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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Dec 07. 2023

가끔은 각자도생이 더 옳다

- 신념만 간직하면


"이카로스 콤플렉스 ; (•••) 훗날 다이달로스가 왕의 총애를 잃어 탑에 갇히게 되었을 때, 그는 아들 이카로스와 새털들을 밀랍으로 붙여 날개를 만들어 탈출한다. 탈출 전에 그는 아들 이카로스에게 "너무 낮게 날면 습기로 날개가 무거워질 것이고,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열이 날개를 녹여버릴 테니까 내 곁으로만 따라오면 안전할 것이다"라고 눈물로 당부했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그들을 보고 사람들이 신으로 알고 놀라자 우쭐해진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너무 높이 날아올라 날개가 녹아서 결국 바다로 추락하여 죽었다."- 김용규, 같은 책 <안드레이 루블료프> 편 p.77.


7,80년대 오지산골 아이가 이카스를 알지 못한 건 당연하다. 주변은 온통 초록빛과 흙빛이었다. 앞산과 뒷산 사이에 호수 닮은 작은 하늘이 얹혀있었다. 아담한 하늘은 마을의 천장 같았다. 자동차 대신 흙먼지를 내는 소달구지가 느릿느릿 짐을 나르고, 마을 한복판에 우물이 차르륵거리며 아낙네들이 물 긷는 소리를 내었다. 마을은 영양남가들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각성바지 이 씨, 권 씨, 박 씨는 외따로 떨어진 섬 같았다. 내가 문밖을 나서면 아지매, 아재 ... 일가친척들만 보였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에 관한 좋은 기억은 세 가지였다. 나를 공부 잘하는 똑똑한 아이로 추켜올려주었던 점, 그리고 돈에 관해 그리 욕망이 부풀어있지 않은 점, 나에 인자한 웃음을 심어놓은 점. 그 외에 다른 건 배울 점도 좋은 점도 그리 없었다.


게으르고 술꾼이며 맺고 끊음이 분명치 못한 분이셨다. 러니 엄마의 투병으로 돈이 궁해진 우리 집은 궁핍했다. 내가 믿을 거라곤 아버지의 이 말씀, 는 참 똑똑해. 이건 집 밖이 온통 초록이듯, 그 당시 내게 불변의 법칙 같은 거였다. 온 동네사람들이 나를 똑똑한 아이로 바라보았으니 난 그걸 공기처럼 내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건 엄마가 없어도 기를 살리는 액세서리가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돈이 생길 때마다 살처럼 붉은빛이 도는 어린 혓바닥 위로 달콤한 눈깔사탕을 올려주고, 가끔은 읍내의 장날에 공책을 사다 주다. 우리 집보다 물질이 풍족하나 지극히 돈을 숭배하는 집안에서 자라나던 친구들, 나는 궁핍을 깊이 체감하지는 않았다. 부와 권위식과 욕망이 거의 없어서였을까.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셨다. 이건 하지 말고 저건 해도 되고... 두 개의 세계로 마음을 분할하는 잔소리는 일절 없으셨다. 찮으면서도 하지 말아야 할 주문이 많으셨던 엄마와는 180도 달랐다. 버지의 가르침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으니 선택을 스스로 결정지어야 했다. 내가 시도해 보고 틀리면 스스로 방법을 바꿔야 했고,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스스로 알아서 사리를 따져보고 분별해야 했었다. 


그럼에도 난 일본에서 엄마와 같이 하이스쿨을 졸업하시고 스무 살에 딸 하나를 낳아서 현해탄을 건너와 다른 사 남매를 낳아 기르신 나의 부모님이 자랑스러웠다. 엄마는 아기젖 먹이면서 책을 곁에 달고 사셨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지는, 우리 마을의 문서 대부분을 대필하셨고, 일본에서 친척이 방문한 몇몇 집에 불려 가셔서 통역을 하셨다. 하지만, 내가 정직공무원을 할 당시 아버지와 둘이 살아갈 때, 그때도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육신을 나태하거나 게으르게 운신하셨으니, 내가 할 일이 많아졌다. 밥, 청소를 요즘 수학, 영어 선행학습처럼 처녀 적에 이미 다 떼었으니, 때론 각자도생이 요긴한 거 맞다. 그때 아버지가 부지런하고 잔소리꾼이셨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을 테니 게으름꾼 우리 아부지, 지금 생각해 보니 자녀를 자립심 있도록 키우는 데는 단연 최고다. 그 아버지 덕분에 나는 1차로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끓였고, 2차로 곤로에다 밥을 지었으며, 3차로 드디어 전기밥솥까지 골고루 다 써 보았으니, 경험은 많을수록 뿌리가 깊어진다. 깊이로 자라는 나무처럼.


나는 단순하게 믿었다. 나를 방어해 줄 아버지의 말씀을 능가할, 다른 언어는 없었기에 그 말씀을 무조건 믿었다. 야는 참 똑똑해. 이 단락에서 하르트만은 "충분한 근거, 또는 객관적인 확실성을 가진 눈뜬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거기에는 자기 인격의 모험이 없다. 보지 않고도 믿는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관건이다"라고 했다니. 나 참. 난 운명처럼 이 말에 부합되었으니. 보지 않고도 믿었으니, 건 운명었다.



아브라함은 그의 신을 끝까지 믿었다.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죽여야 하는 순간까지 믿었고, 자신의 숨이 끊어질 그 마지막 순간까지 믿을 작정이었다. 그가 신을 믿은 것은 그것이 가능해서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스스로 아들을 죽여야 한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터무니없음'을 이해할 능력이 없었고, 그것을 견딜 만한 힘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었다.-  김용규, 같은 책, <안드레이 루블료프> 편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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