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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Nov 30. 2023

초현실을 닮은 시절




-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첫 작품인 <이반의 어린 시절>의 소년 이반에서 마지막 작품인 <희생>의 노인 알렉산더에 이르기까지, 타르코프스키 작품의 일곱 주인공들이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작품이 만들어진 순서에 따라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참으로 우연한 일이지만, 결코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이반의 어린 시절>을 해석한다는 것은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전체를 해석하는 데 있어 첫 단추를 끼우는 일과 같다. 다시 말해 < 이반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는 것은 '타르코프스키적 인간', '타르코프스키적 세계', '타르코프스키적 문제와 그 해결법'을 이해하는 시작이자 동시에 이러한 것들을 영화언어로 다루는 '타르코프스키적 화법'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된다." - 김용규, <이반의 어린 시절> 편 p.24~ p.25.


지금 생각해 보면 봄날에 엄마가 돌가시고 난 후 우리 집의 가세가 기울어진 것은 물론, 나 자신도 미끄러운 언덕을 내려오듯 급경사로 초라한 천덕꾸러기가 되어갔다. 동네구장이던 아버지한테로 사람이 북적이던 우리 집 사랑방은 무참하게, 폐허처럼 되어가고 있음은 물론, 봄날의 내 손등은 터져서 눈물 같은 피가 삐져나오고 있었다. 건조한 모래가 닿은 듯 따끔따끔 따가웠다. 70년대 초, 4학년 때 담임선생은 나를 따로 불러서 두툼한 전과 한 권을 건네었다. 당시 총각이던 담임은, 그도 부족한 한 사람이어서 인심이 충분히 깊지는 못했다. 그가 의도했을 위로는 내게 오히려 상처로 다가왔으니. 그는 가늘고 짤막한 매를 들고, 내 터진 손등을 톡톡 내려치듯 건드렸다. 겨울 끝 바람에 터진 손등의 때를 씻으라고 일렀었는데, 난 그게 너무 수치스럽고 심장까지 가운 것 같고 싫었다. 교실 앞 따끈하던 햇빛조차도 난 기 싫었다. 어딘가 어두운 데로 들어가고 싶었다.


한쪽 날개가 부서진 나비처럼 마음이 연약하여져 갔다. 5학년 어느 날 노란 양철도시락을 들어 올리다, 교실바닥에 힘없이  떨어트리고 말았다. 냄새나던 멸치볶음이었나, 반찬은 기억나지 않는데 여하튼 흥미로운 구경거리인 듯, 우르르 모여든 반아이들 앞에서 나의 오장이 바닥으로 확 내려앉은 듯 수치스러웠다. 그러고도 몇 백 원 하던 육성회비를 내지 못하여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있어야 했다. 6학년 때는 그럼에도 여전히 부장으로 뽑혔으나, 한 번도 공부1등에 들지 못했다. 5학년때까지 잠잠하던 아이가 줄곧 1등을 거머쥐었는데 어린 난 자존심이 상했다. 당시 내가 내세울 거라곤 공부밖에 없었는데, 매번 꽃샘바람에 일렁이는 꽃술을 놓치던 벌꿀인 양, 적어 당시엔 내 생의 꿀이 발린 1등을 아슬아슬하게 매번, 그 아이에게 내어주고 있었다.


내 인생 6학년이 된 요 근래, 50여 년 전 그때의 초현실적인 일이 내 머릿속 수면으로 떠오른 날이 있었다. 내 1등 자리를 차지하던 그 아이의 아버지는 그때 완장을 찬 분이었다. 우리 학교, 우리 반 담임하고도 술을 한잔 하여 얼굴이 불그레하기도 하였고, 숱하게 우리 학교를 드나들었다는 그들의 미필적이거나 의도적 고의가 다분한 현실적 상상이, 어느 날 저녁밥을 맛있게 먹 인생 6학년의 나를 피싯, 웃게 만들었다. 먼 기억은 별 걸 다 웃게 만든다.


 당시수가 뭐 그리 대수라고, 엄마를 보내고 날개 꺾인 아이의 자존심을 그래 무참히 구겼을까, 싶은 생각이 일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나의 곁에도 존재했었다니 당대의 시간 또한 어렴풋하지만 서글프게도 감지되었다. 아이들의 시간을 신의 의지로 욱여넣는 어른은 다 나쁘다. 그런데 어쩌나. 내가 미끄러 내리막길 경사로에서 고초의 날들을 겪어오던 그 시절이 바로 어금니를 꽉 깨문,  생의 유토피아를 또렷하게 꿈꾸던 원동력이 되었으니. 고교시절 나와 절친이 되어있던 완장 그 아이는 스스로 연약하게 날개가 을 잃어갔을까. 도시로 전학을 갔음에도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대학진학 못하고 말았으니. 인생은 멀리 보고 사는 게 맞다. 그럼에도 대도시 어딘가에 살고 있을 분홍빛 나팔꽃처럼 나약한 듯 착했던 그 아이가, 언제나 웃는 날이면 좋겠다. 는 나대로 내린 바질바질한 뿌리로 잘 살고 있는 안부를 전한다. 이렇듯 모든 생명체엔 깊이로 내릴 뿌리가 있다. 그 의지는 합리적이며 평등하다.


"모든 인간에게 있어 현실적 좌절은 '절망' 또는 '이상을 향한 동경'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 그 와중에 난 5, 6학년 때 학교대표로 출전하여 군내 글짓기상을 연속으로 받았고, 시골학교 교장선생님이 나를 알아봐 주셨다. 소녀의 드림, 꿈 하나를 가만히 의식에서 붙잡을 수 있게 되었으니, 참 다행이었다. 꿈이 생기면 마음 굳건히, 깊이로 둘 곳이 생기니까.  좌절과 절망, 그 사이에도 빛살포시 살아있다. 그 꿈은 군가의 1등보다 강직하고 우월하다. 어둠을 극복할 햇살이 바람을 연주하 된다.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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