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오늘도 꽃 뜨니?
다정다감친절한 니타할머니가 오늘도 이렇게 묻는다. 질문이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목요 문화센터에서 내게 안부를 챙기는 인사말이다. 그녀뿐 아니라 다른 할머니들도 나의 꽃의 계보를 인지하고 있다. 내가 연노랑 꽃술만 뜨고 있어도 어떤 패턴의 꽃이 완성되는지 아는 건 물론이요, 몇 송이의 꽃을 떠서 얼마만 한 너비의 이불이 되어가는지, 햇살아래 떨어진 바늘 찾듯이 훤히 꿰고들 있다. 56 송이의 꽃으로 이어진 무릎이불 꽃문양은, 시나브로 나의 심벌마크가 되어있다.
이 교실 정식명칭은 목요반 '바느질교실'이다. 그녀들은 주로 한 텀에 하나의 프로젝트를 지정하여 바느질을 한다. 재봉틀로 박아서 실생활에 필요한 백을 만들거나, 러너를 짓거나, 개인적으로 프랑스자수를 놓거나, 핸드메이드로 몇 개월 동안 하염없는 시간을 쌓고 쌓아서, 마침내 퀼트이불을 지어와 모든 멤버들 앞에서 펼쳐놓고 보여준다. 수요반 '블랭킷 버디스' 멤버들과 또 다른 몇 할머니들은 나처럼 뜨개질을 하는데, 그들은 어쩌다 나오는 재채기처럼, 가끔 바느질에도 동참한다. 한결같이 코바늘 하나로 이불이나 비니만 뜨는 사람은 나와 벨할머니밖에 없다.
할머니들은 매번 나의 완성된 꽃이불을 궁금해하신다. 그녀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채 수요자선교실에다 이불을 갖다 줘버리면, 왜 안 보여주냐며 어린 소녀들처럼 아쉬워한다. 난 그런 할머니들이 사랑스럽고 귀엽다. 그때부터 내가 뜬 꽃이불의 사진이라도 찍어놓았다가 그녀들과 눈 맞춤을 하도록 해드리면, 귀한 손주들 모습인양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신다. 내가 뜬 꽃이불의 눈코입을 면밀히 뜯어가며 한 코 한 코 찍힌 사진을 어여삐 여긴다.
그날도 꽃을 뜬 사진을 보여주었다.
니타할머니는 색상이 조화롭고 이쁘다 하셨다. 주변 할머니들에게도 돌려가며 보여드리는 일이 이 교실의 루틴이니, 내가 뜬 꽃이불이 찍힌 폰을 한 사람씩 돌아가며 보았다. 뷰티풀, 하시던 할머니들 사이에서, 내 옆자리 니타할머니가 이렇게 묻는다. 홍, 이거 네가 사용할 거야? 할머니께서는 자선교실, 블랭킷 버디스에 갖다 주는 걸 아시면서도 뭔가, 아쉬운 듯 아까운 듯 그렇게 질문을 하셨다. 그리고 맞은편 코렐할머니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신다. 매번 꽃을 떠서 내가 사용하지 않고, 타인을 위하여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나의 작업을, 조금 가엾게 보는 눈치였다. 나는 괜찮은데. 남을 돕는 작은 일이 뿌듯한데.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니타할머니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언어도 서투른 외국녀인 내가 알록달록 꽃이불을 떠서 타인에게 내어주기만 하였으니, 못내 아까워한 것 같다. 그 속내에서 나를 보듬는 그녀의 온기가 전해왔다. 아무리 자유로운 바느질 반이라지만 1년 반을 꽃뜨개만 만지작댔으니, 의사소통이 절반밖에 안 통하는 외국녀가 갑갑하게 느끼기도 한 듯했다. 그녀와 나 사이 돈독한 정이 익은 걸까. 진심이 묻어난 니타할머니의 무언의 몸짓이 내 안에서 느낌표가 되었다. 온전히 목요반 멤버가 된 듯 마음부자에 들게 했다.
이참에 나도 좀 바꿔 볼까.
목요반 교실에선 나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해서, 그녀들의 바느질에 동참해 볼까. 내일은 수요반 꽃뜨개를 잠시 접어두고 목요반 바느질, 퀼트거리 헌팅에 나서봐야겠다. 우선 스포트 라이트 숍에 나가 색색의 천구경이나 실컷 해볼까. 가슴에 파동이 인다. 잔잔하다. 그녀가 무심결에 던져놓은 나의 새 꿈 하나로 시나브로 마음부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