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주 둘이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만 3세가 되면 매주 한 번씩, 친구들 앞에 나와 앉는다.지난주에 자신들에게 일어난 뉴스를 들려준다.이를 뉴스타임이라 부른다. 아이들과 멀리 떨어져 살아도난, 지난주에 고물고물 한 고놈들이 무얼 하고 놀았는지, 매주 수요일마다 업로드되는 유치원 뉴스타임지를 보며 미소 짓는다.아가들이 한이야기를 읽어보면 앞뒤 말이 가감 없어 남의 아이 내 아이 가릴 것 없이 다 순진무구 어여쁘다.
발표할 사진이 필요할 때는아이들의 부모가 프린트를하여 스케치북에다 붙여서 보내더라도, 외손주들은 그 시간을기다리면서 장난감 자동차 같은, 준비물을 스스로 찾아서 들고 간단다. 3, 4세 아이들 치곤 이야기가 다소 길어서, 집에서 연습을 하고가는지 아이들 에미한테 물었더니, 아니란다.역시 아가들의 청정한 순발력은 생생 통통 살아있다.
어릴 때부터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가들 뉴스타임을 보면서, 나의 남세스럽던 청소년시절이 떠올랐다. 여럿 모인 사람들 앞에서 괜스레 우물쭈물,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시간이 지나버리면 한마디도 못한 채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괜히 얼굴이 붉어지던 내 영한 시절이 난 못마땅하다.
그래서인지, 요즘도 난 발표에 능한 사람이 모인 국회청문회를 챙겨보고, 국정의 의견을 묻고 답하는 정치토크쇼도 거의 다 들여다본다. 요즘은 여럿 모인 장소에서도 가능한 한두 마디라도 의견을 보태고 돌아온다. 하지만 영 내 맘에 안 찬다. 어릴 때 패인 마음의 동공이 느껴지는 듯, 집에 돌아와도 뭔가 허전하다.이 유치원처럼 나도,어릴 때부터 친구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던 습성이 몸에 배어 있었다면 그러진 않을 텐데.
난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발표 잘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부럽다. 영어나라에서 사는 나는 그러려고 해도, 어휘 어순조차도 겨우 발설하는 어린아이 스피킹 수준이니, 이젠 그러긴영 글러버렸다. 한편으론 가만히, 잠자코 있어도 되는 합리적인 핑곗거리가 되었다. 다시 나로 태어나서 초롱초롱한 시기의 나의 외손주들처럼, 발표력과 청취력이 몸에 배이면 모를까, 이순이 지난 나이에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헛발질밖에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영어 수준으로는 그저 맑은 창문처럼 내 마음이나 활짝 열어젖히고 개그로 나가는 게 옳다. 청자와 화자 양쪽 다 함께 웃겨주는 것으로 쿨하게 마무리하면 그래도 마음이흡족하다.
외손주들이 다니는 유치원처럼,어릴 때부터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이야기를 재잘재잘 들려주기 시작했었다면, 난 어쩜, 잘 나가는 정당의 정치인이 되어있지는 않을까. 하, 핫. 농담이다. 반드시 정치인이나 대단한 사람은 아니더라도,나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고,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시 태어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