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나네 Oct 30. 2023

그냥 꽃이불을 뜨기로


마음을 먹는다.

물리적인 밥이 아니라 심리인 결정이니, 목에 걸린 마음을 삼키는 데 시일이 좀 걸렸다. 을 뜨는 일 외에 뭐가 있을까, 하고 동안 만히 숙고해 보니, 손으로 하는 일 중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꽃을 뜨는 일이다. 블랭킷 버디스에서 매월 첫 주는 털실을 골라오는 날이다. 난 10불을 틴 박스에 넣고 꽃이불에 들어갈 색색의 털실을 골라오는 날이 행복하다. 그것을 떠서 들인 시간과 정성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일에 마음이 가볍다. 상에도 정이 들고 가속도가 붙는지, 이렇게 꽃을 뜨는 데 정이 붙었나 보다.  일상에 적응된 마음이,  외에 다른 걸 시도하려는 마음을 저어한다. 그래, 지금 잘하는 일을 하기로 작정했다.


작년 5월부터 꽃이불을 떠 왔다. 어느 일이나 처음엔 그러하듯 몇 달간은 게 뜨개질이 어려웠으니 피로감이 더했었다. 선을 가지고 면을 만드는 작업은 정교하다. 디테일한 법칙을 잘 준수해야 내가 뜨려는 꽃이 만들어진다. 코바늘을 돌려 실을 감아서 사슬을 잡아당기면 하나의 코가 생긴다. 긴뜨기로 두 번을 감아 두 번을 다시 풀면 단지 한 가닥 꽃술만 만들어진다. 다섯 가닥을 하나의 코에 모면 꽃잎이 핀다. 코바늘을 일관되 잡아당겨 긴축성을 유지하면서도, 최대한 빠른 속도로 손가락을 움직여야 겨우, 꽃잎 하나가 형성된다. 처음에는 그 꽃잎만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이, 애벌레나뭇잎을 기어가듯 느렸다. 점점 속도가 생성되어 코바늘이 빠른 원을 그리는 그만큼, 나의 두뇌도 쾌속 회전을 해야 하니, 단 하나의 꽃만 떠도 두통은 물론 어깨와 팔의 통증이 심했었다. 그러다,


점점 수월해진다.


내면에서 무언가에 깨달아가고 진전을 느끼는 건 행복하다. 꽃봉오리인 양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즘은 꽃을 뜨는 손길에 눈길을 초집중치 않더라도, 내 손끝에서 어여쁜 활짝 활짝 피어난다. 꽃을 뜨면서 유 선생의 영어강의도 듣고, 디즈* 드라마도 볼 수 있으니 땅바닥에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앉아있게 되어 지루하기는커녕, 시간 가는 줄 모르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손을 놀려 타인의 이불을 뜨면서 나의 영어실력에 살이 포동해지니 나를 위해서도 얼마나 의미로운 시간인가. 그런데 잠시나마 사욕이 일었었다. 내가 뜨던 꽃이불이 너무 이뻐서 남주기 아까웠던가 하면, 그 시간에 내가 손으로 만든 그 수제품으로 나의 집을 좀 더 프리티 하게 꾸미고 싶었었다.


그러다 마음을 접은 거다. 자꾸만 쌓여가는 꽃들을 좁아터진 집안에 처치곤란 과욕의 재물로 쌓아두는 일은, 지금 나에게 별 감흥과 의미가 없다. 내 마음에다 차곡차곡 쌓아두는 일이 내 몸에 더 맞을 것 같았다. 내 집 어딘가에 비치하여 잿빛 먼지를 뒤집어쓰며 퇴색해 가는 꽃들보다, 꽃이 없는 사람에게 한송이라도 더 전하는 게 살아있는 꽃이 될 더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의 몸에 온기를 주는 일이 더 가벼워질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마음먹는 일의 과정은 추상적이라도, 마음을 먹은 시점부터는 0.0001이라는 플러스 숫자가 적용되는, 지극히 구체적 진실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소망.


그래, 난 오늘도 꽃을 뜨고 있었다. '천 원짜리 변호사'를 보면서 꽃을 뜨니 행복이 배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나브로 마음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