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첫 작품인 <이반의 어린 시절>의 소년 이반에서 마지막 작품인 <희생>의 노인 알렉산더에 이르기까지, 타르코프스키 작품의 일곱 주인공들이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작품이 만들어진 순서에 따라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참으로 우연한 일이지만, 결코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이반의 어린 시절>을 해석한다는 것은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전체를 해석하는 데 있어 첫 단추를 끼우는 일과 같다. 다시 말해 < 이반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는 것은 '타르코프스키적 인간', '타르코프스키적 세계', '타르코프스키적 문제와 그 해결법'을 이해하는 시작이자 동시에 이러한 것들을 영화언어로 다루는 '타르코프스키적 화법'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된다." - 김용규, <이반의 어린 시절> 편 p.24~ p.25.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봄날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우리 집의 가세가 기울어진 것은 물론, 나 자신도 미끄러운 언덕을 내려오듯 급경사로 초라한 천덕꾸러기가 되어갔다. 동네구장이던 아버지한테로 사람이 북적이던 우리 집 사랑방은 무참하게,폐허처럼 되어가고 있음은 물론, 봄날의 내 손등은 터져서 눈물 같은 피가 삐져나오고 있었다. 건조한 모래가 닿은 듯 따끔따끔 따가웠다. 70년대 초, 4학년 때 담임선생은 나를 따로 불러서두툼한 전과 한 권을 건네었다. 당시 총각이던 담임은, 그도 부족한 한 사람이어서 인심이 충분히 깊지는 못했다.그가 의도했을 위로는 내게 오히려 상처로 다가왔으니. 그는 가늘고 짤막한 매를 들고, 내 터진 손등을 톡톡 내려치듯 건드렸다. 겨울 끝 바람에 터진 손등의 때를 씻으라고 일렀었는데, 난 그게 너무 수치스럽고 심장까지 따가운 것 같고 싫었다.그날 교실 앞 따끈하던 햇빛조차도 난 맞기 싫었다. 어딘가 어두운 데로 들어가고 싶었다.
한쪽 날개가 부서진 나비처럼 마음이 연약하여져 갔다. 5학년 어느 날 노란 양철도시락을 들어 올리다, 교실바닥에 힘없이 툭떨어트리고 말았다. 냄새나던 멸치볶음이었나, 반찬은 확연히 기억나지 않는데 여하튼흥미로운 구경거리인 듯, 우르르 모여든 반아이들 앞에서나의 오장이 바닥으로 확 내려앉은 듯 수치스러웠다. 그러고도 몇 백 원 하던 육성회비를 내지 못하여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있어야 했다. 6학년 때는 그럼에도 여전히 부급장으로 뽑혔으나, 한 번도 공부는 1등에 들지 못했다. 5학년때까지 잠잠하던 아이가 줄곧 1등을 거머쥐었는데 어린 난 자존심이 상했다. 당시 내가 내세울 거라곤 공부밖에 없었는데, 매번 꽃샘바람에 일렁이는 꽃술을 놓치던 벌꿀인 양, 적어도 당시엔내 생의 꿀이 발린 1등을 아슬아슬하게 매번, 그 아이에게내어주고 있었다.
내 인생 6학년이 된 요 근래, 50여 년 전 그때의 초현실적인 일이 내 머릿속 수면으로 떠오른 날이 있었다. 내 1등 자리를 차지하던 그 아이의 아버지는 그때 완장을 찬 분이었다. 우리 학교, 우리 반 담임하고도 술을 한잔 하여 얼굴이 불그레하기도 하였고, 숱하게 우리 학교를 드나들었다는 그들의 미필적이거나 의도적 고의가 다분한 현실적 상상이, 어느 날 저녁밥을 맛있게 먹은 인생 6학년의 나를 피싯, 웃게 만들었다. 먼 기억은 별 걸 다 웃게 만든다.
그 당시도 등수가 뭐그리 대수라고, 엄마를 보내고 날개 꺾인 아이의 자존심을 그래 무참히 구겼을까, 싶은 생각이 일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나의 곁에도 존재했었다니 당대의 시간또한어렴풋하지만 서글프게도 감지되었다. 아이들의 시간을자신의 의지로 욱여넣는 어른은 다 나쁘다. 그런데 어쩌나. 내가 미끄러운내리막길 급경사로에서 고초의 날들을 겪어오던 그 시절이 바로어금니를 꽉 깨문, 내 생의 유토피아를 보다 또렷하게 꿈꾸던 원동력이 되었으니. 중고교시절나와 절친이 되어있던 완장댁 그 아이는 스스로 연약하게 날개가 힘을 잃어갔을까.대도시로 전학을 갔음에도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대학진학을 못하고 말았으니. 인생은 멀리 보고 사는 게 맞다.그럼에도 대도시 어딘가에 살고 있을 분홍빛 나팔꽃처럼 나약한 듯 착했던 그 아이가,언제나 웃는 날이면 좋겠다. 나는 나대로 내린 바질바질한 뿌리로 잘 살고 있는 안부를 전한다. 이렇듯 모든 생명체엔 깊이로 내릴 뿌리가 있다.그 의지는 합리적이며 평등하다.
"모든 인간에게 있어 현실적 좌절은 '절망' 또는 '이상을 향한 동경'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 그 와중에 난 5, 6학년 때 학교대표로 출전하여 군내 글짓기상을 연속으로 받았고, 시골학교 교장선생님이 나를 알아봐 주셨다. 소녀의 드림, 꿈 하나를 가만히 자의식에서 붙잡을 수 있게 되었으니, 참 다행이었다.꿈이 생기면 마음 굳건히, 깊이로 둘 곳이 생기니까. 좌절과 절망, 그 사이에도 빛은 살포시 살아있다. 그 꿈은누군가의 1등보다 강직하고 우월하다. 어둠을 극복할 햇살이 바람을 연주하게된다.소망.