은곰팡이와 인근 사탕수수밭을 태우며 날아온 재가 있어서 약품처리하여 말끔히 씻어내었다고 하였다.


우리 집은 천장 한쪽이 여느 집보다 두 배 높은 데다가, 지붕 바로 아래 작은 유리창들이 한쪽벽면에 나란히 있다. 아저씨가 씻어내어도 얼룩진 곰팡이가 창에 그대로 있는 걸 보니,  안쪽에서 발생한 자국이었다. 난 어쩔까, 말을 해볼까 말까, 망설여졌다. 유리창으로 가끔 보는 파란 하늘에 얼룩이 져서 지붕청소를 한 이유도 있는데, 어쩌나. 찜찜했다. 


그분은 작업이 끝나서
장비를 거두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아저씨한테로 갔다. 안에 남아있는 곰팡이와 얼룩을 이야기해 보았다. 아저씨는 우선, 자신의 낮은 사다리를 갖고 와서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유리창이 너무 높이 있었다. 다시 갖다 놓고 트럭 위에다 이미 실어놓았던, 길고 무거운 사다리를 나와 함께 붙잡고 베란다로 들와, 집안 물건 사이를 빠져나오느라 살살 달래며 들여왔다. 사다리를 연장하여 유리창까지 닿게 하였다. 그리고 농부가 감 따러 올라가듯 수월하게 올라가셨다. 난 올려다보기만 해도 어지러워서 말을 입안에 꼭 머금고 있었다.


사다리를 옮겨놓을 때만 잠깐씩 붙잡아 거들어 주었다. 쓱싹쓱싹. 지붕청소 12년 차 아저씨 바디는 날렵하였다. 일이 다 끝나고 내가 물었다. 어지럽지 않냐고. 그러자 이건 쉬운 일이야. 3층까지 해봤는데 그땐 좀 어지러워, 라며 생글생글 웃었다. 난 너무 고맙다며, 네가 원하는 대로 유리창 닦아준 비용을 치르겠다고 말하자, 아저씨는 아니야, 안 줘도 돼, 하며 450불의 인보이스를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릭 할아버지네 솔라패널을 닦으러 지붕에 올라가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난 우리 집 부엌에서 아저씨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한컷, 찰칵 찍었다. 나중에 릭할아버지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홍, 그 사람이 돈을 안 받고 그냥 갔어. 자기가 좋은 일을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오늘이 그날이라고, 돈을 안 줘도 된다고 했어. 자기가 한 일을 보고 타인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돈 받은 것보다 더 좋데, 하셨다.


지붕청소는 보통 무나 쉽게  수 없는 일이라 부르는 게 금인데, 이처럼 어려운 일을 생글생글 웃으며, 일면식도 없던 두 집에다 온기를 심어놓고 가신 그분이 오늘도 생각이 난다. 감동이 깊었나 보다.


그날의 마음으로, 맑아진 창문을 통해 파란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다시 꽃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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